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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산 장군봉 미스터리… 일본 神의 고향 때문일까?

우두산은 일본신이 쫓겨난 곳
장군봉도 전설 해당하는 지역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군석상
그만큼 지역에서 뜨거운 관심

가조면 수월저수지는 ‘왕궁터’
일제 때, 맥 끊기 위해 축조설

'일본 왕가의 고장' 이라고 불리는 거창군 가조면의 지리. <사진: STB상생방송 캡쳐>

경남 거창군 가조면 우두산 장군봉(935미터)에 우뚝 서 있던 높이 1.8미터, 무게 1.7톤의 장군석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거창군 가조면은 일본 왕가의 본향으로 장군봉 표지석이 사라진 것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역주민들도 장군석상이 움직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풍수지리, 토속신앙, 총선출마 등 여러 가능성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일왕가(日王家) 선조들의 고향은 ‘고천원(高天原)’으로 가조면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실제 가조면은 ‘일본 왕가의 고향 가조’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특히 우두산(牛頭山)은 일본의 신 ‘스사노오’가 쫓겨난 ‘소시모리(曾尸茂梨)’ 곧 소머리 산이고, 장군봉은 백마를 탄 장군 스사노오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가조면 지명이 일본 고서기에 나오는 전설과 흡사하다. <사진: STB상생방송>

일본 고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며 고천원은 ‘하늘 신들의 세계’이다. 스사노오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인 아마테라스의 동생으로 행실이 나빠 고천원에서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났다. 그리고 곧 바다를 건너 현재 이즈모 지역에 왕국을 세운다. 일본의 신이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왔다는 것이다.

스사노오가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나기 전, 누나인 아마테라스와 살던 곳이 바로 고천원(高天原)이다. 고천원을 어디로 볼 것인가는 춘천 소양강가에 있는 우두산과 거창 가조면 우두산을 두고 일본 학계에서도 수백 년간 논란의 대상이었다.

가조면 '고만리'라는 지명은 왕궁이 있었던 넓은 땅을 의미한다. 고만리 뒤쪽에 장군봉, 우두산, 비계산이 보인다. <사진: STB상생방송 캡쳐>

하지만 가조면에는 옛 궁궐터 및 관련 지명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가조가 일본 왕가의 본향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많은 정황이 있다. 지금도 전해지는 ‘마상리’는 고천원 고지의 중심지, ‘고만리들’은 고천원의 신들이 모여 살았던 곳, ‘궁배미’는 고천원 주재신이 살았던 궁궐터다.

뿐만이 아니다. ‘바람굴’은 아마데라스가 스사노오의 횡포를 피해 은식하였던 천석굴, ‘달뫼’는 아마데라스가 천석굴에 은신함으로써 고천원 천지가 암흑천지로 변하자 장닭이 일제히 모여 울었던 곳, 당동마을 ‘당집’은 아마데라스를 구출하기 위하여 여신 아메노우즈메가 굿판을 벌린 곳 등 일본 신들의 고향 다카치호쵸(高千穂町)를 옮겨 놓은 듯한 지명이 곳곳에 있다.

선뜻 믿기 어려운 추정이지만, 실제로 일본 학계에서도 고천원을 한반도 남부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어왔다. 고대에 앞선 문명을 가진 한반도인이 바다를 건너와 문물과 기술을 전해준 과정을 신화로 표현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리고 가조면 수월저수지가 ‘궁배미’라는 왕궁터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이 터의 맥을 끊기 위해 땅을 파서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시 궁궐의 초석으로 추정되는 돌들이 저수지 축조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두산 장군봉 표지석이 사라진 것이 혹여 일본 왕가의 전설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 것은 그만큼 지역에서 뜨거운 관심사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 이 기사는 지난 19일자 '우두산 산꼭대기 1.7톤 장군석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를 읽은 한 독자가 보내 온 자료에 의해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특별취재팀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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