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현 - 간디유정란농장 농장지기

솔향 그윽한 산청 둔철산 자락 숲 속에 둥지를 튼 지도 어느새 16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귀농이 아니라 숲으로 들어왔습니다. 날마다 초록의 기운을 수혈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슬만 먹고 사는 건 결코 아니지요. 제가 이렇게 하루 반나절만 일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제법 긴 시간 철저히 준비를 한 덕택이고, 또 이렇게 사는 게 지속가능한 까닭은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 배경은 ‘호텔 꼬꼬’-우리 마을에 있는 간디학교의 아이들이 우리 닭장을 그렇게 부릅니다-에서 일 년 내내 쉬는 날도 없고 파업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면서 달걀을 쑥쑥 낳아주는 우리 닭들이고 두 번째 든든한 배경은 400가구 가까이 되는 우리 유정란 직거래 회원들이지요. 저의 열렬한 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와 우리 닭들 그리고 직거래 회원들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든든한 서로의 후원자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호텔 꼬꼬’와 우리 회원들이 있기까지는 저 나름대로 쏟은 많은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11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귀농을 하기 위해 제가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청주귀농학교였습니다. 그 후 가족 모두가 서울귀농학교를 마쳤고 저는 따로 강원도 횡성의 한국통나무학교도 수료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충북 괴산의 한 공동체농장에서 혹독한 머슴살이를 시작했습니다. 1년 2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몸만들기를 했던 게지요. 그곳에서 농사에서부터 이런 저런 허드렛일까지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를 사로잡은 게 바로 유정란이었습니다. 매달 일정량의 수입이 바로바로 현금화 되는 장점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닭을 알 낳는 기계로 보지 않고 사람과 같이 소중한 인격체로 대하면서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양계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바쁜 중에도 계사와 산란상자, 횃대, 모이통 등등을 하나하나 스케치하고 꼼꼼히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때가 제 삶에 있어서 바닥을 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이 지금의 튼튼한 뿌리내림에 훌륭한 밑거름이 된 가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희 유정란이 제법 입소문이 나 여기 저기 많이 찾기는 하지만 더 처음 시작할 때의 그 규모 이상으로 늘리지 않는 게 제 신념입니다. 그리고 텃밭 농사와 집 마당의 허브 밭 말고는 그 어떤 농사도 짓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우리 네 식구 먹고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숲 속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햇수로 16년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16년 전의 ‘맨 땅에 헤딩하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과 우리 고마운 닭들 그리고 끊임없이 주기만 하는 이 둔철산 자락의 숲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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