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은

     지식과 기술만이 아니라

     자기 말을 하고 소통하는

     대화능력이 더욱 중요해

윤인숙 - 간디숲속마을 대표 . 서울대 도시계획 박사

저는 인숙샘입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번 간디마을학교에 갑니다. 간디마을학교는 저희 마을 안에 있는 대안중학교입니다. 화요일 오전 9시 반, 저는 “기린대화법” 시간의 인숙샘이 됩니다. 학생은 1,2,3학년, 남녀가 골고루 섞인 5명의 아이들입니다. 대화하기 딱 좋은 숫자이지요.

화요일 아침이 되면 아이들 간식으로 뭘 준비할까부터 궁리를 합니다. 수업시간에 간식은 한 학기 한번만 허용됩니다. 그래도 준비를 하게 됩니다. 마을학교는 기숙학교이고 마을에는 상점이 없어서 아이들은 늘 먹을 것에 목말라 있습니다. 간식은 마을학교를 졸업한 둘째 아이가 수업의 인기비결이라고 알려준 것이기도 하지요. 메뉴는 제가 기르고 말린 박하차나 과일, 삶은 유정란, 뒷산에서 주운 밤, 직접 만든 빵 등입니다.

그 후는 오늘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까 궁리를 합니다. 물론 준비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주 전 화요일이 그랬습니다. 집을 나서니 날씨가 너무 좋고 뒷산에 수북할 밤 생각이 납니다. 교실 안에 있기가 아까웠습니다. 야외수업을 하면 어떨까? 일단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오늘의 느낌과 욕구를 물었습니다. “어제 밤늦게 자서 피곤하니 쉬고 싶다. 숙제 안 해서 학점 미이수 될까 걱정이라 희망이 필요하다. 무기력한데 뭔가 도전해서 보람을 느끼고 싶다, 심심해서 재밌게 놀고 싶다” 등이 나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모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에?…” 조용하길래 냉큼 제안을 했습니다. “뒷산에 가서 밤 줍고 그거 부모님께 보내드리면 어떨까? 쉬고 싶은 사람은 거기 가서 쉬면되고 학점 미이수 해결방안은 밤 주우면서 같이 생각해 보고. 어때?” 모두가 “좋아요~” 합니다.

우리들은 봉다리 하나씩을 들고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각자 주운 것을 자기 부모님께 보낸다니 다들 열심입니다. 하다가 쉬고 싶은 사람은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다 같이 모여 오늘의 욕구가 충족되었는지 물었습니다. “희망은 충족하지 못했지만 재밌었으니 괜찮다, 뭔가를 이룬 것 같아 보람 있다. 쉬는 것만 휴식이 아니고 여유 있게 노는 것도 휴식인 걸 알았다. 재밌었다.” 밤 줍기를 통해 모두의 욕구가 충족되었으니 이로써 수업은 충분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맡긴 밤을 씻고 말린 후 풀 한 포기와 함께 하얀 부직포 주머니에 담고 박하 한 봉지와 함께 소포로 부쳤습니다. 다음날 한 엄마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준이엄마에요. 오늘 선물 받고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요즘은 마을학교에 보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학기 때는 아이가 힘들어해서 저도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준이가 샘의 수업을 통해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해요. 진짜 기분 좋은 가을날 오후네요.”

준이는 지난 학기에도 수업을 들었던 1학년 아이입니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이번 학기에 다시 만났습니다. 매일 매일이 억울하고 분해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못하던 아이였는데, 이번 학기 첫 시간에 하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돼요. 수업을 다시 듣게 돼서 기분 좋고 기대되지만, 예전처럼 내 말만 해서 다른 사람 짜증나게 할까봐 걱정도 돼요. 다른 사람 말을 잘 듣고 싶어요.” 아이의 성장에 이어 부모의 안심을 전해 들으니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이 일렁였습니다.

간디학교 설립자가 마을과 학교를 함께 구상할 때에는 마을이 학교이고 마을주민이 교사가 되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지식과 기술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에너지와 아이들에게 적합한 대화 능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회사나 조직에서 어른들하고만 일했을 뿐 아이들과 놀아본 적 없는 제가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 무척 걱정이 되었습니다. 과연 애들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 하구요. 그러나 놀랍게도 대화법 시간을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자기 말을 할 수 있고 누군가 자기 말을 잘 들어주어서 좋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 듣기에 지친 아이들에게 자기 말 할 수 있는 수업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 초등시절 꿈이 학교선생님이었네요. 마을 살면서 어린 시절 꿈을 이룬 것입니다. 마을에 살다보니 잊혀졌던 꿈들이 하나 둘 실현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윤인숙  yoonis@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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