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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마지막 두 황제 모신 ‘이제묘’ 함양으로 왔다

경북 상주·대구서 70여년
고종과 순종 모신 ‘이제묘’

멸실신고 등으로 훼손 처지
지난 5월 함양으로 모셔와

독립정신과 황실복원 빌었던 곳
전국에서 유일하게 하나만 남아

충북 괴산 화양서원 내에 있는
明 황제 모신 ‘만동묘’와 대비

지난 5월 초,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고종과 순종을 모신 '이제묘'가 함양으로 왔다. 왼쪽은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 오른쪽은 함양군 안의면 황대마을 뒷편에 위치한 국사문화원으로 옮겨온 '이제묘'와 '숭의문' 위패와 편액이 놓여 있는 당시 모습. 현재 '숭의문'은 국사문화원 정문에 달려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고종과 순종을 모신 ‘이제묘’(二帝廟)가 경남 함양으로 왔다.

이제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두 황제 고종(광무황제)과 순종(융희황제)의 위패와 편액을 걸고 제사를 지낸 전국 유일한 민간사당이다.

구한말 영남을 대표했던 유학자 최상길 선생과 김종희 선생이 1926년 융희제(隆熙帝) 순종마저 돌아가자 경북 상주에서 유림 100여명과 함께 각각 망곡단(望哭壇)과 광희묘(光熙廟)를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제묘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42년 대구 팔공산으로 옮겼다가, 1951년 첩첩산중인 지금의 대구 동구 평광동으로 옮겨 재건립했다. 70여년 동안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임금을 기리는 제향을 지냈다. 대구는 1907년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해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의 발산지로 적격이었다.

대한제국이 망한 후 마지막 황제였던 두 분을 혈통이 아니면서도 향사를 지내고 독립정신을 아로 새기며, 황실의 부활을 빌었던 제실은 전국에서 오직 이제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켜왔음에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최상길 선생의 4대째 장손이 부도로 토지소유권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누구도 돌보지 않아 매년 지내든 향사도 끊어진 것이다.

함양으로 오기 전에 사당 안에 있던 고종과 순종의 신위(神位)는 모두 치워졌고 충효를 강의하던 강례당(講禮堂)은 텅 빈 집처럼 변했다. ‘숭의문(崇義門)’과 ‘이제묘’(二帝廟)란 현판만 임금을 모시던 사당이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대구에서도 이제묘를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돌보는 이 없이 오래되면서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고, 멸실 신고까지 돼 있는 상태에서 현실화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랐다.

지난 5월 초, 이를 보다 못한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이 대구 유림들과의 상의 끝에 이제묘의 현판과 편액을 함양군 안의면 황대마을에 위치한 연수원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 원장은 “100년 전의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을 부끄럽다고 감춘다면 오늘 치욕스런 역사가 재현될 수 있다”면서 “선비의 고장이라고 일컫는 함양군이 대한제국 마지막 두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위패를 모시기에 적합한 곳으로 판단되어 옮겨왔다”고 말했다.

이어 하 원장은 “선비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유림과 선비, 왕실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며 “이제묘 복원추진위원회 구성과 복원운동에 경남도와 지자체를 비롯해 뜻있는 군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에 놓인 이제묘는 충북 괴산 화양구곡 초입 화양서원 한 가운데 높게 받들어져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신 ‘만동묘’와 대비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만동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20만명에 가까운 파병을 해 주었으니 이를 잊으면 안 된다는 유지를 받들어 지어진 것이다.

명나라 황제사당은 문화재로 지정까지 됐지만 대한제국 황제 사당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한황실진흥원'과 '이제묘' 복원운동에 대한 문의와 후원은 055-962-7630.

지난 1951년 대구 동구 평광동으로 옮겨 온 '이제묘'의 2019년 1월30일자 대구 TBC 방영 모습.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에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이 함양으로 옮겨왔다. . <사진: TBC 캡쳐>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20만명을 파병해 준 것을 기리기 위해 명의 마지막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신 '만동묘'. 충북 괴산군 화양서원 내에 있다. 단정한 모습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대한제국의 마지막 두 황제 '이제묘'와 대비된다.

 

이 시대 마지막 선비, 대한제국 황실복원에 나서다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

대한황실은 유림의 근거지
함양 ‘선비정신’에도 일치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

대한제국의 마지막 두 황제를 모신 ‘이제묘’가 지난 5월 초 함양으로 왔다. 대구에서 복원운동에 나섰지만 지원 대책에 따른 한계로 ‘선비의 고장’ 함양으로 모신 것이다.

하도훈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장은 그동안 남계서원 유림들과 서울, 상주, 대구, 함양을 오가면서 대한황실을 일으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다. 그러던 중 많은 비가 오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이제묘’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역사적 가치 보존에 앞장서기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이제묘는 1907년 고종에 이어 1926년 순종마저 승하하자 경북 상주와 대구에서 70여년 동안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임금을 기르는 제향을 지낸 곳이다.

끊어진 맥을 다시 잇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하 원장은 함양의 선비정신이 이제묘의 역사적 사실과 합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선비가 사라진 지금,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 선비일지 모를 그의 열정과 노력이 빛나길 바란다.

하 원장과의 인터뷰는 10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에서 진행됐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두 황제 고종과 순종을 모신 ‘이제묘’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1905년 을사늑약(한일협상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일본의 식민지로 편성하기 위한 정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경북 상주에서 유림들과 의병들이 들고 일어났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불행은 시작됩니다.

이제묘는 광무황제(고종)와 융희황제(순종) 두 임금과 최익현·민영환·조병세·송병선·최상길 등 충신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봄, 가을에 향사를 모셔오던 곳입니다.

사당을 처음 만든 이는 고종 때 병조참판(국방차관)을 지낸 최병술의 손자로 유학자인 최상길 선생에 의해서입니다. 최씨는 광무제(光武帝) 고종 사후 경북 상주에서 임금이 계시던 서울을 향해 망곡단(望哭壇)을 세우고 3년상을 치렀고, 1926년 융희제(隆熙帝) 순종마저 돌아가자 유림 100여명과 함께 ‘동의계’(同義契)를 만들어 광희묘(光熙廟)를 세운 것이 그 발단입니다.”

그동안 ‘이제묘’는 대구에 있었습니다. 언제 함양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까.

“이제묘는 경북 상주에서 시작했으나 ‘왜 제사를 지내냐, 독립운동 하는 것 아니냐’며 일제에 20여 차례 붙들려 고문당하는 등 탄압을 견디다 못한 후손들이 1942년 대구 팔공산으로 옮겼고, 1951년 대구 동구 평광동으로 옮겨와 70여년 간 매년 제향을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으로 인해 후손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경매로 넘어가 지금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동안 대구 유림들과 시민단체들이 복원운동에 나섰지만, 여러 이유로 극복하지 못해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해 이제묘를 지난 5월 초 함양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묘’의 역사적 사실과 가치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이제묘를 대구로 모셔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과 직접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대구를 독립운동의 메카로 본 것이죠. 대한제국 독립운동과 유림들의 구심적 역할을 위해 이제묘는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제묘는 제향 때도 서기와 단기가 아니라 융희를 사용합니다. 올해가 2019년이나 단기 4352년이 아니고, 융희 113년인 것입니다. 제향 때도 ‘유세차 융희 기원후 몇 년’으로 고유문을 읽습니다. 이제묘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대한제국의 황실을 상징합니다.”

대한제국 황실보존 단체인 ‘대한황실진흥원’을 소개해 주시죠.

“대한황실진흥원은 대한제국이 선포된 지 120주년을 맞는 2017년 10월4일 창립되었습니다. 황실진흥원은 약 150명의 집행위원들을 중심으로 발족된 순수 민간단체로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결속력 강화 그리고 평화통일을 지상목표로 선정하고 대한황실을 중심으로 솔직한 우리역사, 멋있는 우리문화의 선양과 진흥에도 노력을 기울여 지구촌 인류공영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특히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국사문화원’이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황실과 관련된 교육은 물론 한반도 평화통일 등 현 시대상황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제시하는 세미나들이 진행될 것입니다.”

구한말 비운이 역사를 안고 있는 이제묘가 함양으로 왔습니다. 지자체의 지원은 어떻습니까.

“아직 함양군에서는 이제묘가 안의면으로 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시 안음현은 1597년(선조 30) 황석산성에서 왜군에 막대한 타격을 준 우리나라 의병사에서 유일하게 ‘백성의 전쟁’이 일어난 곳입니다. 이제묘가 함양으로 온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지자체의 지원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경남도와 함양군에서 이제묘의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알고 ‘선비의 고장’답게 이제묘를 복원하는데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대한제국 황사손 ‘이원’ 선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사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증손자로서 제5대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입니다.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총재를 맡고 있으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서울 성북구입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슬하에는 장남(21)과 차남(20)을 두고 있습니다.

황사손은 전주에 자주 내려가곤 합니다. 요즘은 대한황실진흥원 교육연수원이 있는 안의와 수동 남계서원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양만 아니라 전국의 유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합니다. 유림의 뿌리는 결국 황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함양의 선비정신과 조선왕조가 만났습니다. 앞으로 많은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구시도 이제묘에 대해 그동안 ‘사유재산이어서 지원대책에는 한계가 있지만, 시민단체 등이 보존이나 이전복원을 추진한다면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언젠가 대구로 가야하지만, 완전 복원이 될 때까지는 함양에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이제묘는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충절과 일제에 빼앗긴 국권 회복의 의지가 녹아 있는 곳입니다. 함양의 선비정신과 잘 연계해서 가꾸고 보존한다면 문화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상당할 것입니다. 함양군이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신종과 의종을 모신 ‘만동묘’에 못지않게 지역에서 존치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주길 바랍니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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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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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유림 2019-05-16 12:34:19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이 시대 마지막 선비의 표상, 하도훈 원장님! 홧팅^^   삭제

    • 아그네스 2019-05-15 14:15:16

      이런 가치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해유신 하도훈연수원장님의 큰 노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삭제

      • 안상범 2019-05-15 12:47:45

        훌륭하신 일을 추진해주신 하도훈원장님과 많은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에 말씀을 드립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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