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수. 둔철 얼레지 피는 마을 거주 / 까르페디엠 회원.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더할 수 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처음엔 잘 몰랐다. 다만 집 짓는 분을 잘 만나서 처음 지은 집이지만 아쉬움 없는 집을 가졌다고만 생각했다.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처럼 집에 대해 만족하는 이를 아직 보지 못했다. 만약에 집을 다시 짓는다 해도 지금과 똑같이 짓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집을 짓는 과정도 즐겁고 행복했고 일하시는 분들과 지금까지 가까운 이웃으로 잘 지낸다.

그런데 살면서 느끼는 것은 집터가 좋다는 것이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이 땅이 우리에게 왔다. 땅도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그래서 실감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하다. 이 터에 대한 이야기인지 자랑인지를 해보려 한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우선 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도로에선 숨겨진 마을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약간의 비포장도로는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리고 주위로 낮은 산이 편안히 감싸고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1시간 정도면 된다.

또 아주 비밀스런 계곡이 있다. 초봄 계곡 가는 길에는 얼레지 꽃과 야생화가 지천이다. 집 바로 앞에는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작은 개울이 있다. 밭에서 일할 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도랑이 만들어 내는 이 소리가 참 좋다.

집 뒤에는 낮은 소나무 숲이 있어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신기한 바위들을 보면서 아무도 없는 숲길을 조용히 즐길 수 있다. 집주변에는 계절별로 자주괴불주머니, 석잠풀, 산자고, 이질풀 등 심지 않은 꽃들이 핀다. 사람들은 밭인지 풀밭인지 모르겠다고 하겠지만 꽃이 예쁜 풀은 뽑지 않고 그냥 둔다. 작물에 좀 해를 끼쳐도 보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원을 살려주는 언덕이 있고, 그 사이에 오밀조밀 오솔길이 있다. 언덕은 관리하기가 힘들어 여름이면 정글처럼 변한다. 하지만 언젠가 또 다른 모습이 될지 모른다.

또 어린이학교가 가까이 있어 시골마을에서 듣기 힘든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을 수 있다. 새소리 물소리 못지않게 떠드는 그 소리도 좋다. 우리 집 앵두와 딸기의 주인은 아이들이다. 텃밭에 단골손님 고라니와 가끔 찾아오는 멧돼지도 우리 정원의 구성원이 됐다. 하도 자주 와서 이제는 밉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게 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살면서 점점 좋아지고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작지만 풍성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동식물들, 그리고 주변 환경,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웃들 그리고 아이들 이런 곳에 사는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받은 복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며 살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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