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반쪽짜리 축제 오명 남겨
파행 겪었지만 책임지는 자 없어
문화예술 지원 위한 재해석 필요

혁신위 열렸지만 어설픈 점 많아
두 개의 연극제 통합 전제삼아야
국내 최고 문화상품 자리 잡는다

2013년 제25회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식 작품인 ‘100인의 햄릿’ 개막식에서 연극인들은 뒷전이었고, 수변극장 단상 중앙에는 거창군이 초청한 내빈들이 차지했다. <사진: 거창국제연극제 >

4년째 파행을 겪고 있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올해 받게 될 성적표가 궁금하다. 거창국제연극제는 2014년 문화관광부 축제평가단에 의해 ‘F등급’을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는 기존에 연극제를 운영해 온 민간단체의 ‘거창국제연극제’와 운영상 내분으로 갈등을 빚던 거창군이 직접 ‘거창한여름연극제’를 만들어 연극제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반쪽자리’ 행사로 전락해 역대 최악의 연극제라는 오명을 남긴 해다.

이에 따라 거창군은 지난해 축제가 끝난 바로 다음날 범군민 협의기구인 ‘연극제 혁신위원회’를 발족해 연극제 발전방안, 존폐, 통합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에 들어갔다.

혁신위원회는 지난해 9월 8일, 11월 1일과 24일 세 차례 회의를 열어 ‘거창한여름연극제’와 ‘거창국제연극제’를 이원화하기로 결정했다. 군에서 주관한 연극제는 ‘거창썸머페스티벌’로 명칭이 최종 결정됐다.

명칭 변경에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있었다. 군은 원래 2017년 ‘거창한거창국제연극제’라는 이름으로 홍보했지만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해 ‘거창한여름연극제’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다시 ‘거창썸머페스티벌’로 최종 확정한 것이다.

이는 거창군이 30년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의 야외연극축제인 ‘거창국제연극제’를 버린 것으로 해석된다. 두 개의 연극제는 민간에서 주최하는 연극제에 대해 예산 한 푼 지원해 줄 수 없다는 통보의 다른 이름이었다. 더구나 행사도 수승대에서 열 수 없으며,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던 사이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거창한여름연극제 2018년 예산 7억9740만원이 거창군의회에서 전액 삭감된 것이다. 군의회는 거창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여름연극제는 새로운 행사로 보고 전액 삭감했다. 문화관광과는 “거창썸머페스티벌 예산은 지난해 처음 열린 거창한여름연극제의 명칭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군의회는 “통계목과 사업내용이 다르다”고 발목을 잡았다.

8억원에 가까운 예산 전액이 삭감되면서 거창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여름축제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추경예산에서 살릴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은 있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의 군수와 자유한국당이 대부분인 군의회의 대립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관변에서 주관하는 연극제는 ‘패닉’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에 거창국제연극제가 소생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은 남았지만 거창군의 대승적 양보 없이는 이마저도 어려워 보인다. 또한 거창문화재단의 운영방안과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재해석 없이는 거창국제연극제는 한치 앞을 나아가기 힘든 상황이다.

거창군과 거창문화재단이 지금 놓치고 있는 부분은 지난해 홍보대사로 내세웠던 박정자·손숙·윤석화 등 원로배우들이 “하나의 연극제가 아니면 연극계의 문화 정의를 위해 불참한다”는 선언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반쪽짜리’ 연극제로 최악의 오명을 남긴 전례를 반성 없이 추진하려는 대목은 통렬한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거창썸머페스티벌’은 어떻게 결정되었나

지난해 9월 8일 거창군청 2층 상황실에서는 연극제 혁신위원회 1차 회의를 열어 15명에 대한 위촉장을 수여했다. 11월 1일 2차 회의에는 대회장(군수) 밑에 예술감독과 조직위원장을 두어 양대 축으로 조직하되, 조직위원장은 비상근으로 스타급 배우(연극영화과 전임교수)가 맡는 것으로 역할을 배분했다.

공연예술축제 방향은 2차 회의에서 결정했다. 관변에서 주관하는 연극제는 뮤지컬을 중점핵심공연으로 잡고, 국제 2인극 경연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자는 것. 여기에 대형 거리극과 프린지 공연을 대폭 늘려 축제 활성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민간에서 주도하는 거창국제연극제는 이종일 회장에게 맡겨 정통 연극 위주로 거창국제연극제의 명성을 지속하자는 것을 결의했다. 더불어 아시아 1인극제를 후원하여 색깔이 다른 연극작품을 선보이자는 계획도 제안했다.

같은해 11월 24일 거창군청 2층 상황실에서 3차 혁신위원회가 열렸다. 새로운 축제 명칭은 설문조사 10개의 보기를 토대로 ‘거창썸머페스티벌’로 결정한 것. 조사는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6일간 진행됐고, 1064명이 참가해 251명이 답변했다. 이날 축제 명칭 결정을 끝으로 혁신위원회는 해산됐다.

이런 결정을 가지고 양동인 군수는 지난해 11월 29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 군수는 “거창군에서는 기존의 거창국제연극제에 대해 어떠한 간섭과 간여도 하지 않으며 보조금 지급도 하지 않음으로써 거창연극제는 순수 민간 예술 활동으로 남는다”며 “새로운 축제의 이름은 거창썸머페스티벌로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창썸머페스티벌은 출범의 닻을 올리기도 전에 군의회의 예산 전액삭감이라는 복병을 만나 난파할 처지에 놓였다.

◇2012년 시작된 ‘분란의 씨앗’ 지금까지 이어져

거창국제연극제에 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정확히 2012년 7월 27일 제24회 개막제 행사부터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내빈 소개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지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다보니 농협조합장에 은행 지점장도 내빈으로 분류돼 소개됐다.

심지어 사회자의 호명을 받아 올라온 군수가 갑자기 사회자로 돌변해 원로배우들을 소개하면서 30분 정도 계획된 개막식은 1시간을 훌쩍 넘겨 공연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지루함을 못 이겨 여기저기서 투덜거림이 번져 나왔다. 연극제가 문화상품에서 정치적 상품으로 변경되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이때부터 군 문화관광과는 본격적으로 연극제에 간섭을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개막식은 이른바 ‘국제연극제’라는 이름 앞에 붙는 ‘국제적인’ 행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연극제라지만 연극인들은 뒤로 밀려났고, 특히 지자체장인 군수의 본분을 벗어난 종횡무진 오버는 코미디를 한편 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2013년 제25회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식은 더 가관이었다. 당시 개막작은 1억원이 투입된 물위에서 펼쳐지는 야외연극 ‘100인의 햄릿’이 개막식으로 준비돼 연극계와 언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다보니 개막식에서 연극인들은 뒷전이었고, 군에서 초청을 받은 거창지역 사회단체 대표들과 내빈들이 수변극장 단상의 중앙을 차지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분위기는 지역축제의 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2014년 접어들어 보조금 집행 불투명을 시작으로 당시 군수와 불협화음을 겪던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는 군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회장을 내세웠지만 신·구 집행부 갈등으로 불화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새로운 집행부는 이종일 전 회장 등 연극인들보다 군청과의 손발이 더 맞아보였다. 구 집행부 입장에서는 따돌림을 당한 셈이었다.

2014년 거창국제연극제가 문화관광부 축제평가단 평가에서 ‘F등급’을 맞고, 2015년 연극제 관객이 반 토막으로 급감하면서 2년간 숨죽여 지냈던 구 집행부에 새로운 희망이 떠오른 듯 했다. 그러나 2016년 거창국제연극제 예산편성 심의 시 거창군에서 직접 시행하는 조건으로 군의회가 예산을 승인하면서 이 꿈은 물거품 됐다. 민간에서 자체 개최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거창군은 개최를 포기했다. 국·도비 5억을 날린 것이다.

이때의 불화가 2017년 들어 최고 정점에 이른다. 군은 지난 2016년 관을 믿어 주지 못한 게 몹시 원망스러웠고, 민간은 거창국제연극제 상표까지 포기하라는 말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거창군은 2017년 2월 28일 거창문화재단을 공식 출범시켰고, 대화의 부족과 왜곡으로 상대방에 대한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가장 큰 원인은 서로가 포용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오늘까지 이르렀다.

거창국제연극제에 참가한 관객들이 연극을 관람하기 줄을 서 있는 모습. <사진: 거창국제연극제>

◇개혁되어야 할 주체가 연극제 개혁안 내놔

관변에서 주관한 ‘거창한여름연극제’가 끝난 바로 다음날인 지난해 8월 11일 거창군은 올해 연극제에서 드러난 미비사항을 보완하고 민간차원의 혁신안을 접목하기 위해 범군민 협의기구인 ‘연극제 혁신위원회’를 발족한다고 발표했다.

군 문화관광과는 “연극제를 개최하기 전부터 각종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으며 출발했기 때문에 ‘잘해도 본전’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끝까지 살려내 군민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와 민간차원의 비판을 수렴해야 살길이 보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발족배경을 밝힌 바 있다.

막상 뚜껑을 연 결과, 혁신위원회는 개혁의 당사자들이 오히려 칼자루를 쥔 셈이 되었다.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할 거창문화재단이 버젓이 참가했고, 명분과 타당성으로 내세운 설문조사 또한 객관적 지표로 삼기에는 어딘가 부족해보였다.

거창문화재단이 배제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군에서 지난해 자신 있게 연극제를 추진했다면 기존 민간연극제와는 차별이 필요한데 어디에서도 축제 콘셉트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데 문제가 시작된다.

관에서 주도한 연극제는 거창국제연극제가 거창한여름연극제로 이름만 바뀌었지 내용이나 형식 등 프로그램이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디자인도 민간보다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민간연극제에서 29년 동안 이어온 연극제를 표절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공격만 받았다.

축제극장, 구연극장(거북극장), 달물빛극장(돌담극장) 등 공연장의 특징도 살리지 못했고, 축제 포스터가 세 번이나 바뀐 것도 모자라 개막식 작품이 변경되는 일도 발생했다. 어디 한 곳 당당하게 군에서 만든 축제라는 특징을 살리지 못했다.

2018년 연극제 혁신으로 내세운 안도 어설프다. 혁신위원회 측은 “대사 위주의 연극에서 벗어나 뮤지컬·음악극·가족극 등 현대적 트렌드로 장르를 변경한다”고 했지만, 수승대 안에 있는 극장 여건상 이런 장르가 가능한 곳은 축제극장 뿐이다. 구연극장과 달물빛극장은 마당극·정극 등으로 축제극장과 서로 장르가 달라야 어울리며, 극장별 특징으로 관객으로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음악극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라는 모토아래 민간연극제에서 이전부터 진행했던 장르다. 더구나 뮤지컬은 2006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개최되어 차별화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혁신위원회 안은 30년 이어온 전통을 내버리고, 깊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해 비판받아야 마땅한 부분이다.

게다가 거창문화재단은 두 개의 연극제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보여 관련 공무원과 함께 배제하는 게 원칙이어야 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거창군민의 자산이고 연극인들이 보호해야 할 상품이지, 단체장이 바뀔 때 마다 시험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녕 관에서 연극제를 추진하려면 차라리 상표권을 사는 게 마땅해 보인다. 2016년 5억원, 2017년 5억원의 국·도비를 날린데 이어 2018년마저 확보된 국·도비를 활용할 수 없다면 15억원이 날라 가는 셈이다. 차라리 1년 예산으로 매듭 지는 게 더 나아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제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민간인들이 주도해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 30년간의 노하우와 열정을 그대로 썩힐 것인가. 올해도 두 개의 연극제를 진행할 것인가. 하나만 열린다 해도 예산 한 푼 없이 초라하게 관객들을 맞이할 것인가. 거창국제연극제의 브랜드와 2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통째로 잊었단 말인가.

지금은 모든 지자체가 문화산업에 목을 매고 있다. 문화상품은 수많은 파생상품이 만들어지면서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인구 7만명에도 못 미치는 거창이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거창국제연극제라는 문화상품을 갖게 된 것은 행운이다.

혁신위원회는 두 개의 연극제가 통합한다는 전제를 두고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순리다. 더 이상 반쪽짜리 연극제를 원하는 군민들도 연극인들도 없을 것이다. 야외연극제의 효시이고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와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벤치마킹한 국내 최대의 야외연극축제인 거창국제연극제를 올 여름엔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

“거창국제연극제는 거창을 대표하고, 거창 지역경제를 살찌우고, 거창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이다.” 거창군의 통 큰 양보와 대승적 결단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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