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 태어나 부부의 연 맺어
18세에 결혼해 70년 넘도록 해로

퇴직 후 이동 양봉으로 보람 찾아
90세 되는 해 고향 밭에 집 지어
 

이강택 노순자 어르신이 신문기사를 읽고 72세인 따님과 함께 본사를 방문해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8월 3일 신문사 앞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 서부경남신문>

91세인 이강택 옹과 할머니 노순자는 생년월일이 똑같은 정묘년 병오월 갑술일의 동갑내기 부부다. 더욱이 이들 부부는 같은 동리에서 태어나 부부의 연을 맺어 한 평생 해로하는 특별한 인연을 가진 부부이다.

중국, 한국 등 동양 문화권에서는 <육십갑자>로 연월일시를 표현한다. 천간(天干)이라 하여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십간(十干)을 윗글자로 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12지(十二支)를 아래 글자로 하여 맞춰나가면 육십갑자가 된다. 육십갑자는 만 60년마다 한 바퀴 돌게 된다.

음력으로 1927년 5월 10일에 똑같이 태어난 이들 부부는 경남 함양군 유림면의 같은 옥동마을에서 태어난 것만도 흔치 않은 인연인데 부부의 연을 맺은 참으로 천생연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은 마을 사랑방에서 어른들이 아들, 딸을 낳은 두 분의 아버지에게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사돈을 맺으라고 한 것이 현실로 이어졌다.

집안 어른들의 약속으로 이미 혼인이 결정되었기에 성장 후 당연하게 결혼하여 운명적으로 살아왔다. 18살 되던 해인 1944년 정월 19일 결혼하여 이듬해인 1945년 첫딸을 시작으로 슬하에 4남 2녀의 자식을 두었다. 손자손녀 12명, 증손자가 6명이나 되는 이들 부부는 73년 동안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73세인 큰 딸 이경재씨가 아버지, 어머니가 아직 건재하다고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한다고 한다.

30세가 되던 1957년 유림면 서기로 공직을 시작하였다. 유림면 사무소에 근무한 3년간은 옥동마을에서 20리길인 유림면 사무소까지 걸어서 출퇴근하였다. 지금까지 큰 병치레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당시 걸어 다니면서 습관을 들인 까닭에 체질이 매우 강건하고 몸이 튼튼하고 건강해진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그 후 군청 등 여러 보직을 거쳐 정년퇴임한 안의면장을 끝으로 평생봉직해온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안의면 부면장으로 근무 당시, 함양 11개 읍·면장 중 8개 읍면장이 공화당 관리장 출신으로 충원되어 부면장들이 정우식 국회의원께 항의하려 몰려갔다.

정우식 의원이 “당신들 정치라는 것을 알아? 정치는 다리가 없어도 강을 건너가게 하는 등 안 되는 것을 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에 아무 소리 못하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 사람들이 ‘어렵고 복잡한 일이 생기면, 이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의면은 지방색이 강해 이곳출신이 아니면 면장으로 원활한 행정이 힘든 곳이다. 이옹은 1978년 안의면장을 발령받자 좀 더 지역민과 동화하기 위해 거주지를 안의로 옮겼으며 공직을 마친 후에도 계속 살았다. 나이 90세가 된 2016년 고향마을의 300여평의 밭에 집을 지어 38년을 살아온 안의 아파트를 떠나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안주하고 안식할 나이에 새로운 집을 지으려 하자 주변사람들은 살던 집에 그냥 살다죽지 뭘 한다고 그 나이에 새집을 짓느냐고 놀라워하였다. 집을 짓게 된 것은 도시에 사는 손자와 증손자들이 ‘할아버지! 시골에 사시면 흙을 밟고 사는 것이 좋지 않아요?’ 하는 말과 귀소본능에 따라 고향마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결정이었다.

아파트는 관리가 용이한 반면 아이들이 뛰놀며 지내기에는 부적합한 점도 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시골 할아버지 집은 마당이 있어 맘껏 뛰놀고 흙 놀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주 찾아올 것 아니냐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농작물에 대한 설명 등 할아버지로서 역할이 주어져 소외를 막을 수 있고 휴가철이나 명절 때면 이곳저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부르는 손자들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릴 것을 생각만 해도 엔돌핀이 넘치는 것 같다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옹은 퇴직과 동시에 노후대책으로 운영하려고 농월정이 가까운 곳에 여관을 신축하던 중 문제가 되어 몇 년간 법정다툼이 있어 퇴직금까지 날려 심적·경제적으로 심한 타격을 입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옹은 스트레스를 받아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며 걱정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신다.

퇴직 다음해인 1986년부터 2014년까지 돈도 벌고 보람 있는 후반부 인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로 이동 양봉을 택하여 꽃을 쫓아 전국을 다녔다. 음력 정월 보름께 거제 장목에서 시작하여 경북 고령 성산을 거쳐 성남 양재, 김포, 강화, 포천, 강원 화천 등을 돌아 9월 보름께에 집으로 귀가하는 바쁜 생활을 해왔다.

차량 이동 중에는 음악 테이프를 털어놓고 노래를 부르다보면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었다. 몇 사람이 팀을 이루어 이동양봉을 하다 생긴 에피소드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계셨다. 한번은 경기도 포천2동의 작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음식점 주인이 면장이 오시니까 옆자리로 옮기라고 하여 면장이 나타나면 “이곳은 면장이 식사하려오면 손님들이 자리를 비겨야 하느냐”고 한마디 하려는 참이었는데 일행 중 한명이 “어디 면장 안 해 본 사람” 있나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정작 면장출신인 이옹은 아무소리 못했다고 한다.

이옹은 종중일과 노인회 일 등으로 바쁘다. 맡고 있는 직함도 여러 개이다. 전주이씨 효령대군 2자 서원군파 종회장을 다년간 맡아 일주일에 두 번씩 함양에서 서울 방배동까지 출퇴근하였다. 젊은 사람들도 피곤해 할 터인데도 즐겁게 수행하였다. 대한노인회 함양군지부장으로도 오래 활동하였다. 연암축제위원장도 지냈다. 나이가 많은 지금, 지난날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자녀들이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한다.

6명의 자녀에게 용돈을 당당하게 받는다. 양봉을 통해 모아둔 비자금도 있다. 그래서 손자들에게 용돈도 주고 자주 출입하는 경로당에서 밥도 사고 커피도 사는 등 어른으로써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해 한다. 천수를 즐길 생활비가 있으면 장수는 천국이지만, 통장잔고가 먼저 사망한다면 지옥이 된다고 믿는다.

유병장수시대라 할 만큼 병원에 가면 노인들이 많다. 노인이란 으레 늙고 허약해 보이기 십상인데 이옹은 굳세고 건강하다. 허리도 꼿꼿하고 밝고 목소리도 우렁차다. 건강만 하면 오래 사는 것이 좋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키 크고 돈 많고 잘 생긴 것보다 중요하다.

이옹은 KBS <언제나 청춘>프로에 2번이나 출연하여 가정과 건강생활을 소개하고 ‘꽃을 든 남자’를 열창하기도 하였다. 마음 내키면 언제든 노래 부를 수 있는 여유와 강한 사교성이야말로 이옹이 ‘젊게 사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5년 방송 후 KBS에서 고향 옥동마을을 찾아 결혼재현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이강택(李康澤) 옹은 만년 청춘이다. 청춘이기에 광택이 있다.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빛난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늘 열정에 넘쳐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 하는 등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퇴직 후 아무것도 안하고 30년을 놀았다면 폭삭 늙었을 것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좌절을 모르는 그의 앞날이 어떻게 변모하고 또 어떤 결과를 보여줄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무도 할 수 없다. 이옹의 건강법은 걷기와 긍정적인 자세 및 적극적인 사회참여활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부금슬도 남다르다. 91살인 지금도 트럭을 운전하시는 이옹은 나들이할 때는 운전석 옆 좌석에 사모님을 모시고 다니신다. 부부가 모두 건강한 몸으로 나란히 시장도 보고 공연장에도 간다. 의좋게 다니시는 모습을 보게 되면 단란하게 인생의 오솔길을 부부동반으로 거닐 수 있다는 게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자주는 몰라도 가끔씩 막걸리 판에서라도 오래 뵐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는다.

/이철우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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