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일할 때 가장 행복
꾸러미사업 위해 매장 운영

시골서 큰 어려움은 수익성
도시와의 지속적 매출 강구
 

이무선 ‘농부愛곳간’ 지킴이.

작년 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해 책 한권을 들고 원지에 있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갔다. 창가쪽 테이블에서 여자 한분이 연이어 통화를 한다. 저절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자니 사업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을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11월 3일, ‘농부愛(애)곳간’이라는 산청의 로컬푸드 1호점이 원지에 문을 열었다. 목화장터 밴드에 알림이 올라왔다. 생산물이 있으면 어느 것이든 가져와 달라고 한다. 호기심 삼아 나도 박하차를 들고 방문하니 주인장이 그 여름의 그 분이시다. 아, 그때 말한 게 이 일이 이었구나, 바로 연결이 된다. 두 달쯤 뒤 방문하니 세 개가 팔렸다. 나는 돈 대신 우리쌀 라면으로 바꾸었다. 이런 곳이 있으니 물물교환의 삶도 가능하겠구나 싶다.

3월부터는 이곳에서 매주 열리는 명상수업에 참여한다. 상담사로 일하는 우리마을 친구가 여는 수업이다. 매장 안쪽에는 내실이 있는데 처음 방문했을 때 비폭력대화 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무선님은 농부애곳간이 문화공간의 역할도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무선님도 수업에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업이 있는 날 오후, 약속한 시간에 찾아가니 보리메주를 들고 찾아온 생산자, 물건을 사러 온 소비자, 지나다가 들른 주민들로 매장이 북적인다. 둘만의 대화가 어려워 매장구경을 하다가 그들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이렇게 1차 인터뷰는 무산되고, 이주 뒤 2차로 그 곳을 찾아갔다.

무선님은 애초 꾸러미사업을 하고 싶었다. 작년에 사회적기업육성지원사업에 꾸러미로 사업계획서를 내고 선정된 후, 마케팅, 홍보 등에 대한 교육과 법인설립 과정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꾸러미가 제대로 되려면 안정된 생산품 확보가 중요했다. 그 준비과정으로 로컬푸드 매장을 먼저 열게 되었다. 농부애곳간은 농업회사법인으로서, 4인의 이사와 1인의 감사를 두고 있다. 이사진에는 원지 청담한의원의 김명철원장님과 서울농대출신의 성두환씨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무선님은 갈전리에 있는 민들레학교의 학부모다. 큰 아이가 민들레학교에 입학한 이듬해인 2012년에 귀촌했다. 귀촌 전에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정신과 간호사로 일했다. 간호학과를 나와 간호사 일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초반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부적응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시골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40대에는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해 가족상담학을 공부했다. 공부하다 보니 농촌으로 가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커졌다. 결국 대학원을 마치자마자 귀촌했다. 나답게 살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직장에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읽던 헬렌니어링의 책도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마침내 2012년, 갈전리 옆에 있는 외고리로 들어왔다.

산청 로컬푸드매장 ‘농부愛곳간’에 유기농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

매장을 찾은 생산자가 돈 대신 우리쌀 라면으로 교환하고 있다.

대화 도중 위층에 사는 건물 주인이 오셨다. 주말부부인데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라 저녁장을 보러왔다. 새로 들어온 장아찌도 맛보고 커피이야기, 차이야기 등을 나누다 두부와 상추, 장아찌를 사갔다. 다시 대화를 잇는다. 신앙인인 무선님은 20대 초반부터 땅을 일구며 참답게 사는 삶을 꿈꾸었다. 다행히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공무원이었는데, 무선님이 귀촌한 후 서울에서 기러기생활을 몇 년 하다가 사직하고 산청으로 합류했다. 막상 시골에 오니 남편은 농사일보다는 글쓰기에 집중해서 책을 몇 권 냈다. 밭을 일구는 등의 바깥일은 무선님 차지였다. 여자들은 잘 안하는 예초기 잡는 일도 직접 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다보니 몸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몸의 불편은 귀촌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다. 요즘은 지역에서 주민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지는 몸살림운동 모임에 열심히 나간다.

곳간이 문을 연지 5개월, 그간의 성과에 대해 물었다. 현재 제일 큰 어려움은 수익성이다. 매출은 겨우 운영해나갈 정도이다. 매장운영에 50만원 정도가 들어가고, 주 6일 일하는데 순수익은 50만원 내외이다. 그것으로 인건비를 충당해야 하니 무선님의 수입은 최저소득 이하다. 부족분을 메우려 출근길에 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 부업을 한다. 지금보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물었다. 도시와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시의 아파트단지나 교회, 기관과 연결해서 지속적인 매출이 이루어진다면 나이질 것 같다고 한다.

수익성에서는 애초에 그리던 것과 차이가 있지만, 기대치 않은 그 이상의 성과가 있다고 한다. 생산자들과의 연결이 그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성과 때문에 희망적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도 몰랐고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김명철 원장님이 합류한 후 주변사람들이 도와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농촌에 깊이 뿌리내린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재 곳간과 연결된 생산자는 30~40명 정도가 된다.

저녁 어스름, 초등학생과 엄마 손님이 방문했다. 원지와는 좀 떨어진 덕산에 사는데 친환경농산물을 사려고 일부러 왔다. 아이가 과자코너로 간다. 카톨릭농민회의 우리밀과자가 진열되어 있다. 무선님이 아이에게 짱구 과자를 선물했다. 생협매장이 없는 산청에서 아이들 먹을 우리밀과자가 있어 참 다행이다. 이들이 간 후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린다. 사실 전화는 중간중간 계속 왔다. 무선님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대화과정이었다. 무선님은 말을 많이 하면 에너지가 엄청 소요되는 스타일이라 솔직히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2년간은 힘들어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선님의 최종 목표는 농사다. 밭에서는 하루 종일 일해도 즐겁다고 한다. 흙을 만질 때 가장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힘들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진정한 마음치유와는 거리가 먼 병원시스템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을까? 도시텃밭의 시초인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은 한 의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몸이 아파서 온 도시노동자들에게 그는 약 처방 대신 밭에 나가 햇볕을 쬐며 일하라는 처방을 주었다. 작년 해외연수 때 방문했던 독일 칼스루헤의 아름다운 클라인가르텐이 떠오른다. 이 클라인가르텐이 독일인의 병상수를 절반으로 줄였다고 하던가?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곳간의 이사인 성두환님 농장에서 농사학교가 열린다고 한다. 그 곳에 참여하기 위해 월요일 오전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느라 시골을 접한 후, 나도 이런 자연 속에 살고 싶어 귀촌을 했다. 막상 귀촌을 했지만 농사는 흉내도 못내고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 농사학교가 있다니 나도 시간되면 참여하고 싶다. 나 역시 밭에서 일할 때 가장 행복하다. 현재에 집중할 때의 편안함, 햇볕을 등지고 일할 때의 포근함. 일하고 난 뒤의 노곤함과 뿌듯함이 행복을 느끼게 한다. 무선님이 로컬푸드매장을 돌고 돌아 만들어 갈 따듯한 치유의 들판을 그려본다.

윤인숙  yoonis@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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