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숙 - 거창 가정주부

피곤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정신은 멍한 상태이며 눈알은 발갛게 충혈 되어 마치 빠질 것만 같은데 막상 잠들지 않는 밤의 연속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나날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크게 쉬기 버거웠지만 투정도 눈물도 보일 틈 없이 시간은 흘렀다. 멍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다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쉼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갔다. 순간 내 손은 자판 위를 두들겼고, 드르륵… 휴대폰 진동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국내 항공권 구매완료”라는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당황스러움과 가슴은 콩닥콩닥 ‘미쳤어, 미쳤어’, ‘정말 혼자 갈 수 있을까?’, ‘어… 아들 녀석은 어떻게 하지?’, ‘렌터카 운전하다 사고라도 나면…’ 자기 질책과 함께 오만 걱정근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미 대책 없이 저질렀으니 대책 없이 떠나자 하는 다짐을 하는 순간 평안은 찾아왔다. 그렇게 3박4일 일정으로 생애 처음으로 하는 혼자만의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첫날부터 난항이다. 태풍으로 인해 제주행 비행기는 1시간여 연착되었고 내가 머물 기간 내내 비를 예보했다. 저녁 8시 5분 도착. 제주는 무던히도 비가 내렸고 렌트한 차는 낯설기만 했다.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낯선 길 위에 겁에 질리고 당황한 체 방치되어 있는 나를 인식하는 순간 허허로운 웃음만이 나왔다. 마치 나의 지난날을 바라보듯 멍하니 안개 속을 주시하여야만 했다. 겨우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대생의 예쁜 미소가 내겐 안도감이요 위안이었으며 위로였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었으며 걱정근심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오로지 즐기기만 하자 다짐했다. 다행히 다음날 새벽 제주의 하늘은 비를 꾹 참아 주었고 새벽 산책길에 만난 한적한 도로와 돌담 그리고 이국적인 나무들은 안개 속에서 살포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그저 쉬고 싶어 왔다는 여대생 금빛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고선 생각도 목적도 비슷한 우린 2일 내내 붙어 구름처럼 유유자적 흘러 다녔다. 새벽부터 저지오름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며 푸른 제주의 상쾌함에 해맑은 미소를 짓고선 행복해 했다. 제주 해안을 따라 질주하며 아픔을 토해냈고 파도소리와 에메랄드 빛 바다에 감탄사를 남발하며 세상시름을 내려놓았다. 금능해변에서는 백사장에 앉아 꿈적도 않고 일몰에 심취하며 해변을 거니는 이들과 동화되어갔다. 그들의 웃음을 통해 행복 또한 전이되어 온 몸이 이완되었다. 사람이 없을 만한 곳만을 골라 다니며 우리는 제주의 어둠속에서도 검고 푸른 바다를 밝히는 수평선 위 등대 불빛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신비로운 자연을 품은 곶자왈 환상숲에선 눈물마저 핑 돌았다.

마지막 날 새벽어둠을 뚫고 가파른 새별오름을 올라 넋을 놓고 발갛게 물들어가는 제주의 일출, 파랗게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제주의 아침을 맞았다. 넓게 펼쳐진 초록의 들판위에 힘들고 고달픈 내 삶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일을 설계하며 되뇌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긍정은 걸작을 만든다고 했잖아. 난 할 수 있어. 두려워 말자. 앞으로 남은 길 분명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상처입고 넘어져 죽을 것 같더라도 언젠가는 미소 지을 때가 올 것이며 이 아픔으로 인해 화해도 있으며 성장도 있고 또한 기쁨이 있으리라는 것 알잖아. 힘내자. 파이팅!’

이렇게 예기치 않았던 혼자만의 제주여행은 나를 성장시켰다. 오늘도 난 앞으로 닥칠 나의 삶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이겨내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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