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소설가

저녁을 먹고 나면 산책을 한다. 낮시간 내내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 운동이 필요하다. 한참 길을 걷다 보면 땀과 노폐물이 빠져나오고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걸 느낀다.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거나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과 통화하며 하루 일을 나누기도 한다. 산책은 내게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다.

집에서 몇 걸음 나가면 경호강과 양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가 있고, 강을 따라 성철스님 생가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펼쳐진다. 엄혜산과 강 사이 조붓한 오솔길에 데크와 야자매트를 깔아 걷기에 편하다. 산책길 따라 흐르는 강물, 맑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 강 위를 낮게 나는 새들 바라보며 가벼이 걷는다. 저 멀리 지리산 봉우리 사이로 해가 지면서 하늘과 강을 붉게 물들인다. 강가 키 큰 나무들이 잎을 흔들고 초록 내음 머금은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면 문득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인사한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인 듯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노부부가 다정히 걸을 때 보면 뒷모습이 많이 닮았다. 오래도록 마음을 맞추며 살아와서 걸음걸이가 닮아진 걸까. 반려동물과 함께 걷는 이들도 만난다. 목줄을 꼭 쥔 손에서 반려동물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둔치 안쪽 농구대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튕기며 즐겁다. 이런 한적한 시골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얼마나 귀한지, 그 모습에 절로 미소 짓는다.

한 시간여 산책으로 하루가 흐뭇한데,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 있다. 강변 둔치에 세워놓은 캠핑카와 너른 잔디밭에 펼쳐진 텐트가 바로 그것이다. 분명 이곳은 허가된 캠핑장이 아닌데도 캠핑족들이 속속 찾아온다. 그들은 전망 좋은 길목에 캠핑카를 세워놓고 테이블을 펴고 앉아 고기를 굽고 음식을 먹으며 연기와 냄새를 풍긴다. 심지어 길바닥에 술자리를 펼쳐놓고 큰소리를 내고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도 있다. 잔디밭 군데군데 자리한 텐트도 꼴불견이다. 텐트 안에서 음악과 불빛이 흘러나오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산책으로 맑아진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다.

며칠 전이었다. 어스름한 시각에 텐트가 쳐진 뒤쪽으로 걸어가는데 한 남자가 텐트에서 나오더니 강을 향해 서서 볼일을 보는 게 아닌가. 놀랍고 민망해서 걸음을 멈췄다. 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볼일을 봤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 집에 와야 했다. 이대로 참아야 하나, 난생처음 민원이라도 넣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원지강변 둔치는 누구라도 탐낼 만한 캠핑장이긴 하다. 간혹 도시 사는 친구들이 내 집에 놀러 오면 술과 고기를 사 들고 둔치 잔디에 자리를 펴고픈 충동이 드니까.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다. 나의 이기적인 행동이 둔치를 찾는 이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우리 동네 산책길이 부디 오래오래 평온하길 바란다. 무지한 이들에게 짓밟혀 상처받는 걸 원치 않는다. 풀 한 포기, 강물 한 방울도 내 것이 아니다. 소중하게 지켜서 저기 뛰노는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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