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숲에 천년 나무가 없어
상림 살릴 해법 찾을지 관심

생태지도·휴식년제 도입 제안
유네스코 유산등재 위해 노력

위에서 내려다 본 상림 모습. <사진: 함양군>

천년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고즈넉한 숲길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공림으로 알려진 함양 상림이 자연림이란 발표가 나왔다.

특히 상림공원 내 직경 20㎝ 이상의 수목은 총 1920그루인데 이중 12.3%에 해당하는 235그루가 고사하고 있는 중에서 나온 것이라, 상림을 살릴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상림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며 농경지와 민가를 보호하는 최대 규모의 마을 숲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시대 태수 최치원이 홍수로 위천의 물이 사납게 넘쳐 흐르자 농민들을 동원하여 둑을 쌓아 강물의 위치를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지금의 상림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상림은 그 기원이 인공적인 숲에서 유래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상림은 처음부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휴양의 공원이 아니었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을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보존하여 왔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상림이 인공림으로 알려진 견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김 교수의 이같은 주장은 천연기념물 154호인 천년 숲 상림이 쇠퇴하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상림을 사랑하는 지역사회단체가 나서 지속가능한 보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지난해 12월 녹색실천문화연대가 주관하고 경남도가 후원하는 가운데 ‘상림 사랑 모임(상사모)’ 결성식이 열리고, 그 과업 결과보고서에 “상림은 인공림이 아니라 자연림이다”라는 새로운 사실이 처음으로 실렸다.

50여명으로 구성된 상사모는 수차례의 회의와 답사, 초청강연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모인 자료를 공유하고, 다양한 주민의견을 통해 다양한 상림 살리기 활동방향을 실천 중인 환경보전 민간단체이다.

김종훈 계명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상사모 회원들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상림에 대한 특강을 진행했다. <사진: 상사모>

상림은 인공림이 아니고 자연숲이다

함양 상림은 경작지와 마을 홍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운 최치운이 신라 천령군 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숲으로 전해진다. 1923년 건립된 최치원 신도비 속에 기록되어 있는 ‘건학사루수식림목어장제(建學士樓手植林木於長堤)’의 해석 “최치원이 나무를 심어 긴 제방을 만들었다”에서 인공림으로 알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김종원 교수는 인공림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식림목(植林木)에 대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상림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대표적인 자연식생 유형인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등이 섞여 있는 낙엽·활엽혼효림의 식생 상태라고 평가했다.

최치원 선생은 위천의 자연적인 물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긴 제방을 축조하고, 제방 배후에 남게 되는 숲을 보호함으로써 홍수 재해를 막았다고 해석했다. 이런 내용은 1918년에 제작된 고지형도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김종직(1431~1492)이 함양군수로 재직(1471~1475) 중에 남긴 점필재집 시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김종직 선생은 “돌로 쌓은 방죽은 터지고, 높고 거대한 수목들은 모래와 함께 떠내려가네(음력 6월 10일)”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돌로 쌓은 방죽은 10세기경 최치원 천령 태수가 쌓은 것이고, 높고 거대한 수목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숲이었다란 것. 김 교수는 “이날 내린 폭우는 100년 주기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큰 거대한 홍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래서 상림은 소모적 유희나 이벤트성 기념의 공간이 아니었기에 고운 최치원, 점필재 김종직, 연암 박지원 시대를 지나 20세기 구한말까지도 약 1000년간 상림에는 정자이든, 누각이든 어떠한 인공 구조물 한 점도 설치된 바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 함화루, 사운정, 초선정 등은 유교문화가 붕괴되면서 1900년대 이후 상림에 들어선 것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상림은 생명체 식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숲이라는 자연유산이면서, 또한 유교적 가치관의 실천 대상이 된 문화유산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상림은 1968년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이후로 오히려 숲의 본질적 구조가 크게 변질됐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숲 바닥에 이질적인 꽃무릇 등 식물종의 대량도입과 물길 조절을 위해 만든 수리시설이 상림을 근본적으로 훼손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교수는 “상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남아있는 유적림인데, 화훼·정원화로 변질되어 감으로써 그 역사성과 생태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며 “천년 숲에 천년 나무가 없다는 것은 상림이 사람의 손을 타면서 훼손되었기 때문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충북대 차병진 교수는 “상림이 죽어가는 이유는 조릿대를 걷어내고 주변에 연꽃밭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여기에 더해 꽃무릇(상사화)이 번성하면서 숲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상사모 측도 “당장 상림 주변을 좋게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벌인 사업이 상림을 죽어가게 한 셈이 되고 말았다”며 “연꽃과 꽃무릇을 보려는 관광객이 조금 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작 상림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상사모 회의 모습.

연꽃과 꽃무릇이 상림을 병들게 해

상림은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으로 채워져 있어 가을이 가장 고즈넉하지만 여름도 아름답다. 상림 산책은 새벽녘이 운치 있다. 사운정에서 함화루를 돌아 물레방아까지 닿는 길이 최고의 산책코스다. 숲 속과 밖 어디든 호젓한 산책로와 벤치가 조성돼 있어 낭만을 만끽하기에 좋다.

하지만 이런 상림에 뿌리썩음병이 창궐하면서 고사목이 급증하고 쇠락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함양군이 지난해 10월 27일 ‘상림 수목 쇠락 현황 및 대책’ 용역보고회에 따르면 상림공원 내 직경 20㎝ 이상인 수목 1920그루 가운데 12.3%인 235그루가 아말라리아 뿌리썩음병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고, 35그루는 이미 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병이 심한 56그루도 1~2년 내 급격하게 쇠퇴하고 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림은 졸참나무 731그루, 개서어나무 657그루, 느티나무 186그루, 갈참나무 93그루 등이 차지하고 있다. 나무는 직경 30~60㎝가 1259그루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용역기관인 충북대 산학협력단의 차병진 식물의학과 교수는 이날 용역보고회에서 “고사목은 병원균과 해충이 증식 또는 은신하는 장소가 되기 쉬우므로 즉시 뿌리까지 제거하는 것이 좋다”며 “상림 옆 연꽃단지를 축소하고 연꽃단지 배수로를 상림 밖으로 변경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 교수는 또 “건강한 다른 나무에까지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토양을 개량하고 후계림을 조성하는 등 상림을 푸르게 가꾸는 연구가 병행돼야 하고 후계목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꽃무릇은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함양군도 상림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3월 20일부터 ‘천년 숲 상림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고사목 64그루의 밑둥을 자르고, 감염병 확산이 우려되는 15그루의 고사목은 뿌리까지 제거할 예정이다. 또 상림 내 산책로의 통풍을 가로막는 것으로 지목된 화살나무 164그루는 뿌리째 뽑아 나무가 없는 상림 윗마을로 옮기고, 불필요할 정도로 촘촘히 자라고 있는 낮은 나무는 솎아내는 식으로 지표식생정리를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12일 상림공원 확장 용역보고회를 열어 현재 47만여㎡(14만2424평)의 면적을 57만여㎡(17만2727평)로 넓히기로 결정했다. 상림공원 확장사업은 현재의 상림공원을 엑스포 기반시설이자 생태와 문화, 관광·교육공간으로 널리 활용되는 멀티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군의 상림 확대와 더불어 상사모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도 제시됐다. 시인 문복주 씨는 “상림은 단순한 관광자원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상사모 회장인 조인호 씨는 “연꽃 단지가 상림의 습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므로 나무를 심어 상림 면적을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며 환영했다.

한편 상사모는 상림보전을 위해서는 상림 생태지도를 만들고 구획별로 휴식년제가 도입되어야 하며, 하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사모는 상림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또 보전을 위해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도 노력할 계획이다. 

이은진 기자  leeej@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