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산청 신안면 수월리 거주.

“아고, 맛이 왜 이리 쓰나.”

남편이 앉자마자 된장국을 맛보며 말한다. 순간 놀란 내 숟가락이 뒤따라 입에 들어간다.

“어, 진짜 왜 이렇지?”

마당에 나가 호박잎이며 가지, 고추, 상추, 깻잎 따서 다른 날보다 정성껏 호박잎 된장국을 끓였는데. 나보다 된장국에 역사가 깊은 남편도 뚝배기를 휘휘 저어보고 몇 숟갈 더 먹어보지만 원인을 밝히진 못했다.

“양파가 썩었는가? 된장이 맛이 갔나?”

혼자 중얼거리며 된장국을 어떻게 끓였는지 말해보란다. 마치 교무실에 끌려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하는 학생처럼 주눅이 들어 순서대로 자세히 읊었다. “국물 내서 호박이랑 두부 넣고, 호박잎도 따서 총총 썰어 넣고, 양파랑 고추도 파랑 같이 넣고….”

“오데서 호박잎을 땄는데?”

물으면서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데 뭔가 잘못된 건가 싶었지만 “여기 있네. 이거 따고 저기서 고추 따고.” 목소리 힘주어 또박또박 대답했다.

남편은 말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난 불안한 만큼 억울한 마음에 뒤따라 들어가며 개미 목소리로 “호박잎 맞잖아요….”

“그게 호박잎이가? 해바라기 잎이지!

“네?”

해바라기 심어놓은 옆에 호박을 심어 호박넝쿨이 해바라길 타고 올라가면서 옆으로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호박잎과 해바라기 잎은 내 눈에 쌍둥이처럼 보였다.

벌써 1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제는 집에서 농사지은 고추로 고추장도 담그고 2년마다 메주도 쑤어 된장과 간장을 담근다. 이는 시어머님께 귀동냥으로 배우고 기억이 흐릿할 때는 현명하게 폰으로 배웠다. 4, 5년에 한 번씩 담그는 멸치액젓은 시고모님이 전수하셨다. 사실 액젓은 전수라 할 것도 없다. 천일염만 좋으면 그만이다.

마산 진동에 살던 시고모님은 내게 시아버님을 대신한 사려 깊은 분이다. 한번은 당신 집수리하는 동안 옆에 사는 딸내미집 안 가고 산청까지 와서 두어 달 지내다 가셨다. 그때 동동주를 만들자 하여 몇 날 만들어봤는데 공만 들었지 맛은 들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남편이 몇 번 도전했으나 마트 맛을 이기긴 어려웠다.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손맛을 시어머님과 시고모님께 배웠는데 이젠 두 분 다 가시고 남편 잔소리로 맛을 내고 있다. 늘 하는 것이 상차림이지만 늘 오늘은 뭘 먹지 고민한다. 다행히 된장국이면 그만인 사람이라 갈치 한 마리 같이 올라가는 날에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구나 느끼는 듯도 하다.

요즘 같은 장마철엔 호박잎이랑 가지 따다 폭폭 쪄서 호박잎은 양념장에 한 쌈 가득, 가지는 들깨가루에 조물조물하면 여름맛이 난다. 귀촌한 지 20년, 텃밭살이에 꽤나 익숙해졌다. 비가 오는 중에도 아궁이 불 때기는 남편보다 잘하고 지네를 발견하면 또 한 마리 나올 때까지 뒤지기도 한다. 이뿐이랴, 하얀 목련 필 때면 봉오리 펴기 전 목련차 만들고, 곡우 되면 남편과 황차 만들고, 7월엔 막힌 코 뻥 뚫어주는 박하차도 만든다. 이만하면 멋지게 촌스러워진 게지.

주말 부슬거리는 빗속에 지리산 다녀온 남편을 위해 내일 아침상은 호박잎 된장국이다. 가마솥에 곰국도 사흘을 끓이는데 이깟 호박잎 된장국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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