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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라는 향기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9.09.05 13:52
  • 호수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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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관심을 받고 자란 나무는
잎이 싱싱하고 면역력도 강하다

나무조차도 관심을 바랄진대
세상을 사는 사람은 오죽할까

이들에게 간절한 건 작은 관심
다정한 말 한마디에 희망을 본다

이진숙 소설가. <카론의 배를 타고>, <700년 전 약속>.

모처럼 집안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마른 걸레를 들고 평소 손이 잘 닿지 않았던 곳까지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느라 바빴다. 그때였다. 책장 구석에 놓여있던 화분이 내 시선을 받는 순간 마른 이파리 하나를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손톱만한 이파리가 눈물방울처럼 거실바닥에 떨어져 뒹군다.

‘저게 나에게 말을 거나 봐!’

이런 생각이 들어 하던 일을 멈추고 유심히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언제 누구에게서 받았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천리향 묘목 한 그루가 검정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있다. 꽃은 벌써 지고 이파리만 몇 잎 남아서 시들시들 말라가는 중이었다.

천리향이 처음 내게로 왔을 때는 새하얀 꽃이 소담스레 피어있었다. 작은 꽃송이에서 기분 좋은 향이 며칠 뿜어져 나오던 기억이 난다. 향은 은은하면서도 진했다. 유난히 향기 짙은 천리향을 보물인양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고 물을 주며 한동안 정성을 쏟았었다. 하지만 향은 오래가지 않았다. 꽃은 금방 시들었고 꽃이 지자 향도 곧 사라졌다. 그러자 천리향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고 말라갔다.

어릴 적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무척 소외된 아이였다. 가무잡잡한 피부는 여름이면 땡볕에 그을려서 새까맸고 키는 작고 말랐으며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동네 힘센 황소나 새끼를 쑥쑥 낳는 누구네 암퇘지보다도 존재감이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거나 외모가 뛰어나야만 선생님이 관심을 가졌다. 아니면 지독스레 미련하거나 말썽을 부리면 그나마 이름이라도 기억했다. 나는 선생님께 ‘애야’ 혹은 ‘어이’로 불려졌다. 나도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일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 모른 채 습관처럼 학교를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일기검사가 있었다. 조용히 일기장을 훑어보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큰소리로 일기 한 편을 읽어주셨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소리죽여 듣던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고 순간 내 얼굴은 불 앞에 앉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로 내 일기장이었다. 부끄러움에 부들부들 몸을 떠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이런 글재주가 있었다니 놀랍다. 앞으로 네 일기를 계속 읽고 싶구나.”

그 순간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눈길이 내 작은 몸에 와르르 와서 박혔다. 나는 그날 이후로 혼신을 다해 일기를 썼다. 그리고 매번 선생님은 내 일기를 읽어주셨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로 나는 교내 백일장은 물론 전국글짓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주변의 태도였다. 내 이름 앞에는 문학소녀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나와 친구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선생님의 작은 관심이 나를 빛나게 했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도 알려주었다.

관심을 가진다는 건 곧 끌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끌림은 좋아한다, 혹은 사랑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자란 나무는 잎이 싱싱하고 면역력도 강하다고 한다. 하찮은 나무조차도 관심을 바랄진대 사람은 오죽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 보이지 않는 끈, 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게 바로 관심 아닐까.

며칠 전, 홀로 살던 사십 대 여인이 죽은 지 4개월 만에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유서가 남겨진 걸로 봐서 자살로 추정된다는 가슴 아픈 기사였다. 주변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여자에게 단 한 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여자는 지독하게 외로워서 죽음을 선택했는지 모를 일이다. 누구하나 자기 곁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사는 일이 얼마나 쓸쓸하고 암담했을까.

이런 슬픈 소식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현실 뒤편엔 쓸모없어진 짐짝처럼 버려지거나 소외당한 채 생활하다 스스로 삶을 접어버리는 독거노인과 병마에 지쳐버린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고독도 팔자려니 하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근근이 견디는 이들도 숱하다. 이들에게 간절한 건 우리 작은 관심이다. 다정하게 건네는 말 한 마디와 따뜻한 웃음에서 이들은 희망을 본다.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다는 걸 느끼며 힘을 내어 살아야 할 이유를 붙잡을 것이다.

시들시들 말라가는 천리향을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옮겨 놓았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 잎사귀를 적시고 깨끗한 천으로 한 잎 한 잎 닦아주었다. 햇살 받은 이파리가 금방이라도 탱탱하게 부풀어 오를 것 같다. 예쁜 화분을 사다 분갈이를 해줘야겠다. 내년에 천리향이 다시 꽃을 피워 이 방 가득 진한 향으로 채워줄 거라는 기대에 웃음이 절로 머금어진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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