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새옹지마
눈물 어린 고추장
이종영 시인.

“동작 그만! 야야! 거기 서! 요놈들 봐라.”

멍석에 말리고 있던 가마솥 누룽지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다. 훈련병 열 명이 소대원 배식통을 반납하러 식당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누룽지를 한 움큼씩 집어 입에 넣었다. 불이 불룩하게 쑤셔 넣은 누룽지는 꿀떡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바지주머니에도 누룽지를 집어넣었다. 훈련병은 춥고 배고프고 졸리는 게 당연하였다. 식당 안에 잡혀 온 열 명은 앉아, 서를 반복했다. 기합이 끝났다 싶었는데 취사반장인 하사가 커다란 국자로 철모를 내려치며 다가왔다. 내 차례가 되어 내려치는 국자를 손으로 막았다.

“성수야!”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던 친구였다. 성수는 졸업하고 하사관이 되어 훈련소에서 근무했다. “모두 원위치로 뛰어가!” 그렇게 기합은 끝났다. 감히 구경도 못 해본 고추장 한 통을 얻어 왔다. 그 덕분에 내 뒤로 줄 선 병사들은 얻어맞지도 않았다. 그 맛난 고추장을 맛본 내무반 친구들은 큰 빽이 생겼다고 나를 부러워하였다. 그것도 잠깐 알싸하고 매콤한 고추장 한 통은 내부 반장한테 압수당하고 입맛만 다셨다.

1967년 3월 육군 39사단 창원 훈련소에 입소했다. 까까머리를 하고 서로를 쳐다보고 웃었다. 헐렁한 군복을 지급받고 옆 사람과 크기에 따라 바꾸어 입었다. 입었던 옷과 신발은 집으로 부쳤는데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을 본 듯 옷을 매만지며 얼마나 울었을까. 한 사흘은 군대 밥에 냄새가 나고 적응이 되지 않아 대부분 잔반통에 버렸다. 훈련이 시작되자 사회생활의 습관은 버리고 오직 군인 정신을 기르는 고된 교육이 이루어졌다. 차츰 배가 고프고 배식 시간이 기다려지고, 남의 밥그릇 밥이 많아 보였다.

‘식사에 대한 감사의 묵념’을 할 동안 묵념은 고사하고 실눈을 뜨고 옆 사람 밥그릇과 크기를 비교하고 재빨리 바꾸는 기술이 늘어갔다. 내무반 사물함에 관물 정돈은 오와 열을 맞춘다. 의복, 담요, 내의, 양말, 손수건, 모자, 항고, 수저 등 온갖 살림살이를 틈만 나면 정돈해둔다. 어느 한 사람 물품 하나가 없어지면 연쇄 절도가 일어난다. 왜 없어질까? 누구의 소행일까? 하사내무반장 아닐까? 모자가 없어진 한 친구가 화장실에서 벗겨온 대위 모자를 쓰고 있다가 곡소리 나게 얻어맞았다. 그 후로 도난 사고는 줄어들었다.

“오늘 밤은 쥐잡기를 실시한다!” 아홉 시 점호 때까지 쥐 열 마리를 잡아 꼬리만 새끼줄에 엮어서 연병장에 집합해야 한다. 모두 돌멩이를 들고 막사 주위와 하수구 근처를 얼쩡거렸다. 쥐는 보이지 않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멀뚱멀뚱 주위만 살피고 있다. 매점에 가서 쥐 잡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오징어 한 마리와 빵을 사서 먹으면서 기다리면 된다고 친구가 말했다. 오징어다리 열 개를 불에 구워서 물에 담가두었다. 한참 후에 연탄재에 버무려서 근사한 쥐꼬리를 만들었다. 연병장에 모인 친구 모두는 쥐꼬리 엮은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철조망 주변에서 민간인들이 쥐꼬리를 군인들에게 팔고 있었다. 짜고 치는 쥐잡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코웃음이 나온다. 기근과 가난으로 밥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 그래도 군에 가면 밥은 굶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생각했다.

“성수야! 니가 준 고추장 맛은 평생 내 입안에 땡초 같이 찐하게 배어있다. 친구야, 고마웠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부경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