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서 - 전 브니엘예술고등학교 교장

평생 몸담았던 교직에서 퇴직하자 곧바로 터전이었던 부산을 떠나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한지 어언 3년이 지났다. 하는 일이라곤 마당의 잔디밭과 정원수들 그리고 앞마당 귀퉁이와 집 뒤에 마련한 텃밭관리가 다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에게는 이 일이 벅차기만 하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었고, 아내는 비록 시골출신이라 하지만 어릴 때 가족이 모두 도시로 나왔다하니, 따지고 보면 우리 부부 다 시골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셈이다.

처음 우리 부부의 시골생활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그래도 아내는 나보다는 좀 더 적응속도가 빨랐지만 나는 영 젬병이었다. 앞마당에 새로 조성한 잔디밭에서 아침마다 풀을 뽑는데 잔디와 풀의 구분법은 참으로 난해했다. 반년이 지나도 여전히 더듬거리는 나에게 풀과 잔디를 나란히 놓고, 이제는 제법 우등생 노릇하는 아내가 몇 번이고 구분설명을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게 그거였다. 텃밭 둘레에 심어놓은 콩들이 싹을 틔워 한 뼘 정도 자랐을 때, 그것도 풀 인줄 알고 내가 모두 베어 버리는 바람에 첫해의 콩 농사는 허사가 되었다.

동네주민들의 조언으로 각종 작물들을 심었지만 툭하면 병들기 일쑤였고, 일이 있어 한 동안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그 사이 풀이 작물들보다 더 크게 자라있어서 주민들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어찌어찌 수확을 하고 보면, 조금 과장하여 말해, 한해 농사가 겨우 한 소쿠리 정도여서 우리 부부는 거저 마주보고 허망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군대에서 잠깐 잡아보았던 삽 외에 낯설기만 한 낫, 호미, 사스랑, 심지어 예초기 작업까지, 저녁이면 삭신이 수셨다. 비록 텃밭농사라 하지만 이렇게도 일이 많고 힘든데, 그 넒은 논밭에 새벽부터 일어나 그것도 풍성히 가꾸어가는 농민들을 보면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처음해보는 농사도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각종 벌레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아무리 문단속을 해도 이놈들은 실내까지 들어왔다. 거미, 귀뚜라미, 지네, 그 외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벌레들, 특히 아내는 이런 벌레들이 질색이었다.

물론 지금도 초년생에 속하지만, 그래도 시행착오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적응되고 익숙해졌다. 농기구의 사용도 손에 조금 익었고 텃밭의 작물들도 제법 수확이 되고 있다. 비록 양은 많지 않지만, 철따라 생산된 농산물들을 도시에 사는 지인들과, 결혼해 서울에서 살고 있는 딸네 집에 택배로 보내고 나면,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보람과 기쁨에 우리부부는 행복해 한다.

비가 갠 다음 날, 멀리 둘러선 산자락에 비단결처럼 걸려있는 운무는 마치 꿈결처럼 황홀하고, 힘들게 밭을 일구고 잠시 그늘에서 땀을 식힐 때 문득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세상 근심걱정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한 그릇의 냉수는 천하의 그 어떤 불로장생수보다 값지다. 데크에 앉아 바라보는 해질녘의 석양,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한여름 밤의 별들, 가을이면 집 아래로 펼쳐진 넓은 들판이 온통 황금빛으로 넘실거리고, 자고나면 밤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겨울. 무엇이라 표현 할 수 없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가슴 가득 터져라 차오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역시 귀촌하길 잘했지…”

퇴직을 할 무렵, 처가의 형제들로부터 전원생활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귀촌이라니? 나는 시골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고 친척들도 모두 도시에 살았으므로 시골이란 나에게는 생소한 곳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퇴직 후 지금까지와 같이 이대로 도시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익숙하고 편한 삶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또한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니 만큼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러나 그 삶은 새롭고 흥미로울 것이고 내 노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잠시의 고심 후,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처가 형제 팔남매 중 다섯 가족이 이곳 지리산 작은 산자락을 구입한 후 터를 닦고 여섯 채의 집을 지었다. 한 채는 공동주택 용. 처음에는 나의 이 귀촌 결심을 주변에서는 대부분 말렸다. 불편해서 못 살아요. 심심해서 못 견딜걸요. 한 삼년만 있다가 오세요.

그러나 삼년이 지난 지금 나는 조금도 그럴 마음이 없다. 종합병원, 극장, 지하철, 백화점 등이 없어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맑은 공기와 태양, 깨끗한 물, 매미, 개구리 울음소리가 있어 정겹고, 텃밭에서 자라는 싱싱한 농작물과, 아침마다 따 먹는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는 평생 도시쟁이였던 나에게는 정말로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이요 즐거움이다. 혹시 지금 나의 이 새로운 삶이 로버트 프로스트가 노래했던 ‘가지 않은 길’은 아닐까? 너무 비약한 감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이 새로운 생활에 크게 만족해하고 행복해하고 있다.

며칠 전 서울의 딸아이가 막 세 돌이 되는 외손자를 데리고 이곳으로 피서를 왔다. 제한 많은 아파트에 갇혀 지내던 외손자에게는 이곳 외갓집이 천국이다. 거실에서 마음대로 뛰고 구르고, 고함도 지르고, 마당 옆 수도꼭지 틀어놓고 물놀이도 하고, 매미채 들고 잠자리와 메뚜기도 잡고….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덥지만 그래도 해가 막 넘어간 저녁은 제법 선선하다. 현관 앞 데크위의 평상에 가족들이 앉았다. 뒷밭에서 막 따온 수박을 아내가 칼로 잘랐다. 잘 익은 속살을 한 입 베어 무니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앞마당 담장을 따라 장미, 라일락, 능수화가 피어있고, 그 옆으로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집 아래로 펼쳐진 들판은 초록으로 가득하고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점점이 걸려있다. 지금 앞마당의 파란 잔디밭위에서는 새까맣게 탄 외손자가 돌아가는 스프링클러의 물줄기를 따라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다. 아내는 외손자의 모습에 입이 귀밑에 걸렸고 딸아이는 연방 조심해라를 외치고 있다. 눈을 감고 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아!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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