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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서 좋다
김순이 수필가

요즘은 집 근처 가로수 길을 자주 걷는다. 키 큰 포플러나무에 번지는 연둣빛에 마음을 빼앗겨 고개 들어 올려다본다. 나무이파리와 눈 맞추면 두근두근 설렌다. 햇빛과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리는 연두 이파리를 보고 있으면 아기들 재롱을 보듯 신기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시푸른 하늘에 솜털구름이 바람에 밀려 조금씩 움직인다. 하늘빛과 연둣빛은 천생연분인 듯 잘 어울린다. 이런 날은 고향친구들이 보고 싶다.

다가오는 유월은 일 년에 두세 번 얼굴 보는 고향친구 모임이 있다. 고향친구 모임은 여느 모임과 다르다. 모이기로 정한 날을 전후로 약 일주일 정도만 핸드폰이 시끄럽다. 약속 장소를 정할 때와 헤어지고 집에 잘 들어갔다는 인사를 나누면 그 길로 끝이다. 만나면 가족처럼 허물없고 마냥 좋은데 평소에는 무심하다 할 만큼 서로에게 소원하다. 참 별일이다.

지난 모임은 친구가 운영하는 식육점에서 했다. 장소 제공도 고마운데 고기까지 찬조해주었다. 천안에 사는 친구는 키조개와 주꾸미, 각종 채소, 프라이팬에 인덕션까지 준비해왔다. 그날은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는데 ‘소고기 주꾸미 키조개 샤브샤브’로 바뀌었다. 그날 우리 식탁은 풍성했고 그 어떤 이름난 식당보다 실속 있는 자리였다.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주변 눈총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한때는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가난한 고향이 싫었다. 고작해야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어린 나이에도 나와 친구들은 정말 일을 많이 했다. 만나면 그 시절 이야기보따리가 절로 풀어졌다. 지게 지고 짐을 나른 일과 허리가 아프도록 모내기 한 일, 누에치기……, 마치 누가누가 일을 많이 했나 자랑이라도 하듯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땐 왜 그리 가난했을까. 왜 그리도 부모님들은 일을 많이 시켰을까. “우리가 낫질하는 걸 본다면 기네스북감이라고 놀라겠지!” 누군가의 말에 “맞아, 맞아,” 서로가 맞장구를 친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린 하나같이 촌티를 벗어내지 못했다. 경북 봉화 춘향에 사는 친구에게 갔을 때다. 그날은 바비큐를 해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쇠비름나물에 꽂혔다. 순간 우리는 바비큐보다 더 찐한 쇠비름나물 맛을 기억해냈다. 그리운 맛이었다. 다들 비탈진 언덕 아래로 흩어져 쇠비름을 뜯기 시작했다. 예전 일하던 가락이 있어서 얼마 지니지 않아 저마다 한 움큼씩 쇠비름나물을 손에 쥐고 나왔다. 쇠비름나물을 살짝 데쳐서 된장과 고추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큰 양푼에 밥을 넣고 참기름 한 숟갈 넣어 쓱쓱 비벼 나눠 먹었다. 꿀맛이었다. 쇠비름나물이 바비큐를 이겼다. 그러고는 개울에 들어가 옷을 다 적셔가며 다슬기를 잡았다. 봉화 친구가 다슬기냉채를 해주었다. 다슬기가 채소보다 더 많이 들어간 다슬기냉채는 아무데서나 맛볼 수는 없는 특별한 요리다. 밤이 새도록 서로에게 위안이 되자며 술잔을 부딪쳤다. 오늘 같은 밤에 잠을 잔다는 것은 사치라며 친구네 냉장고를 홀쭉하게 만들었다.

지난 모임 때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아 이렇게 글 한 편 남겨본다.  저마다 사회적 위치가 다르고 하는 일도 가지각색인데 일단 만나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긴장된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누가 보면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충분히 지금 이대로가 좋다.  우리라서 참 좋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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