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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우리 형님!

 

노청한 재경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향우

올해 76세 우리 형님은 12년 전 6월, 갑자기 온몸이 마비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려는데 들고 있는 면도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말도 어눌해 ‘이게 무슨 변고지?’하며 굳어가는 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을 시키고 며칠 후 검진 결과가 나왔다. 이름도 낯선 ‘길랭바레증후군’. 희귀병이지만 불치병은 아니고 차츰차츰 나아진다는 애매한, 수수께끼 같은 의사 진단에 온 집안이 마비되었다.

7남매 중 맏이인 형님은 공부는 물론 오토바이처럼 달리기도 잘하고 심성까지 고왔다. 하지만 동생들에게 치여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한 사람 입이라도 덜어야 하니 친척 집으로 공장으로 거처를 전전했다.

군 입대 후 최전방 군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급기야 월남 파병을 지원했을까. 몹쓸 병, 길랭바레증후군은 월남전에서 사용한 고엽제 후유증이 의심된다는 걸 한참 후에야 판명됐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병원을 옮겨야 하는 의료시스템에 얼마나 불편했을까. 형님의 재활 훈련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주인 뜻과 달리 말을 안 듣는 뻣뻣한 손가락에 볼펜을 묶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다. 땀범벅이 되도록 근육 훈련과 물속 걷기를 반복하다보면 하루해가 짧다.

어느 날에는, 지팡이에 의지하며 가까운 딸네 집을 한 시간 넘게 걸었다. 식사 때는 나무젓가락이 필수다. 미처 챙기지 못하고 쇠 젓가락을 들면 금방 흘러내린다.

길고 긴 간병에도 지친 기색 보이지 않는 우리 형수님께 이 시동생이 살짝 묻는다. “지금 우리 형님 점수가 몇 점인가요?” “70점!”. 형님 본인은 어제도 오늘도 딱 “40점!”이다. 달리기를 못하니 점수가 한참 짤 수밖에 없나보다.

지난 4월 중순 우리 형제자매 단톡방에 형님이 모처럼 장문(長文)의 글을 올렸다. 하도 반갑고 신기하여 원문 그대로 옮긴다.

“노양숙씨. 인사가 늦었네. 서울 왔다 간지가 두 달이 다 되도록 무심하게 연락도 못해서 미안하고 베풀어준 은혜는 평생 못있겠다. 고맙다 동생아. 오늘 종친회 오랜만에 갔다 오다, 전철에서 두서없이 소식 전한다. 안녀 ㅇ” 우리 첫째 여동생 양숙이에게 보낸 글이다.

두어 달 전 고향(경남 함양)에서 여동생 내외가 초등생 손녀 체험학습 겸해 서울 딸네 집에 온 김에 큰오빠 내외와 74세 둘째 오빠인 우리 내외를 시내 한식당에 초대해 저녁식사 대접을 했다.

늦었지만 여동생의 식사 대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 ‘양숙이 동생!’이라 부르지 않고 존칭어 ‘씨’자를 붙여 ‘노양숙씨’다.

형님은 바로 아래 동생인 내게도 문자를 보냈다. “노청한씨. 옛말에 운명이 장난인가 사연보고 너무 비통하다고할까… 참 애처롭다. 건강 유의해”

내가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장애 손자가 다니는 특수학교 선생님들에게 보낸 ‘고맙습니다’는 편지를 손자 사진과 함께 단톡방에 올렸더니 그 글을 읽고 보낸 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님 문자는 없든가 있어도 1줄, 몇 글자 뿐 이었는데 이번 글은 그야말로 소설처럼 긴 문장이다. 얼마나 손가락 재활 훈련에 애를 썼을까. 띄어쓰기, 맞춤법이 틀리면 어떤가. 이만하면 우리 형님이 얼마나 장한가!

내가 올린 답 글이다. “형님 노씨 중앙 종친회 잘 참석하셨습니다. 동생들에게 주신 감사, 격려, 위로 문자 고맙습니다~ 꾸벅”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 집안에 경사가 생겼다. 형님은 슬하에 딸, 아들 남매를 두었다. 형님의 외동아들이자 내 조카, 우리 집안의 장손이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으나 한번 유산 후 자녀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 힘들고 고통스런 ‘난임 시술’ 끝에 곧(5말6초) 아들 쌍둥이가 태어난다.

“노준한 우리 형님! 쌍둥이 손자 돌보시려면 40점 가지고는 어림없습니다. 사방으로 손자들 따라 다니려면 몸이 날아야 하는데…”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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