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비타민 서부경남포커스
[거창국제연극제] 계곡물 소리·밤하늘의 별빛이 무대배경이 되는 곳
  • 주지원 기자
  • 승인 2018.07.25 17:16
  • 호수 21
  • 댓글 0

실내무대를 야외무대로 가져온
‘발상의 전환’이 연극제의 기틀

지역경제에 끼치는 파급효과는
2014년 조사결과에서 266억원

수승대 돌담극장 전경. <사진: 거창국제연극제>


낮에는 새콤한 휴식을, 밤에는 달콤한 감동을

“새와 매미, 그리고 계곡물 소리가 효과음이 되고,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은 무대 배경이 된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거창은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수승대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연극인과 관람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떠들썩해진다. 고색창연한 서원과 물소리,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는 정자 옆에 마련된 야외무대 주변의 풍광 또한 축제의 운치를 더한다.

지난 2년간 거창국제연극제가 파행을 겪었지만, 거창군민들과 관객들의 사랑으로 제자리를 찾으며 다시 국제적인 연극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올해는 연극제가 30회째를 맞이하는 뜻 깊은 해라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거창군과 거창국제연극제 측은 갈등을 해소하고 민관이 협력하여 거창국제연극제를 세계화하는 원년이 되자고 다짐하면서 대한민국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로 도약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거창국제연극제는 1989년 경남지역 연극단체들 간의 화합과 경남지역 연극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시월연극제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5회째인 1993년 2개 해외극단이 참여하면서 거창국제연극제로 확대됐다. 하지만 97년까지는 12개 단체가 참여해 실내 소극장에서 열린 산골의 작은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지역연극제가 유수한 국제연극제로 발돋움하게 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연극은 실내에서 공연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연극제의 국제적 도약을 꿈꾸던 거창의 연극인들은 주변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연극공연의 무대이자 세트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수렁에 빠진 거창연극제를 극적으로 구해 낸 것은 바로 이 야외무대였다. 한국의 옛 정취가 그대로 배어 있는 서원 마당, 큰 자갈을 쌓아올린 울타리가 둘러쳐진 돌담극장, 500년 된 은행나무,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 주변 등 거창의 빼어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최대한 활용한 게 적중한 것이다.

수승대 무지개극장에서 낮 공연을 관람하는 피서객들. <사진: 거창국제연극제>

‘무대를 야외로’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세계화

연극무대를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실내에서 탁 트인 야외로 옮겨보자는 아이디어는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에게서 나왔다. 계기는 프랑스 배낭여행이었다. 그는 1996년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국제연극제를 보러갔다. 아비뇽에는 14세기 때 로마교황이 거주했던 교황청과 도시를 에워싼 성벽, 그리고 고딕 건물들이 즐비한 중세 유럽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500여 개의 극단은 아비뇽 거리와 건물 곳곳에 자리 잡은 115곳의 야외무대에서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별도로 극장 건물을 지어 실내에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최대로 활용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비뇽연극제는 이종일 위원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매년 7월 한 달간 열리는 연극제 수입으로 아비뇽 시민들이 거의 1년을 먹고 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바뀐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서원 등 야외에 무대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연극제 관계자들은 문중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2년 동안 설득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98년 10회 연극제부터 구연서원을 비롯한 야외무대 두 곳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신정규 문중 어른은 지금은 거창국제연극제 발전위원장으로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다음해는 한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유서 깊은 서원과 풍광 좋은 계곡에 야외무대가 설치됐다는 사실을 내세워 유치활동을 벌인 끝에 해외 극단 5개 팀을 참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들을 포함해 그해 국내 8개 팀 등 13개 팀이 참가함으로써 침체일로를 걷던 거창국제연극제의 활기가 되살아났다.

비록 오지에서 벌이는 축제지만 거창국제연극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거창군청도 이에 가세했다. 국·도비 등 1억8000만원을 처음으로 연극제에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거창국제연극제는 2005년 문화관광부의 전국 공연예술분야 평가결과 최우수 사업으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대표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관광부는 천혜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성공한 지역축제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여기에 거창군은 물론 경상남도 등 자치단체의 지원이 본격화 되면서 더 많은 힘을 보탰다.

제30회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작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니나'. <사진: 쇼봄(주)>

100만이 찾는 연극도시로 거듭난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다. 거창군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6년부터이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2012년부터 ‘분란의 씨앗’이 이어졌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면서 문화상품에서 정치적 상품으로 변경되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이때부터 문화관광과는 본격적으로 연극제에 간섭을 시작했고, 개막식에서 지역의 사회단체 대표들과 내빈들이 앞자리를 차지하다보니 연극인들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30회 연극제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 토막이 난 셈이다. 20회 행사는 2008년 7월25일부터 8월10일까지 17일간 수승대 일대의 야외극장과 거창교육문화센터 등 11개 극장에서 열리면서 참가극단과 작품 수도 10개 국가에서 모두 47개 극단이 참가, 192회의 공연으로 많은 연극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해 치러진 연극제는 관람객 수가 2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올해는 2018년 8월3일부터 12일까지 기간이 10일간으로 줄어들었다. 참가작도 6개국 26개 단체로 6개 극장에서 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극제가 기대가 되는 이유는 거창국제연극제 30년을 맞아 ‘세계화의 원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아비뇽’으로 일컬어지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랑스 아비뇽축제와 나란히 할 계획안을 군과 합심해 수립한 것이다.

그동안 피서철에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는 15만명 내외의 마니아층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이는 연극뿐 아니라 마당극과 악극, 음악극, 국악 뮤지컬 등으로 점차 장르를 넓히면서 공연예술 종합 페스티벌로 성격이 바뀌면서 가족과 함께 휴식과 문화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코드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거창국제연극제로 인한 거창지역의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2014년 경남발전연구원과 한국공연예술컨설팅연구소의 조사결과 총 266억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국내 최고의 야외공연축제로 자리를 잡아갔다.

거창국제연극제 측은 올해를 원년으로 삼아 연극제 관객 100만 시대를 열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거창연극제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페스티벌로 전환하고, 여름철에 열리는 국제연극제 기간을 확대하여 연극을 통해 거창을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로 알려 관람객들이 사계절 수승대를 찾도록 할 계획이다.

이 계획의 중심에는 연극공연 전용 실내극장을 건립해 겨울철과 장마철에도 공연을 계속하며, 연극체험이라는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거창이란 이름 자체를 브랜드화 한다는 구상이다.

이밖에 거창국제연극제는 세계초연을 위한 희곡 발굴과 신진 연극인들의 등용 발판인 경연참가, 공식초청작 평론집 발행, 학술세미나, 영어연극캠프, 지도교사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연극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이제 세계 축제들과 경쟁력을 갖춘,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한여름 밤 꿈의 무대로 한국의 아비뇽을 넘어, 아시아의 아비뇽으로 힘찬 도약을 진행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느끼는 한여름 피서지의 낭만과 연극의 향기는 우리들 가슴에 잊혀 지지 않을 진한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주지원 기자  joojw@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지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