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 김기택의 시에서
 

잠자는 사이
겨울산에 눈이 내린다
모든 사람들이 여름으로 가버린 사이
홀로 산은 이 높은 곳에 와서
겨울 새벽에 사는 눈을 맞는다
꿈을 꾸는 내 눈은 온통 은빛이다
꽃도 새도 커다란 짐승도
책에서 나온 무수한 벌레들도
이 겨울엔 다만 씨앗으로 남아
산 구석구석 죽은 듯이 숨 쉬고 있다

겨울새

불꽃이 끓는 고압은 날개와 날개 사이
균형을 이룬 중심에서
고요하고 맑은 잠이 된다
바람이 마음껏 드나드는
잠속에서 내려다보면
어둠과 바람은 울부짖는
한 마리 커다란 짐승일 뿐
그 위에서 하늘은
따뜻하고 환하고 넉넉하다
힘센 바람은 밤새도록
새를 흔들어대지만
푸른 공기는 어둠을 밀며
점점 커가고 있다

눈으로 덮힌 지리산.

김기택의 시는 온통 겨울산이고 눈이고 꽃이고 새고 커다란 짐승이고 새벽이고 바람이고 날개고 잠이다. 곧 생명이고 죽음이고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또한 그것들의 경계에 있는 위태로운 날선 언어들이다. 이 어렵고 추운 겨울의 시간은 언제 ‘따뜻하고 환하고 넉넉한’ 시간으로 바뀔까? 그런 기대로 이 겨울을 산다.

<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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