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의 청산이 곧 전쟁을 막고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일
 

권문상 변호사 / 더불어민주당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위원장.

초등학생 시절 우연히 이웃 아저씨께 들은 말이 있다. “해방 되니 일본 앞잽이 하던 놈들 식겁 했는기라. 맞아 죽을까 싶어 도섶(인근 작은 산 이름, 그곳에는 그때 도망간 사람들이 숨었던 땅굴이 있어 필자도 어릴 적에 들어가서 놀곤 했다)으로 도망가고 멀리 서울 친척집으로 숨고...” 비록 초등학교 어린 나이지만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어떤 흉악한 짓을 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던 나는 귀를 쫑긋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미군정이 들어서고 나니 그 일제 앞잽이 놈들이 어디 숨어있다 나타났는지 나타나서는 다시 설치기 시작하는데, 참 기도 안 찬기라…”

2년 전 개봉하여 관람객 1200만명을 돌파한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영화 ‘암살’ 끝 장면. 일제에 부역한 이정재는 해방 후에도 경찰고위직으로 신분을 유지하다가 암살을 당하는데 죽기 전 딱 한 마디 하는 변명, “이렇게 해방될 줄 알았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전쟁에서 지고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는 너무 길었고 그 기간 동안 일본의 한국민족 말살정책은 너무나 잔인하였다. 그 일제강점기 동안 나름 지식인들은 다른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것이다. 그 하나는 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저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에 협력하여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키고 나아가 부귀영화까지 누리는 것이다.

독립을 위해 저항하기로 한 부류는 독립의 그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하고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한편 독립을 준비하였다. 영원히 대한민국의 독립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친일세력들은 독립이라는 허황된 꿈을 안고 있는 애국세력을 비웃으며 호의호식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식이 양분되어 고착화 되어 가던 중, 대한민국의 독립이 왔다. 그래서 일제에 부역하던 세력들은 그야 말로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말 그대로 스스로 두려움에 혹은 근처 산에 땅굴을 파서 숨고, 혹은 멀리 숨을 만한 곳으로 도망을 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해방 후 38선 이남은 미군정이 친일부역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줌으로써 그들은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땅굴에 숨어 있다가, 멀리 친인척 집에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 일제시대에 행사했던 그 권력을 그대로 행사하게 됨으로써 그들 자신들에게는 도덕적 해이감을, 민중들에게는 절망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 시기로부터 대한민국은 “친일청산”이라는 화두에 온 국민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후의 정권이 친일청산이라는 구호를 “반공”이라는 구호로 바꿔치기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빨갱이”라는 한 마디로 비하하고 저주하는 비정상적인 국론분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 원인은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친일청산의 과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국론을 분열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 적절한 시기를 놓친 탓에 친일청산이 아직도 국민화합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의 정세는 긴박하기만 하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세계는 미래를 향하여 빠르게 돌아가는데 우리는 그놈의 친일친일, 언제까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는 자못 점잖게 말씀들 하신다.

그럼에도 왜, 어찌보면 케케묵은 “일제청산”이라는 말을 광복 72주년 지금에 와서 또 꺼내는가? 대한민국의 정세가 긴박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실토한 바 있듯, 전쟁을 촉구하는 미국 군수업체의 회유와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누군가에게 정권을 찬탈당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세습왕조의 3대 왕 김정은이 예방전쟁,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전쟁을 무슨 놀이쯤으로 여기는 듯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광복 72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왜 일제치하에 굴욕적인 삶을 살게 되었으며 선조들의 어떤 투쟁으로 광복을 얻게 되었는지, 광복 후 전쟁을 일으킨 세력들은 누구인지? 오늘도 전쟁을 해도 좋다며 강경일변도의 주장을 하는 세력들은 어떤 세력인지? 가족의 생명을 걸고 냉철하게 돌아볼 때이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들이 독립운동의 중추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건국절 논란을 주도하고 있다. 또 대화하다 논리적으로 막히면 “빨갱이” 운운하며 이 나라 전쟁이 일어나도 좋다, 미국만 따르면 된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바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 내지 그 잔재들이다.

친일은 명분도 중요하지만 명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일의 청산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전쟁을 막고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성스러운 행위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복 72주년이나 된 오늘도 친일청산을 꺼내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내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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