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연극제 주춤하는 사이
밀양축제·통영연극제 추월

4년 연속 내리막길로 달려
“통합 없이는 성장도 없어”

지난 1일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열린 극단 목화의 ‘봄봄’ 공연장면. <사진: 거창국제연극제>

지난달 28일 힘차게 ‘팡파르’를 울렸던 거창한여름연극제와 거창국제연극제가 ‘흥행참패’로 고개를 숙이며 초라하게 끝났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아시아의 아비뇽’을 꿈꾸며 한때 20만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최대의 여름 야외연극축제로 자리 잡았으나, 보조금 집행 불투명성을 이유로 관에서 ‘간섭’하기 시작하고, 2014년 문화관광부 축제평가단에 의해 ‘F등급’을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거창국제연극제를 벤치마킹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연극의 양과 질에서 거창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축제 기간도 거창보다는 앞서 열렸으나, 조금씩 뒤로 물러가더니 이제는 모든 공연 일정이 거창과 같은 시기에 열리면서 경쟁과 의존관계로 자리 잡았다.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밀양 축제는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 밀양연극촌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제9회를 맞은 통영연극예술축제도 ‘문화콘텐츠의 향연’이라는 콘셉트와 맞추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축제는 연극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심이 되는 연극과 전시, 연극캠프, 토크쇼, 먹거리, 여행, 콘서트까지 장르를 망라한 다양한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거창이 주춤하는 사이 밀양은 거창은 추월했고, 통영은 코앞까지 따라온 셈이다. ‘아시아의 아비뇽’으로 세계 3대 야외연극축제를 꿈꾸던 거창국제연극제의 추락을 막을 길은 없을까.

지난 9일 ‘거창한여름연극제’가 열린 수승대 축제극장 모습. 폴란드 알라티리 극단의 ‘카멜롯’ 공연 시작 시간에도 불구하고 관객석은 텅텅 비어있다. 집중도를 필요로 하는 외국 극단의 작품을 800석 규모의 축제극장에 편성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반쪽짜리 연극제, 올해로 끝내야 한다= 거창국제연극제는 내년이면 30회를 맞는다. 30주년을 앞두고도 올해처럼 두 곳에서 연극제가 동시에 열리다면 관객도, 군민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인내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거창군이 잘못된 판단을 한데에는 거창군의회도 한 몫 한다. 거창군이 거창문화재단을 만들어 연극제를 집행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2016년 거창군의회는 “연극제는 민간단체에 맡기지 말고, 군에서 직접 시행하라”는 조건으로 예산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6년 연극제는 군에서 포기했고, 국비·도비·군비 지원 한 푼 없이 민간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올해도 양동인 거창군수와 이종일 육성진흥회장의 자존심 싸움으로 결국은 두 곳에서 열리면서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봤다.

양 군수와 이 회장의 잘못된 인식은 문화관광과의 그릇된 보고에서 기인한 측면도 크다. 문화관광과 A씨는 “연극제가 두 곳에서 열리면 관객들이 다양하게 볼 수 있어서 좋지 않냐”며 부추긴 면도 없지 않다. 어떻게든 민간에서만 연극제가 열리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거창군의 위상과 군민들의 자존심, 축제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거창문화재단이 출범하고, 연극제를 주관하면서 일이 더 꼬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군정 최고 책임자인 양 군수에게 일방적인 보고들이 올라갔고, 군에서는 직접 연극제를 시행해야겠다는 의지만 더 키워줬다. 민간인들과의 실질적인 대화는 거의 전무했다.

물론 당초 책임은 민간연극제 측에 있다. 그동안 보조금 집행이 불투명하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년 동안 내부 간의 다툼으로 신뢰가 실추된 것이다. 군에서 연극제를 직접 시행해도 되겠다는 논리를 제공한 것이지만, 이것이 연극제를 직접 주관해도 될 만큼 큰 잘못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5년부터 13년간 거창국제연극제를 진흥회 측과 함께 공동으로 주관해 온 KBS창원방송총국은 거창군과의 주최를 거절하고, 올해도 민간연극제를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런 과정에서 거창문화재단이 만든 포스터에 KBS창원방송총국이 공동주최로 게재되자, KBS측의 항의로 관변연극제 주최에서는 빠지는 등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측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수차례 감사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지만 수사결과, 회계부정이 없어 무혐의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의심이 꼬리를 키우고, 불신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양측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이런 소모적인 논쟁으로 거창국제연극제를 키워야 할 ‘골든타임’을 잃어버린 것이다. 또 투명성을 관리해야 할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책임은 쏙 빠져버렸다.

거창군과 거창군의회, 거창문화재단의 가장 큰 실수는 거창국제연극제를 기획행사로 여겼다는 점이다. 예술감독 한 명 잘 뽑으면, 여기저기서 공연단체들을 불러 연극제를 주관할 수 있다는 오판을 하게 됐다. 30년 전에 극단 ‘입체’를 만들고, 연극제를 주관해온 민간인들의 인맥과 노하우, 그리고 그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김향란(더불어민주당) 거창군의회 군의원은 “거창군이 민간에서 28년이나 추진해온 거창국제연극제를 문화재단이라는 틀 속에 집어넣은 것도 그렇고, ‘국제연극제 군민의 품으로’라는 주장은 주객이 전도된 해괴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러한 점들이 모여 올해 연극제는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게 됐다.

지난달 28일 개막식날 축제극장 모습. 이날을 제외하고는 ‘거창한여름연극제’의 관객은 만석을 찾기가 어려웠다. 반면 위천면 거창연극학교에서 열린 ‘거창국제연극제’는 객석 대비 110%를 넘는 관객들이 찾으면서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거창군의 끝없는 무리수 ‘혼란만 부채질’= 거창군은 연극제를 추진하면서 무리수를 거듭했다. 군 측은 포스터를 세 번이나 바꿔야 했다. 박정자·손숙·윤석화 등 원로배우들 앞세우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하나의 연극제가 아니면 연극계의 문화정의를 위해 불참한다”며 선언한 것이다.

더구나 개막식 작품으로 초정된 연희단거리패의 작품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도 불참하면서 부랴부랴 다른 작품으로 변경해야 했다. 개막식 작품이 변경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측이 거창군과 거창문화재단을 상대로 ‘거창한거창국제연극제’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도록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가처분’ 소송에서 민간연극제의 손을 들어줬다. 군과 재단은 패소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기존 결정을 인가한다”며 앞서 내린 판단을 유지했다.

거창군과 재단은 두 번째 만든 ‘거창한거창국제연극제’라는 포스터와 현수막, 거리배너 등 모든 홍보물을 폐기해야 했다. 개최를 며칠 앞두고서야 ‘거창한여름연극제’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다시 거리에 붙였다. 무리에 무리수를 더한 것이다. 오히려 이름이 바뀌면서 혼란만 부채질했다.

군과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려면 축제의 모든 콘셉트가 바뀌어야 하는데 이름만 바뀌었지, 내용이나 형식 등 프로그램이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것도 문제점이었다. 민간연극제에서 29년 동안 이어온 연극제를 표절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공격만 받았다.

더욱이 축제 이튿날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점에 제일 큰 극장인 800석 규모의 축제극장을 비워 놓는 등 행사운영도 낙제점 수준이었다. 정극이 이루어져야 할 공연장에 춤극이 열리고, 한옥과 배롱나무꽃이 멋진 구연극장의 활용도를 높이지 못했다. 연극제 후반부에 접어들어서는 관객들이 절반도 차지 않는 등 공연장별 특성을 살리지 못한 점도 두고두고 아쉽다.

연극제를 거창읍까지 확대한 점은 호평 받을만하지만, 이로 인해 집중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토도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수변무대의 전문성과 함께 문화관광부 축제평가단에서 늘 지적받던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5일 제29회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린 거창연극학교를 찾은 관객들이 비옷을 입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10일간의 축제기간 내내 객석은 만석이 됐다.

◇민간연극제 측도 횟수 연장한 것에 불과= 민간연극제 측도 축제가 열리는 기간 연일 유료관객 만석과 객석점유율 110%로 내실에 충실했다고 스스로 호평했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볼 때 성공한 연극제로 보기는 어렵다.

일단 장소가 위천면 수승대가 아니고, 위천면 모동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접근이 현저히 떨어졌다. 또 대학연극제가 열린 거창연극학교를 빼면 주 무대가 한 곳에서 지나지 않아 다양한 연극과 관객을 확보할 수 없었다.

물론 국비·도비·군비 일체의 지원 없이 자체 예산과 후원금, 티켓수입으로 충당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해도 20만명을 돌파한 ‘거창국제연극제’라고 봐주기에는 예전의 명성에 비해 초라했다. 뛰어난 열정에도 불구하고, 내년 국비 신청을 위해 횟수만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일정도로 아쉬웠다.

군에서 주최한 관변연극제, 진흥회에서 운영한 민간연극제, 이 둘의 통합 없이는 내년 30주년을 앞두고는 지금보다 더 만신창이가 될 것으로 우련된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의 추월을 따라잡고, 통영연극예술축제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두 연극제의 통합이 아니고서는 길이 없다는 것을 이번 연극제에서 피부로 확실히 느꼈다. 예산집행과 감사는 거창군과 거창문화재단이 책임지고, 운영을 민간연극인들이 맡아서 해야만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논의될 수 있고, 합의될 수 있는 일이다. 갈등의 당사자인 관변연극제인 군의 시각도, 민간연극제인 진흥회의 시각도 아닌 관객의 시선으로 봐주길 바란다.

거창국제연극제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나오던 말들을 듣고 싶다. “자연·인간·연극이 함께 하는 국내 최대의 야외연극축제, 거창국제연극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두 개의 연극제 통합 가능성 위한 ‘혁신위’ 발족된다 민간중심 발전방안 마련 계획 혁신위원은 20명 내외로 구성 14일 막을 내린 '거창한여름연극제' 폐막식 모습. <사진: 거창군> 거창군이 두 동강 난 연극제를 보완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킬 방안이다. 거창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거창한여름연극제’와 육성진흥회가 주관하는 ‘거창국제연극제’에 대한 비판은 개막전부터, 연극인들과 거창군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올 여름 내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었다. 거창군은 이에 따라 올해 연극제에서 드러난 미비사항을 보완하고 민간차원의 혁신안을 접목하기 위해 여름연극제 폐막 이후, 범군민 협의기구인 ‘혁신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혁신위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는 민간위주의 위원 20명 내외로 구성해 연극제 발전방안, 존폐, 통합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할 예정이다. 유태정 문화관광과장은 “연극제를 개최하기 전부터 각종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으며 출발했기 때문에 ‘잘해도 본전’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끝까지 연극제를 살려내 군민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와 민간차원의 비판을 수렴해야 살길이 보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발족 배경을 밝혔다. 이는 거창군이 문제점은 수면위로 드러내고 전문가와 민간차원의 아이디어를 수혈해야 재도약 할 수 있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버릴 것과 지킬 것’은 분명하게 가려내고, 뿌리 깊은 갈등은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통합까지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편 연극제의 주 무대가 수승대인만큼 피서문화의 변화를 읽고, 축제의 운영방식도 탄력적으로 변해야 된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군민과 연극계의 정서, 공연문화의 다양성, 피서문화 변화를 어떻게 담아낼 지 기대와 우려가 혁신위로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주지원 기자  joojw@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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