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저항정신 뛰어난 곳
우리나라 사상과 문화 본류 역할

역사에서 잊혀져간 황석산성전투
일제에 의해 군에서 면으로 강등

전국아나키스트대회 안의서 열려
독립노농당 창당과 교육기관설립
 

안의 심진동 용추계곡은 1792년 연암 박지원 선생이 안의에 물레방아를 설치하면서부터 “함양산천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 집의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도네”라는 민요가 생겨난 유래 깊은 곳이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용추폭포야 네 잘 있거라, 명년 춘삼월 또 다시 만나자”라는 길 군악도 알고 보면 ‘용추 질굿내기’라는 함양 민요의 일부분이다. 피서객들이 용추폭포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경남 함양군 안의면은 행정구역상 1914년 3월 1일까지는 안의군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5개 면은 거창군으로, 7개 면은 함양군으로 편입되면서 안의면으로 강등됐다. 1895년(고종 22년) 안의군으로 승격한지 19년 만의 일이다.

안의(安義)는 지난한 역사 속에서 온갖 부침을 겪어왔다. 함양(咸陽)과 거창(居昌)에 복속이 되었다가, 오히려 거창현이 안음현에 속했다가 1641년(현종 1년) 다시 복현되어 나가는 등 신라·고려·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치열하게 현장을 살아왔다.

사실 안의만큼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뛰어난 곳도 드물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반백성들이 숭고하게 희생했고, 해방 전후에는 독립건국운동과 아나키스트의 성지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1792~1796년) 시대에는 우리나라 사상과 문화의 본류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안의는 산수가 수려한 3곳 명소를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전국의 선비와 유람객들이 ‘안의삼동(安義三洞)’을 즐겨 찾았다. 안의삼동은 화림동(花林洞), 심진동(尋眞洞), 원학동(猿鶴洞)을 일컫는 말로 팔담팔정(八潭八亭)의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원학동은 1914년 안의군이 폐지되면서 거창군 위천면에 속하게 됐다.

백성의 전쟁 ‘황석산성전투’

황석산성 전투는 1597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총포로 무장한 왜군의 정예부대 7만5300여명에 맞서 안음·함양·거창·산음·합천·삼가·초계 인근 군현의 일반백성과 부녀자, 경비병 등 모두 7000여명이 5일간 맞서 싸우다 숭고하게 희생한 전투다.

황석산성 전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영웅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황석산성에서 숨져간 이들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역사의 파편으로만 남아있다. 그 이유는 황석산성 전투는 조선 조정에서도 명나라 군대에서도 한 명도 참가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이 싸운 ‘민병의 전투’였기 때문이다.

황석산성전투는 7000여명의 백성들이 왜군의 정예부대 7만5300여명과 맞서 싸운 전투이지만, 역사에는 조선군 500여명만 전사한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잊혀 질 수밖에 없는 전투였고, 조선과 일본 모두 부끄러운 전쟁이었다. 백성이 모두 죽도록 내버려둔 조선, 관군이 아닌 백성들에게 큰 타격을 입은 일본, 모두 숨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황석산성전투에 대해 317년이 지나고 나서 보복을 하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714년(숙종 41년) 황석산성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황암사’를 불태워버리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을 실시하면서 황석산성전투의 부끄러움을 은폐하기 위해 안의군을 폐지하게 된다. 안의군을 지도에서, 황석산성전투를 역사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전국 아나키스트의 성지, 안의

주말을 맞아 노년의 친구가 화림동 계곡에서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화강암 위에 세워진 농월정의 고고한 자태가 돋보인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1945년 8·15광복을 맞고 8개월 후인 미군정(美軍政) 시절, 1946년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전국 아나키스트 대표자 대회가 안의에서 열리게 되면서 사상적 본거지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구한말 독립운동과 함께 지식인들의 열정어린 가슴에 아나키즘이 싹 튀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 안의였던 것이다.

600여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은 세계 최초로 아나키즘 이념 정당인 독립노농당(獨立勞農黨)의 창당을 결의하고, 정부 수립의 원칙을 천명했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생산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아나키스트의 꿈과 이상 그리고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아나키즘 역사상 이론과 실천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전국아나키스트 대표자대회를, 아나키스트들은 ‘안의대회’라고 부른다. 정당결성과 함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체할 실현 가능한 아나키즘 세계를 구상하기 위해 안의중학교, 안의고등학교, 청구대학 등의 교육기관 설립과 운영을 통해 그 이상을 펼치려고 했다.

안의중학교를 세운 이진언 선생을 비롯해 하기락 최영준 최태호 이시우 하종진 등 창립자들은 아나키즘 조직가였다. 역대 교장 중에는 안병준 선생과 시인 유치환이 있는데 이들도 아나키스트였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종림 스님은 이를 두고 “해방 이후, 안의 최대의 자랑”이라고 했다.

/이영철 기자

*이번호 섹션은 안의중학교 총동문회와 주관기수인 제39회 동창회 후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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