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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이 품은 최치원… 인문관광 콘텐츠로 개발한다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9.07.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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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 아우르는 한류시조
문화자원 활용을 위한 방안모색

중국이 건립한 ‘최치원 기념관’
첫 외국인 명인기념관으로 명성

정읍시·서산시·함양군 태수 역임
가야산에서 ‘신선’되었다는 전설

합천군은 경남대 고운학연구소와 함께 ‘최치원과 합천’ 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사진: 고운학연구소>

[최병주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위원장]

문창후(文昌侯)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학자·문장가·관료인 동시에 선생의 사상은 한중일(韓·中·日) 삼국을 아우르며 유불선(儒·佛·仙) 통합을 주장한 문인이자 한문학의 정립하는 초석이 된 대학자이다.

중국 강소성 양주시 당성유적의 핵심부분에 ‘최치원 기념관’을 2007년 중국 중앙정부가 비준하여 건립한 첫 외국인 명인기념관으로 한류(韓流) 문화의 시조로 평가받고 있다.

고운 선생은 857년(신라 문성왕 19) 사량부 최견일의 아들로 출생했으며, 868년(경문왕 8) 12세 어린나이에 청운의 꿈을 안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으며,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부지런히 공부하여라(十年不第卽非吾子也矣勉之)”라는 아버지 말씀에 인백기천(人百己千·남이 백을 할 때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라는 기록을 남길 만큼 6년을 하루같이 학문탐구에 열중하여 18세에 진사 과거시험에서 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아버지의 말씀에 보답하였다.

876년 선주 율수현의 현위로 첫 관직에 임명되어 많은 치적을 쌓았으며, 당시 공사 간에 지은 글들이 후에 ‘중산복궤집’ 5권으로 엮어졌다. 2년 뒤 율수 현위를 사직하고 박학굉사과에 응시할 준비를 위하여 종남산에 입산하였으나, 서량이 떨어져 고병의 경제적 도움을 받았으며, 고병의 추천으로 관역순관의 높은 지위에 올랐다.

880년 고병이 병마도총사가 되어 황소(黃巢)의 난을 진압할 때, 고병의 종사관이 되어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황소가 이글을 읽다가 “온 천하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할 뿐 아니라 지하의 귀신들까지 너를 죽이려 의논했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자신도 모르게 낙상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명문으로 “황소를 격퇴한 것은 칼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이다”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로 최치원 선생의 글이 중원 천지를 뒤흔들었으며, 문필대공의 명성을 얻었다.

882년 고병의 천거로 승무랑시어사내공봉으로 도통순관의 직위에 올랐으며, 당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885년 스물아홉 살 되던 해에 당 희종의 조서를 가지고 귀국하였으며, 헌강왕은 최치원 선생을 외교문서 등을 작성하는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에 제수하였으며 당에서 지은 저술들을 정리한 ‘계원필경집’ 20권을 왕에게 헌상(獻上)하였다.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에서 쌓은 경륜으로 나라를 위해 의욕적인 정책을 펼치려했으나, 진골귀족 중심의 신분체계와 유학파의 한계를 느끼고 서른 살에 외직을 자청하여 태산군(현 정읍시)과 부성군(현 서산시), 천령군(현 함양군)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그 무렵 신라는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며, 국가재정은 파탄이 나고 농민들이 사방에서 봉기하기에 이르게 되자 최치원 선생은 신라를 개혁하고자 시무책 10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리니 왕은 가납하고 최치원 선생을 육두품 신분으로는 최고 관등인 아찬에 제수하였다.

그러나 권력투쟁을 일삼는 중앙정부의 귀족들은 최치원 선생의 개혁안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결국 왕실이 쇠퇴하고 국력이 분열된데 실망한 최치원 선생은 나라의 정세를 잘 묘사한 상표문을 효공왕에게 올리고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전국을 소요하며, 선정을 베풀고 곳곳에 남긴 흔적은 지금의 풍류의 원천이 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최치원 선생의 뜻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한중학술회의(韓中學術會議)을 계기로 합천군은 최치원 선생을 연계하여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최치원 선생에 대한 역사 및 문화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21세기 문화전쟁을 맞이하여

최근 우리 문화유산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적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각 지역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매우 좋은 현상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호존중은 단순히 구시대의 문화적 유산을 정리 복원한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21세기의 문화전쟁의 시대를 대비하는 국가의 전략적 차원이며, 지역사회가 갖추어야할 경쟁력이 있는 무한한 상품의 대상이다.

합천군은 문화재를 170여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가 39개소, 지방지정문화재가 72개소, 문화재자료가 59개소로 다른 시군(市郡)보다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해인사 대장경판 및 경관은 2007년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란 본질적으로 삶의 특징적인 양식을 의미하며, 문화가 없는 도시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도 생명이 없는 도시요, 개성을 상실한 도시일 수밖에 없다. 문화는 21세기 밀레니엄시대의 중심적 가치로서 문화에 대한 인식과 탐구정신이 더욱 더 요망되는 시대적 사명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중앙 집중적인 물량위주의 성장과 발전에만 매달려왔으나, 전국의 도시들은 점차 자신의 고유한 멋과 스타일을 상실하면서 몰개성과 획일화의 도시로 변했으나 다행히 지방화·정보화·세계화의 바람이 불면서 각 지방마다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기지역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 볼 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러한 시대적 부응에 “합천의 문화는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한중고운국제학술대회’를 이곳 합천에서 개최하게 됨은 대단히 중요하다할 것이다. 1160여년의 최치원 선생의 유적을 제일 많이 보유한 합천군은 여타 시군보다 가장 지역적으로 조건이 뛰어난 지역이다.

문화라는 상품은 품질 좋은 제품을 시장에서 단순하게 판매하는 것만 아니라 그 나라 내지 그 지역의 이미지를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상품구매를 통하여 그 지역의 문화를 소비하게 되며, 소비자와 생산자는 상품을 통하여 일종의 문화적 교류를 경험하게 된다. 앞으로 문화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만이 발전할 것이며, 문화적 전략적인 모색은 향후 지역사회가 생존하기 위한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최치원(崔致遠)과 합천(陜川)

최병주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위원장(오른쪽)이 학술대회에 참가한 모습.

최치원 선생은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한반도 전역을 순례하며 후학을 가르치며, 많은 발자취를 남겼으며, 말년에는 이곳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羽化登仙)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합천은 해인사·청량사·고운암·해인사 전나무·홍류동계곡·농산정·묘길상탑·학사당신도비·문창후 유허비· 홍류동 고운제시석척비각 등 문화적 가치로서 최치원 선생의 유적을 가장 많이 보유한 지방자치단체이다.

이번 한중고운국제학술회의를 계기로 최치원 신선제(神仙祭)를 연례행사로 거행한다면 한중(韓中)교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합천군은 미래 관광사업인 중국 관광객(요우커) 유치로 지역경제에 활성화에 이바지 할 것이며, 지역민에게는 긍지를 심어주고,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할 것이며, 물질중심생활에서 벗어나 인간본능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양적인 삶의 사회를 질적인 삶의 사회로 전환하여 호학승문의 전통과 지식기반을 축적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아직 형성되지 못한 서민사회가 조직화되고 이것이 지역사회 발전에 초석이 되는 효과가 뒤따를 것이다.

합천군은 앞으로 역사와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파생되는 경제적 이익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학 관계자들과 국내의 역사학도들의 관심이 증폭될 것이고, 자료수집·학술활동·관광순례 등 기념사업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이 글은 지난 5월 합천군과 경남대 고운학연구소가 ‘고운 최치원 선생과 합천’을 주제로 인문관광 콘텐츠로 개발하기 위해 개최한 ‘한중고운국제학술회의’ 기조발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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