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도 허영자 시인. 경남 함양 출생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제32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이 쓸쓸한 땅에서 울지 않게 해주십시오 쓰거운 쓸개 입에 물고서 배반자를 미워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날이 높아가는 하늘처럼 맑은 물처럼 소슬한 기운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먼산에 타는 뜨거운 단풍 그렇게 눈멀어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온 산이 불타오른다
지리산은 화려한 화원(花園)

백무동계곡 마지막 단풍은
가을이 먼저 앉아
기도하며 편지를 쓰던 곳

나는 지금,
지리산의 황홀함에 빠져든다

지리산의 마지막 단풍을 계곡과 함께 담고 있는 사진작가. <사진: 함양군>

가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산 정상에서 시작된 울긋불긋한 단풍잎은 산허리를 지나 계곡 입구에 서있는 나무마저 빨갛고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마지막 낙엽마저 찬바람에 날려가기 전, 가을여행을 서둘러야 할 때다.

함양이 낳은 허영자 시인은 가을에는 울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소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시인의 바람이자 모든 이들의 ‘희망의 찬가’이기도 할 것이다.

지리산은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 아침햇살에 반사되는 고운 빛깔과 자태, 노을 녘에 먼 하늘과 닿아 붉게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이라는 시 마지막 구절에서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던가.

지리산은 지금, 온산이 불타오르고 있다. 수놓은 비단결처럼 화려한 색들이 봉우리 하나하나마다 활짝 핀 꽃송이를 피워 산 전체가 불타오르는 화원 같다. 산에는 단풍나무 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어서나무, 상수리나무 등 단풍색이 아름다운 수종들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계곡미가 뛰어나고 단풍이 아름다운 골짜기는 백무동계곡이 아닐까 한다. 백무동은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구절양장(九折羊腸) 계곡을 흐르다 갖은 소(沼)와 담(潭), 폭포(瀑布)를 만들어낸 곳이다.

백무동의 지명 유례는 함양군 마천면 강청마을에 남다른 지혜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100명의 무당이 거처하던 골짜기라 하여 백무동(百巫洞)이 원이름이던 것이 와전되어 백무동(白武洞)으로 변해 있다고 한다. 또는 안개가 뒤덮고 있다고 하여 백무동(白霧洞)으로 일컫기도 했다. 현재는 백무동(白武洞)으로 쓰고 있다.

백무동에는 가을 산행을 즐기기 위해 전국의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있다. 백무동에서 동서울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해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도 많다. 버스 주차장 옆에는 등산객들의 편의를 돕는 지리산국립공원 백무동탐방안내센터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백무동을 기점으로 한 등산로는 크게 세 갈래가 있다. 능선 산행길인 하동바위 코스를 비롯해 계곡 산행길인 장터목 대피소와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코스가 있다. 그 어디로 향하더라도 초록이 단풍잎으로 물든 모습은 장광을 이룬다.

백무동 계곡은 트레킹의 명소이기도 하다. 백무동탐방안내소~가내소폭포~오층폭포~한신폭포로 이어지는 3.7㎞의 코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곳으로 큰 바위가 많다.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2.7㎞ 정도 가면 가내소폭포를 구경할 수 있고, 0.3㎞ 정도 올라가면 오층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0.7㎞ 더 가면 한신폭포가 보인다.

모든 코스가 한 폭의 그림같이 물들고 있어 단풍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힘든 자연의 모습이다.

가을이 떠나기 전, 마지막 단풍잎을 찾아 지리산 백무동을 찾는 것도 이 땅의 산하(山河)를 살아가는 좋은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이은정 기자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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