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기 짝이 없는 남도의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것은 길이 아니라 남도의 멋이요, 정신임을 느끼게 된다. 이 땅 가장 끄트머리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 보여주는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공존이다. 그리고 땅이 끝나는 그 곳,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희망의 길을 보았다. 

▲ 해남 땅끌마을. ⓒ김정화

▲ 땅이 끝나는 그 곳,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희망의 길을 보았다. ⓒ김정화

아홉 숲이 만들어 내는 대흥사 가는 길

봄은 희망을 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계절이다. 한 해의 시작이 1월부터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시작은 시린 겨울을 벗어나는 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남도는 희망의 땅이다.

희망을 맞이하기 위해 나선 남도의 첫 번째 여행지는 자연스런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흥사 가는 길.

▲ 대흥사 가는 길. 봄의 향기는 대흥사에 이르는 길 입구 2km 구간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김정화

대흥사는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있는 두륜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대흥사가 자리한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는 ‘아홉 숲’ ‘긴 봄’을 뜻한다. 그래서 울창한 숲이 아홉인 이곳은 녹음이 오래가고 긴 봄을 누릴 수 있다. 봄의 향기는 대흥사에 이르는 길 입구부터 2km 구간의, 수백 년 묵은 갖가지 수목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하늘을 가린 채 나무터널을 만들어 놓은 벚나무, 삼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 수 백년 묵은 갖가지 수목들은 저마다 연륜을 자랑하며 길게 뻗어 초록의 예쁜 숲길을 만들고 있다. 천 년 묵은 나무가 만들어내는 대흥사에 들어서면 웅장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 규모가 큰 절이기도 하지만 가람의 구조가 4개의 권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절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 당대 추사 김정희와 함께 최고의 문필가였던 원교 이광사가 쓴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 ⓒ김정화

대흥사에는 볼거리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 찬 곳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대웅보전 현판과 관련된 일화이다.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은 당대의 문필가였던 원교 이광사가 쓴 것이다. 제주도로 귀양 가던 추사 김정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초의선사에게 대웅보전 현판을 떼어 낼 것을 말했다. 그리고 8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른 그는 현판을 다시 내어 걸 것을 부탁한 것.

그 당시 자신이 글씨체가 갖는 수려함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인정한 셈이다. 치우침 없이 예술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추사 김정희와 보편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예술의 의미를 아는 원교 이광사는 확실히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나 보다.

차향 그윽한 선교양종의 대도량 두륜산 속 대흥사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와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의 유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표충사는 서산대사와 그의 으뜸 제자인 사명당, 처영대사를 함께 모시고 있는 유교식 사당으로 그들의 애국심을 높이 사, 1789년 정조 임금이 금물로 쓴 표충사 편액을 직접 써서 내려주기도 했다.

그 앞에 위치한 성보 박물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 선시, 임금이 내려 준 교지, 정조가 보내온 금병풍 등이 보관되어 있다. 또 별도로 마련된 초의관에는 우리나라 다도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초의선사가 쓴 동다송, 다신전 등의 귀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는 소원과 관련된 많은 볼거리들이 있어,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한 간절한 소원 하나쯤 조용한 이곳에 풀고 희망을 안고 갈 수 있다. 천개의 불상이 있는 천불전은 3번만 절을 해도 3천 번이 절한 것이 되어,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겁 천분의 부처님, 현재겁 천분의 부처님, 미래겁 천분의 부처님께서 나를 돌봐 주시게 된다.

또 두 개의 나무뿌리가 엉켜서 하나로 이어진 나무 연리나무 앞에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리나무 앞에는 촛불을 모시는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간절히 바라는 이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초의선사가 만들었다는 연못 무염지는 전체적인 배치는 굴곡모양 연못과 중심에 위치하지 않은 작은섬을 만들어 놓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며, 특히 절에서 바라보면 심(心)자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불교경전을 넣는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윤장대는 그 생김새가 독특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북위 34도17분21초, 삼천리 금수강산

▲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 북위 34도17분21초. ⓒ김정화

대흥사에서 정화된 마음을 안고 땅끝마을로 향하는 길은 희망 가득 품은 모습 그대로이다. 땅끝마을은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경치가 좋기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땅끝마을은 횟집을 비롯한 음식점과 민박, 펜션 등 숙박시설이 들어선 마을이고 정확한 관광지는 땅끝마을의 사자봉에 위치한 땅끝전망대와 땅끝탑을 말한다.

꼬불꼬불한 사자봉의 길을 올라가다보면 주차장을 만날 수 있다. 사자봉 바로 아래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끝없이 펼쳐진 시원한 바다의 절경이 가슴을 울리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주차장의 옆으로 난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땅끝전망대에 다다른다. 길이 생각보다 많이 가파르기 때문에 꼭 편한 신발을 싣고 오르기를 추천한다. 코발트 빛 해안풍경과 아름다운 섬들을 감상하며 올라가면 땅끝전망대에 올라선다.

북위 34도17분21초. 북으로는 함경북도 은성부, 남으로는 이곳이다. 이곳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까지 2천리, 그래서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 일컫는다.

땅끝전망대는 35m 높이의 잘 지어진 건물로 아름다운 외관과 경치로 사진촬영의 명소라고 알려져있다. 종합전망대인 9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전남지역의 관광명소를 사진으로 쭉 훑을 수 있다.

종합전망대에 올라서면 땅끝마을의 전경과 바다의 모습이 펼쳐진다. 동전망원경을 이용해 구석구석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땅끝모노레일을 타고 감상하면 자연의 풍경과 촉감이 그대로 눈과 마음에 와 닿는다.

끝은 돌아보면 새로운 시작이거늘

땅끝전망대 아래 작은 토말비 옆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땅끝탑이 나온다. 생태산책로인 이곳은 생각보다 먼 길이므로 급하게 갈 생각 말고 천천히 가족과 연인과 담소를 나누며 산책을 한다는 생각으로 혹은 혼자여행길이라면 사색을 한다는 생각으로 내려가자.

빼어난 절경의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고 가노라면 섬과 섬 사이 인간과 인간사이의 의미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한반도 최남단을 기리는 땅끝탑이 있다. 그 옆으로는 뱃머리모양의 조형물이 있는데 실제적으로 위치상 이곳이 땅끝이다. 이곳에 올라서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 구석에서 벅찬 감동이 물결이 일렁인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의 마지막인 곳이다. 끝은 돌아보면 새로운 시작이거늘….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전라에서도 맛의 고향으로 통하는 그 곳

▲ 전라도 해남 맛의 첫손에 꼽히는 천일식당의 떡갈비정식. ⓒ김정화

전라도 여행에서 음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가운데서도 전라도에서 맛의 고향으로 첫손에 꼽히는 곳이 해남이다. 천일식당은 해남의 유명한 식당으로 이곳에 와서 들리지 않으면 후회할 정도로 소문난 식당이다.

주메뉴는 떡갈비정식. 따뜻한 아랫목에서 받는 푸짐한 한상은 집에서 밥을 먹는 듯 편안하다. 상차림 또한 으리으리한 그릇과 장식으로 멋을 낸 것이 아니라 투박한 모습 그대로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진 음식 속에 제일 먼저 주인공 떡갈비를 맛봤다.

젓가락을 살짝만 대도 고기가 잘도 썰어진다. 숯불향이 후각을 자극하더니 몇 번 씹으니까 사르르 녹아버린다. 다시 한 번 한 점 베어모니 씹을수록 고소한 감칠맛의 육즙이 입안을 가득 맴돌며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한다. 25가지의 밑반찬이 따라 나오는데 하나 같이 밥도둑인 것이 확실하다.

전남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태와 창란, 토화, 벤뎅이, 석화 등 각종젓갈이 특히 맛있다. 또 청어구이, 고등어조림, 고추소박이, 명태조림, 양념개장 등 밥 한술 뜨고 무슨 반찬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 이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표고버섯튀김은 별미 중의 별미다.

김정화 기자  kimjh@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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