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광 - 빈둥협동조합 산하 농땡이농장 농부

01.

사과 농사를 같이 짓는 아는 형의 도움으로 논을 얻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렁이농법으로 벼농사를 시작했다. 우렁이농법은 논에 물만 마르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주변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마침 논 옆으로 작은 개울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니 이렇게 딱 맞는 입지 조건이 있나싶다.

본격 장마가 시작된다며 기상청이 겁을 주던 날, 혹시라도 큰 비에 논둑이 무너질까 보강하고, 논물이 넘칠까봐 물길을 내는 작업을 하다가 우연찮게 논을 들여다봤다. 조금씩이지만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우렁이, 작은 물고기들, 각종 곤충들, 벼는 분명히 아닌 여러 풀들. 처음 보는 온갖 생물이 논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해 넋 놓고 있는데 불쑥 구름이 들어오고, 바람이 불자 물결이 일고, 산이 우뚝 세워진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게 논이라고 어떤 이가 그랬는데, 그이는 틀렸다. 논은 세상 자체다.

처음 해보는 우렁이농법인데도 물 관리를 잘해서인지 잡초가 거의 없고, 수평이 맞지 않아 한쪽으로 물이 차 걱정이었는데 원래 수생식물이라 그런지 벼는 별 탈 없이 잘 자랐다. 다른 나라에서는 몇 십억 원에 샀다는 슈퍼컴퓨터를 몇 백억 원 주고 샀다는 기상청의 예보는 언제나 오보였고, 장마는 무슨, 두 달여를 가뭄에 시달리며 무더위에 고생하고 있다. 벼와 우렁이를 살피러 간 논은 바닥을 드러낸 채 어서 물을 달라고 입을 벌리듯 쩍 갈라졌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개울에서도 물소리가 그쳤다. 큰일이다, 비가 오는 수밖에 없다. 비야 제발 어서 와라.

02.

나는 40대 또래 친구들 셋과 함께 농사를 짓는 귀농인이다. 우리는 농사의 ‘ㄴ’자도 모르고, 돈(땅) 없고, 연고(지연, 혈연)마저 없다. 각자 귀농년도는 다르지만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첫 해는 할 일 별로 없다고 해서 심은 복분자밭에서 잡초 뽑는 일과 학동 어무이(동네에선 삼거리댁이라 부른다)가 무상으로 빌려주신 논에 벼농사를 시작했다.

평생 농사를 지으신 어무이는 여든이 되셨는데도 워낙 부지런하고 미루는 법이 없어서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약 쳐야 된다, 풀 베야 한다, 도구(물길) 내야 한다 등등 연락이 와야 논으로 갈 때가 많고, 그마저도 다른 일로 늦게 가면 우리 논인데도 어무이가 직접 하고 계실 때가 많다. “아이고, 왜 직접 하세요, 우리보고 하라고 하면 되지!” 했다가 “와야 말이지, 보이는데 안할 수 있나!”라며 ‘쿨’한 대답을 하시면 미안하고 부끄럽고 고맙다. 논에 들어가 있는 우릴 보고는 지나가던 동네 분들이 “장정 여럿이 일을 하네!” 하고 말을 넣으면, “응, 아들 넷이 생겼다!” 하며 자랑하듯이 대꾸하시는데, 왜 그런지 그냥 기분이 좋아서 으쓱거린다.

어무이는 매년 고추 농사를 지으시는데, 우리도 올해 고추 심어볼까 한다니까 아무렇지 않게 본인 밭에 같이 하자고 하신다. 우리 중에 한 명은 전생에 엄청난 공덕을 쌓은 게 분명하다.

농사가 뭔지도 모르는 새로 얻은 아들 넷한테 농사를 가르쳐주셔야 하니 올해도,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언제나 건강하시길 빈다. 아주 작은 덩치에 개구쟁이 웃음을 날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어무이가, 가뭄에 비 내리듯 그렇게, 그냥 오신 거다.

서부경남신문  webmaster@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