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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의 전쟁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8.07.26 11:11
  • 호수 21
  • 댓글 1
강정애. 산청 송강마을 거주, 글쓰기 모임 '까르페디엠' 회원.

두 평 남짓한 텃밭에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편이 풀을 뽑고 가끔 고추며 가지를 따오곤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나에게 그 일을 맡기고 슬슬 밭에 가는 일이 줄었다. 물론 직장에서 돌아오면 피곤해서 밭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골생활이 서툰데다가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가꾸어서 수확으로 이어지는 텃밭의 즐거움을 알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내가 꿈꾸던 텃밭은 문을 열면 바로 가까이에 있어 부엌에서 요리하다 언제든 뛰어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어야 했다. 그렇지만 현실 속 우리 텃밭은 다르다. 집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에 있으며, 가는 길도 사납다. 텃밭을 가려면 울퉁불퉁한 돌계단을 딛고 내려가야 하는데, 돌계단 오른쪽으로 2층 높이의 낭떠러지가 있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내려갈 엄두조차 내기가 쉽지 않다.

차를 타고 오가다가 나날이 무성해지는 텃밭을 보면서 내 마음은 점점 심란해져 갔다. 드디어 하루 날 잡아 단단히 마음을 먹고 텃밭으로 향했다.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오른쪽을 안 보려고 눈을 질끈 감아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낭떠러지가 더 크게 와 닿는 것이 아닌가. 가슴을 졸이며 벌벌 기다시피 텃밭에 내려섰다.

가까이서 본 텃밭은 말 그대로 풀밭이었다. 밭을 갈고 두둑을 만들어 애지중지 심은 채소는 풀 속에 갇혀 보이질 않았다.

‘내 오늘 너희들을 모두 추방하러 왔으니 각오해라!’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밭에 자리 잡은 풀들을 향해 이렇게 선전포고를 한 다음 호미를 들고 풀 뽑기를 시작했다. 이것들이 어찌나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 호미로 수차례 내리쳐도 뽑히지를 않는다. 요령으로 풀을 뽑아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내리치니 힘들 수밖에. 풀들과의 힘겨루기에 지쳐 갈 때쯤 등 뒤로 조금씩 작물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풀이 뽑힌 밭두둑에 오뚝 선 가지와 고추, 상추와 방울토마토가 살랑살랑 부는 강바람에 연둣빛 이파리를 흔든다.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만큼이나 마음은 뿌듯해져 갔다. 바람도 칭찬해 주듯 시원하게 이마를 스치며 지나갔다.

풀들의 삶이란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 남의 밭에 터를 잡으면 밭작물과 공존할 수 없어 미운털마냥 금세 뽑히고 만다. 반면 들판이나 산속에 자리를 잡으면 농부가 베어서 여물이라는 고마운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어떤 이는 풀을 모아서 거름을 만들어 다음해 농사에 사용하기도 한다. 풀의 본래 모습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의 관점에 따라서 유용한 풀이 되었다가 쓸모없는 풀이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각각 지닌 재주와 성향이 다르기에 그가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돋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그물을 던져야 할 어부가 서울 한복판을 종일 누비며 다녀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하고 숨이 막힐 것인가! 한편, 사색을 즐기며 시를 노래하는 시인에게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서 긴 시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업무를 맡긴다면 기분이 어떨까!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곁에서 지켜보는 이까지도 힘들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잡초건 사람이건 놓여야 할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지금 놓인 이곳이 나에게 어울리는 최선의 자리일까? 새삼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말끔해진 우리 텃밭은 이제 잠시 풀과의 휴전상태이다. 하지만 조만간 작물들 사이로 다시 풀들이 비집고 올라올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풀과의 공존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모조리 뽑아버려야 할지 다시금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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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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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희 2018-07-26 18:50:06

    공감합니다
    풀메고 며칠 후 보면 또 자라있습니다
    비 오고난 후는 그 속도가 몇배 더 빠릅니다
    그래도,흙 만지며 노동하는 일이 싫지 않습니다
    물론 텃밭수준의 적은 공간이라 적당히 땀 흘리며즐기만합니다.
    고소공포에서 해방되어 텃밭가는 길이 불안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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