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현 - 산청 간디유정란농장 . 농장지기

16년 전 산청으로 귀농하면서 함께 시작했던 숲 해설가 활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숲샘이란 별명으로 이젠 지리산 둘레길을 길동무들과 함께 걸으며 지리산의 속살을 만나고 있다. ‘숲샘과 함께 걷는 지리산 초록걸음’이란 정기 프로그램을 진행한지도 어느새 7년째, 지리산 둘레길 22개 구간 약 290Km를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40여명의 길동무들과 함께 걷는다. 이렇게 둘레길 길 안내를 하면서 닭 키우는 일 말고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 코디네이터라는, 아마도 대한민국 1호일게다.

지리산 둘레길은 ‘고개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만나는 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들녘을 따라 삶과 노동을 만나는 길, 강을 건너 머리칼 흩날리는 바람을 만나는 길, 숲을 따라 숲 속의 뭇 생명들을 만나는 길, 끝끝내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는 치유의 길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가슴에 안고 걷는 순례의 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위로만 위로만 오르려는 수직의 걸음이 아닌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사람과 마을을 만나는 수평의 길이 진정한 둘레길의 의미인 것이다.

지리산 초록걸음은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참가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걸으며 지리산에 깃든 이야기와 함께 길섶에서 만나는 다양한 풀과 나무들에 대한 재미난 숲 해설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 어른 모두 즐거워한다.

그리고 초록걸음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시와 노래가 곁들여 진다는 점이다. 그 달 걷는 구간과 계절적 특성에 맞게 시와 음악을 선정하는 작업에도 상당한 공을 기울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초록걸음은 다만 둘레길을 걷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걸었던 둘레길에 대한 모니터링을 설문지를 통해서 실시하고 있다. 그 구간에 대한 좋았던 점 뿐 아니라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아내어 해당 지자체나 둘레길을 관리하고 있는 ‘사단법인 숲길’에도 건의를 하기도 한다. 명실상부한 시민 모니터링단의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초록걸음은 해마다 한 해 동안 사용할 표어를 정하는데, 올해는 ‘둘레길 그 길 위에서 사람과 마을을 만나다’라는 문구를 정했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서 지리산의 지혜와 그 고마움을 느껴보자는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9월 초록걸음은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함양 벽송사에서 출발해 엄천강 따라 용유담까지 걸을 예정이다. 실상사 해탈교를 지나고 백무동계곡, 칠선계곡 골골 물들이 모여 흐르는 엄천강은 용유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용유담도 만에 하나 지리산댐이 들어선다면 물속에 잠기게 되고 만다. 그래서 이번 초록걸음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엄천강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아 댐을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볼 요량이다.

아무튼 지리산 둘레길을 두 발로 걸으면서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품에 안겨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초록걸음 길동무들의 길잡이가 되어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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