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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남계서원’11. 세계문화유산인 남계서원
  • 이철우 본지 회장
  • 승인 2024.06.25 15:21
  • 호수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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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은 지역 사림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서원이자 한국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 형식이 도입된 사례다. 전학후묘는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묘당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강학 공간은 낮은 곳에, 제향 공간은 높은 곳에 배치해 각 공간이 가진 위계를 지형의 고저를 이용해 드러내고 있다.

남계서원 전경

앞뒷산 첩첩중에
늠름한 지리산 천왕봉은
천령의 푯대이고
선비 닮은 남계천은
쉬지 않고 돌 굴린다
하늘天 따地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총회에서 남계서원 등 한국의 9개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9개 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안동의 도산서원·병산서원, 경주의 옥산서원,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00여 개의 서원이 있는데 19세기 후반 흥선대원군에 의해 훼철되고 20세기 들어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훼손된 것들이 많다. 그중 원형을 유지하면서 유네스코 기준에 맞는 서원 가운데 9개 서원이 성리학 교육기관의 전형으로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 갖는 이점이 많다. 우선 우리나라의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의 자긍심이 올라간다. 또한 재난을 당하면 유네스코를 통해 복구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광자원이 늘어 방문객이 증가하고 여러 인프라가 구축돼 경제 수익을 확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인류가 공유하는 세계유산이 됨으로써 한국의 서원이 한국을 넘어 인류 문명사에 편입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남계서원은 1552년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일두 정여창(1450~1504)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출발했으며, 추가로 동계 정온과 개암 강익이 배향돼 있다. 정여창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바라보면 낙동강을 중심으로 많은 선비가 배출되는 좌측의 안동과 우측의 함양을 가리키는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불리는 함양의 학문적 자부심을 세운 인물로 김굉필·조광조·이언적·이황과 함께 동방오현으로 불린다.

정여창은 사림파의 거두 점필제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문하생이 되었고, 안의현감을 5년 동안 역임하였다. 안의현감시절 선화루를 중건하며 광풍루라 개칭하고 광풍제월(光風霽月)의 뜻에 맞게 제월당도 건립하였다. 특히 법십여조문(法十餘條文)을 두고 조세를 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이 때문에 고을 사람들은 정여창 사후 80년 만에 1583년 안의 봉산마을에 사당을 세워 그의 공덕을 기렸다.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이 쓴 ‘문헌공일두선생 사당기’에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1498년 연산군 때 조의제문 사초사건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나면서 그에 연루돼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1504년 봄에 유배지에서 병으로 사망했는데 그해 가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부관참시당했다.

남계서원은 지역 사림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서원이자 한국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 형식이 도입된 사례다. 전학후묘는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묘당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강학 공간은 낮은 곳에, 제향 공간은 높은 곳에 배치해 각 공간이 가진 위계를 지형의 고저를 이용해 드러내고 있다.

정문 역할을 하는 풍영루 아래를 지나 서원으로 들어서면 기단 위 높은 곳에 강당 건물인 명성당(明誠堂)이 자리하고 있다. 명성당 앞 좌우에는 동재인 양정재(養正齋)와 서재인 보인재(輔仁齋)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남계(南溪)와 서원(書院)이라고 쓴 2개의 현판을 나눠 건 것이 인상적이다.

강당인 명성당(明誠堂)은 <중용>의 ‘밝으면 성실하다’에서 취했다. 명성당의 왼쪽 방에는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방에는 ‘집의재(集義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거경재는 서원 원장이 거처하면서 원생들의 수업을 감독하던 곳이고, 집의재는 교수 및 유사들의 집무실 겸 숙소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수기(修己)의 이념 세계가 서원 건축에 반영됐음을 보여준다. 바로 지식을 온전히 해 마음과 몸을 닦고, 이것에 근거해 실천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정여창이 추구했던 학문의 본질과도 일맥상통한다.

강당 앞의 양정재의 양정(養正)은 ‘순수한 상태의 인간에게 바른 것을 길러준다’는 뜻이며, 보인(輔仁)은 ‘벗으로서 인(仁)을 돕는다’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동재와 서재의 누마루에는 애련헌(愛蓮軒)과 영매헌(咏梅軒)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 누마루를 통해서 동·서재 아래 누문 쪽으로 각각 조성되어 있는 연못에 핀 연꽃과 연못에 비친 주변의 매화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남계서원의 누마루가 휴식공간의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연못을 나란히 조성한 연유는 탁한 물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을 군자로 여겼고, 굳센 의지를 좋아했던 정여창의 마음은 찬 겨울을 뚫고 피어난 매화에 서려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남계서원의 정문 역할을 하는 풍영루의 2층 누각은 원생이나 유림이 모여 회합을 하거나 시회(詩會)를 열며 풍류를 즐기고 심성을 도야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풍영루에 올라 바깥 경치를 바라보면 서원 주변의 수려한 산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문묘나 향교, 서원의 경내에는 노거수(老巨樹)로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공자가 은행나무 밑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걸 ‘행단(杏壇)’이라 하고 행단은 유교 교육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 명륜당 앞의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남계서원에는 은행나무가 없다.

이철우 본지 회장  lc34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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