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다시 희망을 불려 들여
대화로써 갈등이 극복되고
국민들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철우 본지 회장 / 전 함양군수.

새해가 왔다. 지난해 정유년(丁酉年)는 대통령 탄핵으로 풍비박산 났다. 광풍이요 지축이 뒤흔들리는 지진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드니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국민들은 새해를 맞으면서 뭔가 새롭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신문이나 TV에서 전해지는 소식들이 낭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조금은 우려스런 면도 많다.

세상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은 제 각각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하는 일이겠지만 민초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등 따습고 배부르기만을 원하는 민초들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라와 겨레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염려하는 애국시민들이다. 그들 눈에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명경지수처럼 선명하게 비춰지는 법이다. 그들 눈에 비춰진 무술년의 모습은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의 불안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불안은 긴장을 낳고 긴장은 대결을 낳는다. 정치인들은 정치에 관한 한 각자 자기 속셈에 따라 바둑을 두지만 민초들은 애초에 속셈이 없기 때문에 오목조차 두지 않는다. 다만 되어가는 모양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격변이 심하다. 민주주의의 깃발이 세상을 뒤덮기도 하고 때로는 혁명적인 이론과 전투수법이 세상을 긴장케도 한다. 지나간 70년은 그러한 현상의 되풀이였다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느 얼굴이 불쑥 나타날는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두 얼굴의 사나이 모두 수시로 얼굴을 바꾼다. 처지가 바뀜과 동시에 온유는 포악으로, 겸손은 잔인으로 바뀌어 전혀 딴 사람이 되어버린다.

국민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지켜보고 있다. 침묵이 무서운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돌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파국이 예정된 극한 대결보다 생산이 있는 화합과 포용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너도 옳을 수 있다. 나도 그를 수 있다’는 겸허가 있어야 성립될 수 없다. 권위주의는 오만의 이념체계이다. 나만이 절대로 옳다고 고집하는 한 싸움은 극한의 대결인 ‘제로섬 게임’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절대로 좋은 것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로 나쁜 것도 없다. 다만, 각각 비교적 좋은 점이 많고 나쁜 점이 많을 뿐이다. 사랑과 돈과 권세가 좋다하나 사랑에는 죽음이, 돈에는 타락이, 권세에는 자멸이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의(公義)를 앞세운 인내와 관용으로써 대화와 합의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공(公)과 의(義)가 함께 실현되고 다져질 때 국민간의 화합은 나라 가득히 꽃피워지게 될 것이다.

갈등해결을 위한 기지 번득이는 유머가 생각난다. 70회 생일을 맞이한 노인이 갑작스런 치통으로 치과를 찾았다. 급히 차를 몰아 갓길에 주차하고 치료를 받고 나오니 교통경찰이 딱지를 떼고 있었다. 노인은 경찰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오늘이 70회 생일인데 아침부터 이빨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평생 법을 어긴 적이 없는데 생일날 딱지를 떼게 생겼다. 한번만 봐주시오. 안 그러면 오늘은 정말 가장 재수 없는 생일날이 될 거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이 법과 인정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하는 노인의 하소연에도 경관은 표정변화 없이 고지서를 기록한 후 무심하게 건네주고는 돌아섰다. 둘러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역시 법이야. 경관에게는 법이 우선이지. 그래야 세상이 굴러가는 거야” “법은 법이지만, 그래도 너무 하는 거야. 젊은 사람이 매몰차게 말이야” 고지서를 받아든 노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차에 탄 노인은 벌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려고 고지서를 펼쳐보았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지서에는 벌금대신 “생신을 축하합니다. 어르신”이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고지서를 끊기는 하되 벌금대신 축하메시지를 건넨 것이었다. 노인과 구경꾼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런 것이 ‘솔로몬의 지혜’가 아닐까. 우리의 위정자들이 교통경찰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이 땅에, 온 누리에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

새해에는 황폐한 마음자리에 다시금 희망과 의욕을 불러들여야 할 때이다. 병든 구습과 편애주의를 청산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 불안의 안개가 걷히고 믿음과 대화로써 갈등이 극복되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누구나 수긍되는 밝은 세상에 살고 싶다. 그리하여 모두가 소외당하는 서민들도 특별히 잘 난 사람도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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