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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를 닮은 사람…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 남다르다박종호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
  • 이영철 기자
  • 승인 2018.07.26 10:59
  • 호수 21
  • 댓글 0

“우리 농민들이 같이 잘 살아야
지역이 잘 산다는 마음이 절실“

한우 2마리로 시작해 200두로
어릴 적 꿈이었던 축산업 일궈

문화역사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마을 살리기 위해 도록 살피다
목은 이색 선생의 흔적 찾아내

박종호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그는 어릴 적 꿈이었던 축산업에 대한 도전을 염소 30마리와 한우 2두로 시작해 지금은 한우 200두가 넘는 농장으로 일구었다. 박 국장은 “지역발전과 농업의 변화를 모색하며 미래를 위한 도전과 꿈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지리산 엄천강 강물의 빠른 물살도 유림면 함허정(涵虛亭) 앞에 이르러서는 맑고 푸른 호수 같이 고요히 흐르는 강물이 된다. 마치 심훈의 ‘상록수’ 배경 같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다.

심훈의 ‘상록수’는 1930년대 당시 지식인의 관념적 농촌운동과 일제의 경제적 침탈을 비판함으로써 현실 정세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그리고 극복이란 요소를 실천해내면서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마치 함양군 유림면 국계마을에 농촌에 대한 관심과 열의, 지역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진 ‘상록수’의 주인공 같은 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한여름 열흘째 지속되는 폭염을 뚫고 국계마을에 살고 있는 박종호(57)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을 18일 찾아갔다.

박 국장은 이날도 구슬 같은 땀을 뻘뻘 흘리며 200두가 넘는 한우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1961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에 태어나 7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외가가 있는 산청군 생초면 대포마을로 이사를 갔다. 대포마을은 여흥민씨 집성촌으로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했다.

박 국장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까닭은 농업계 학교를 나온 아버지께서 과수원하기에 좋은 곳을 찾다가 마치 장인어른의 권유로 둥지를 튼 것이다. 국계마을과 대포마을은 직선거리로는 6㎞되는 가까운 곳이다.

그는 생초면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고, 군 복무를 마치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 부산 해운대 성심외국어대학 근처에서 복사일도 배우고, 등공예 지점토도 하고, 매장을 운영하기까지 했다.

박 국장은 이곳에서 함양군 병곡면 마평마을이 고향인 3살 아래인 김성숙 처녀를 만나 결혼해 1남 2녀를 뒀다. 하지만 고향과 농촌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던 그는 둘째가 갓 젓을 떼기 시작할 무렵인 1992년 다시 부모님이 계시는 대포마을로 돌아왔다.

박 국장은 군 제대 무렵인 당시에도 늘 4차 산업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수원원예시설에서 배나무 식재에 대한 교육을 받기까지 했다. 박 국장은 “대포마을은 강가 근처라 배나무를 심으면 경제적 가치와 효율성이 상당히 뛰어났다”고 했다.

이런 열정 때문인지 마을 주민들은 그에게 대포마을 이장을 맡겼다. 그는 이장생활을 하면서도 공동체 사업에 대한 열망을 키워왔고,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축산업에 대한 도전을 염소 30마리와 한우 2마리를 가지고 시작했다. 2년 정도 지나면서 낙농업에 대한 자신이 생기자, 경기도 포천에서 젖소 송아지 22마리를 사와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접어들었다. 부족한 시설비는 농민후계자 자금 1500만원을 융자받아 숨통을 틔웠다.

왼쪽 사진은 해피빌리지마을 추진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박종호 국장이 주민들에게 추진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 국장의 한우 농장.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축산업을 시작한 1994년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던 해라 우리나라 농업이 여러 차례 고비를 맞던 시기다. 박 국장은 이 과정에서 낙우회, 농민회, 농업경영인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사회의 현실적인 면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여러 단체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축산업과 사회생활을 병행했다.

박 국장은 이에 대해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농민들이 같이 잘 살아야 지역이 잘 산다는 마음이 절실했었고, 무엇으로 농촌의 소득을 올릴까 무척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가 공동체의 씨앗을 뿌린 생초면 대포마을은 2008년 정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사업비 2억원을 받아 마을공동 체험장, 민박, 농가식당, 농산물 판매장 등 농촌체험 공간으로 조성됐다.

대포마을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경호강변에 위치해 천혜의 자연환경과 대포서원, 민씨 고가 등 전통문화 자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농촌체험 관광 활성화를 통한 농외소득 증대와 도·농 교류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 국장이 뿌린 씨앗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경남 최고의 힐링휴양지로 일컬어지는 산청 동의보감촌도 경남약초작목반의 조직으로 시작됐다. 당시 약초연구회 회원은 박 국장을 비롯해 산청에서 10명, 함양에서 1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시작된 생각들이 ‘산청한방테마파크’라는 큰 보물로 되돌아 온 것이다. 동의보감촌은 산청군의 관광수입과 유동인구로 산청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박 국장 등 약초연구회 회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박 국장에게 함양으로 이사 온 연유를 물어봤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에 상륙하면 많은 피해를 남겼는데 그가 애착을 기울이던 농장도 갑자기 불어난 물에 모두 잠기게 됐다고 했다. 박 국장은 “비가 너무 많이 와 마을 정리를 하고 있다가 축사가 물에 잠긴 줄도 몰랐다”고 덤덤히 회상했다.

농장이 물에 잠긴 것은 이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강가에 있던 대포마을은 태풍으로 다리도 무너지고, 전기도 4일간이나 끊기는 등 최악의 피해를 봤다. 태풍 루사가 한반도에 끼친 손실은 5조4696억원으로 역대 태풍 중 재산상 가장 큰 피해를 준 태풍으로 기록됐다.

박 국장은 대포마을 등이 특별재해지역 지구로 지정되기 위해 주민들과 군청을 항의 방문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재해지구 지정으로 지역민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박 국장은 낙동강특별법에 따라 하천 근처에는 축사를 못 짓게 되면서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땅을 찾던 중 생가 근처인 유림면 국계마을에 2005년 정착하게 됐다. 그는 이곳에서도 주민들로부터 열정을 인정받아 유림면 청년회장을 지내고,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과 유림초등학교 운영위원장, 해피빌리지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림면은 함양의 읍면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은 지역이다. 서쪽으로는 화장산 줄기가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으로는 강이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함양읍으로 나오는 교통이 불편하고, 중학교 학군도 예전에는 산청군 화계에 속하였다. 유림면은 그 흔한 사찰을 비롯하여 명승유적도 없고 변변한 음식점이나 유원지도 없다.

박종호 국장이 목은 이색 선생 탐방길 이정표 앞에서 설치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 국장은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빈약한 유림면을 어떻게든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만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결국 국계마을이 다른 마을들보다 오랜 연륜을 갖고 있으며, 목은 이색 선생 등 명인들이 머물러 살기도 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목은 선생의 국계 우거(寓居) 흔적을 되살리는 일을 추진했다.

박 국장은 “돈 안들이고 유림면을 쉽게 살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다가 문화와 역사를 생각하게 됐다”며 “스토리텔링을 찾기 위해 문화도록을 살피다 국계마을이 목은 선생이 서재터와 낚시를 즐기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유림면 청년회는 국계마을을 중심으로 목은 선생의 제계서재, 낚시를 다닌 길, 낚시터, 목은들의 표지와 안내판을 만들었다.

국계(菊溪)는 제계(蹄溪)라고도 한다. 제계마을은 고려말 목은 이색 선생이 마을에 은거하면서 서재를 짓고, 제계서재(蹄溪書齋)라고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말 삼은(三隱)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일컫는데 포은과 야은이 목은의 제자였으며, 조선의 정도전, 하륜, 윤소종, 권근 등도 제자였다. 김종직, 변계량이 목은의 학문을 계승했다.

함양웰촌체험관광 사업계획서. 이 계획서를 토대로 2015년 화장산 산나물 축제가 열렸다.

이와 함께 박 국장은 유림면을 특화시키기 위해 ‘함양웰촌체험관광 사업계획서’도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유림면 화장산 산나물 축제이다. 이 축제는 2015년 1회로 끝나 그에게는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앞서 박 국장은 산나물과 축산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2014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창업대학원에 등록해 1학년 과정을 마쳤다. 열정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지식으로, 지역을 위해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들과 군의원들은 이런 그를 두고 “늘 변치 않고 농촌과 지역만을 생각하는 ‘상록수’ 같은 사람이다”고 칭송했다. 박 국장은 “인생을 나쁘게 살지는 않은 것 같다”며 “지역발전을 위해 뭔가 좀 책임있는 일을 해야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흘째 이어지던 한낮 폭염도 이날따라 무덥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박 국장의 진실함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록수’ 같은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게 함양군으로서는 큰 행운이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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