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동시 작가 / 소나무5길문학회 회원.

마운틴코스 홀 입구 잘 다듬어진 소나무 아래 앉았다.

해는 노을과 함께 사라졌지만 사위엔 옅은 빛이 있다. 마치 새벽을 맞이하는 때와 같다. 말차에 물 서너 방울 떨어뜨려 차선으로 휘휘 저어 놓은 것 같은 필드 위에도 그러하다. 까만 밤이 필드 잔디 위로는 건너가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기다려 보기로 한다. 산을 깎아 만든 필드 위로 밤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한다. 멧돼지 무도회가 열릴지, 산새들의 정기모임 또는 두더지들의 운동회 같은 계획들이 떠오른다. 그들 누구라도 이방인의 존재를 알아버린다면 계획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시간을 보니 대략 어스름이 내린 뒤 삼사십 분 정도 낮과 밤의 경계를 감상할 수 있겠다. 필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니 주변은 어둠에 희미해져도 그 곳은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점점 실루엣을 잃어가는 나무와 연못 가장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건너 자굴산 능선들로 시선을 옮겼다. 어둡기 전 회색빛 하늘을 가르던 산 능선이 점점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마치 내 눈 앞에 손바닥을 펼쳐서 천천히 거두고 다시 거둘 때마다 조금씩 명암을 더 해가는 요술놀이처럼 말이다.

천천히, 천천히 눈을 돌려 필드를 보았을 때 어둠에 젖어가는 잔디 위를 보았다. 그것은 먹물을 터트려 내는 짙음도 아니고 한낮 까만 커튼을 둘러 만든 실내 어둠 같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들을 눈으로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가르침의 색이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다. 처음부터 있었지만 내가 볼 수 있을 때만 있다고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가르치는 스승, 보이지 않지만 있다는 것을 믿게 하는 종교다.

우리는 늘 경계에 산다. 어둠과 빛, 더러움과 깨끗함,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등. 알고 보면 경계는 음악 볼륨 같은 것일 뿐이다. 내가 감상하기 좋은 볼륨에서 낮거나 높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조금 낮은들 음악이 아니고 조금 높은들 그 음악이 아니겠는가. 단지 경계를 만드는 것은 내 마음이다.

마운틴코스 홀 입구 잘 다듬어진 소나무 아래 앉아서 밤이 깊도록 그 어둠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진다. 연못의 개구리 소리가 어둠이 짙어지는 것과 동시에 더욱 높은 소리를 내는 것도 내 마음에 작용이다. 물가 풀잎에 앉아 개구리와 톤을 달리해서 내는 찌르레기 소리도 내 마음이다. 경계를 버리고 그들과 함께 망부석으로 굳어져도 좋을 것이다.

내 몸도 어둠속 거치물이 되었을 즘에 그 곳에서 일어섰다. 어떤 경계도 나를 좌지우지하지 않을 요술구슬 하나 얻었다 여기지만 필드를 떠나 한 발짝 걷는 순간 배고픔을 느꼈다. 헤어날 수 없는 경계에 금세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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