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

▲ 백두산 천지연 호랑이. ⓒ이목일

▲ 지리산 북두칠성 호랑이. ⓒ이목일

“이 호랑이는 우리랑 같이 뛰어놀 수 있고, 또 토끼가 담배 불을 붙이고, 까치랑 뛰어노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백두산 호랑이입니다.”

이목일 화백의 그림은 우리 땅, 우리 이웃을 꼭 빼닮았다. 그의 작품에서 호랑이는 자연을 배경으로 재미있고 친근하게 그려졌다. 백두대간을 상징하는 등을 가진 호랑이서부터 인왕산 호랑이, 활짝 웃는 호랑이, 달빛 아래 포효하는 호랑이 등 그 모습도 다양하다.

호랑이 그림 1만 점을 그려 ‘호랑이 화가’로 불리는 이목일(58) 화백은 경인년 새해를 맞아 기대가 크다. 올해가 호랑이를 그리기 시작한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호랑이 해’이기 때문이다.

안의 용추계곡 함양예술마을에서 둥지를 털고 있는 이 화백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2주일간 ‘호랑이 혼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호랑이 1만 마리 초대 개인전에 나섰다.

그의 지론은 명쾌하다. “호랑이를 그리되 호랑이를 그리지 마라. 호랑이를 그리지 말되 호랑이를 그려라.”

▲ 지리산 호랑이. ⓒ이목일

이 화백이 처음 호랑이 그림을 그릴 때는 털까지 상세하게 실사로 그려 이틀에 한 장을 완성할 정도로 시간이 걸렸지만, 점점 단순화되더니 1만 점에 가까워질 때는 물방울을 봐도 호랑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하루 종일 호랑이 그림에 몰두하다 보니 나중에는 하루에 100장 가까이 그린 날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감이 안 나올 때는 한 달이 가도 호랑이를 그리지 못할 때도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3년 만에 호랑이 그림 1만 점을 완성한 이 화백은 2003년 한인 미주 이민 100년을 기념해 뉴욕에서 호랑이 1만 마리 전시회를 가졌다.

또 2004년엔 제주도에 온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본인의 이름인 ‘호랑이’를 1만 점 그린 화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고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이 화백의 호랑이 판화작품 12점을 사가기도 했다.

이목일 화백 연보     ▲ 이목일 화백. 약력 - 1951년 경남 함양 출생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 일본 창형미술학교 졸업 -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 수학 주요 개인전 - 77 개인전(함양) - 83 개인전(고마이화랑, 동경) - 84 개인전(관훈미술관, 서울) - 94 개인전(캘러리카라 개관 기념초대, 서울) - 2003 호랑이 만마리 개인초대전(미국 뉴욕) - 2005 개인초대전(코벤아트 갤러리, 캐나다             벤쿠버, 뉴욕 뉴저지) - 2008 개인전(북경올림픽기념 연우화랑            초대전, 북경) - 2009 개인전 모성회귀(신미화랑, 대구) - 2010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기획 초대개             인전(서울) - 현:한국미술가 협회원 - 한국전업작가 회원 - 전주대학교 미술과,   산업미술과 강사 역임(84~91) - 한국미술협회 서양화분과 이사 역임 - 한국장애인대전 심사위원 역임 -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 심사위원역임(2006)

그가 이처럼 호랑이에 몰두하는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 화백이 처음 호랑이를 그리기 시작한 때는 2000년 봄. 고양시 원당역 인근 마을회관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이 화백이 밤에 교외선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것으로 잘못 보고 크게 놀란 뒤부터였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보다는 호랑이의 기백과 혼에 더 끌렸고, 그때부터 붓을 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호랑이의 눈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웠다”며 “영물인 호랑이의 혼과 기백이 눈의 모양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고 말했다.

감윤조 예술의전당 미술부장은 이 화백의 표현방식에 대해 “한 화면에서 농묵과 담묵이 번갈아 다루어지고, 정제되고 간략한 호랑이의 실루엣은 화면에 활력을 준다”면서 “그의 회화적 특징은 다양성으로 호랑이 그림은 무욕의 상태, 선의 경지에서 나온 회화라라는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호랑이를 그려보니 우리에 갇혔던 동물이 풀려난 것처럼 해방된 기분”이라며 “올해에는 민족혼이 담긴 호랑이의 웅대한 정신과 기운으로 우리 국민들이 모두 나아간다면 안될 게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 백두대간을 등뼈로 삼고, 갈래갈래 뻗은 산맥을 줄무늬로 표현하는 ‘호랑이 화가’ 이 화백. 올해는 그의 작품이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한 해이길 소망한다.

한편 이 화백은 오는 4월 27일부터 10일간 부산 그랜드호텔에서 개인 초대전이 개최되고, 5월에는 서울 프리마호텔에서 유화소품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목일의 호랑이 그림을 보고 - 정목일(수필가, 미술평론가) -  화가 이목일은 어째서 호랑이 1만 마리 그리기에 열중했는가. 세잔느가 사과 1만 개를 그리고자 할 때, 동료 화가들은 시간의 낭비와 소재에 대한 빈곤성 등을 들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세잔느의 사과 그리기는 그냥 외양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 알의 사과가 열리기까지 전 과정과 영혼을 그려보고자 했다. 이목일의 호랑이가 그렇다. 2003년 벽두에 미국 뉴욕에서 가진 이목일의 호랑이 만 마리 전은 큰 충격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현대 도시문명을 상징하는 뉴욕의 한 복판에 한국의 호랑이 만 마리를 풀어놓은 이목일의 기백과 정신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첨단과 편리로 치닫는 뉴욕에 때 아닌 호랑이의 포효는 인간이 잊고 있었던 자연과 야성과 순수의 함성이었다. 호랑이는 한반도의 형상을 상징한다. 단군신화에 호랑이가 등장하여 민족과의 인연을 맺고 있으며 선사시대부터 다양한 형태로 그려져 왔다. 민화, 전설, 민담에 이르기까지 호랑이는 친근한 동물로써 등장한다. 민화 속의 호랑이는 위엄이 있으면서도 무섭지 않고 늠름하다. 젊잖게 입을 다물고 있거나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때로는 바보같이 멍청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대중들에게는 다정하고 친숙감을 주게 하는데, 세계 어느 곳에서도 호랑이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백성들의 집에서 수호신으로 호랑이를 그려 집안 곳곳에 붙였다. 호랑이는 용험스런 짐승이어서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주고 병난, 질병, 기근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다. 한국인의 마음속엔 언제나 돌아가 보고 싶은 청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이 청산이야말로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산에서 나서 산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움과 동경의 의탁처가 바로 산이었다. 산의 주인이 바로 호랑이였고. 신격화된 것이 ‘산신령’ 이었다. 호랑이는 ‘산’ 이란 성지(聖地)를 수호하는 신(神)인 셈이다.

김정화·이용우 기자  kimjh@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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