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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길, 연극과 관객들만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 이영철 기자
  • 승인 2019.09.28 21:28
  • 호수 27
  • 댓글 0

교사 재직 중 ‘극단 입체’ 창단
37년 한 평생을 연극에 몸담아

한국연극 축제사의 커다란 수확
‘거창국제연극제 30년사’ 발간

거창을 세계 속 ‘아비뇽’ 만들어
연극의 산업화에 기여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비록 힘들다 해도
연극에 대한 의지는 놓지 않겠다”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30여년의 흔적은 뭉클했다. 한 인간의 일궈낸 집념과 의지는 말이 없지만 비장했다. 평생 살아온 길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거창국제연극제 30년사’ 출판식에는 감동이 맴돌았다.

지난 8월9일 거창전국대학연극제 폐막식과 함께 열린 출판기념식에는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과 정일성 극단미학 대표, 김삼일 연출가 등 다수의 연극인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축하를 건네고, 함께 웃으며, 기념식을 빛내주었다.

비록 관에는 외면을 받았지만 서울·부산·울산·광주 등지에서 자진해 참가한 연극인들과 관객들의 위로를 받았다. 아마 그가 수없이 받은 상 가운데 오늘 이 순간이 가장 크고 기쁜 상이 아닐까 한다.

특히 구연서원이 빚어내는 그 아름다움은 어디서 이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게 했다. 소박하지만 은근히 흐르는 음률 속에서 그가 걸어온 인생을 만날 수 있었다.

이종일(66)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그는 거창대성중학교 영어 선생을 시작으로 사회에 첫 발길을 내딛었지만, 37년 한 평생을 연극이라는 외길만 걸어왔다. 그 보석 같은 결정체가 하나하나 모여 이뤄진 순간들은 그동안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자는 의지의 다름 아닌 모습이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연극축제사’ 발간

‘거창국제연극제 30년사’ 출판식.

이종일 집행위원장은 한국 최초의 연극축제사인 ‘거창국제연극제 30년사’를 발간해 문화예술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총 11막으로 구성되었으며 174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공동편저에는 이 집행위원장과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와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의 연극 사랑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거창국제연극제 30년사’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지역축제의 세계화·관광자원화·문화산업화’의 3대 지표를 향해 걸어 온 30년 동안의 탄생기, 성장기, 성숙기의 시대별 항목별 자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거창국제연극제 30년의 역사와 전통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축제사이다.

거창국제연극제는 30년 동안 거창에 지역연극축제의 세계화로 연극도시 거창의 브랜드를 창출했고, 거창인구의 3배인 20만 관객유입으로 300억원의 지역문화의 경제유발효과를 거두는 관광자원화로 문화산업적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이 책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30년 동안 2만여 명의 국내외 연극인과 200만명의 관객이 다녀간 거창국제연극제의 현장에서 직접 경영한 발전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한 결과물로 한국연극 축제사에 큰 수확으로 평가된다.

그는 “‘거창국제연극제 30년사’는 연극축제의 원형적 지침서로 연극도시 거창의 위상을 세계화하고 거창국제연극제를 튼튼히 하는 토양과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소도시에 만들어진 연극 단체 ‘극단 입체’

연극인들과 함께.

연극 불모지인 거창을 세계적 연극 메카로 만든 주인공 이종일 집행위원장. 부산 출신인 그는 동래고교와 경남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 지난 80년 거창대성중학교 영어교사로 오면서 거창사람이 됐다. 연극에 대한 집념 때문에 그는 1996년 16년 동안 해왔던 영어교사직도 그만 뒀다.

그가 연극을 맺게 된 것은 고교시절 교회에서였다. 교인들의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해 연극으로 꾸며 배우 노릇을 한 것이 평생 연극인으로 살게 된 계기가 됐다.

연극이 좋은 그는 대학생활 중에도 ‘극예술 연구회’라는 연극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교사 재직 중인 1983년 19명의 단원으로 ‘극단 입체’를 창단했다. 지난해까지 30회째를 치른 거창국제연극제는 89년 10월 도내 5개 극단이 모여 ‘10월 연극제’를 연 것이 모태가 됐다.

10월 연극제는 4회 대회 때부터 ‘전국 거창 소극장 연극제’로 규모를 확대했고, 93년 2개 외국 극단, 96년 4개 외국 극단들이 참가하면서 국제연극제로 확대됐다.

거창국제연극제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 집행위원장의 96년 7월 배낭여행 차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을 본 후였다. 인구 8만의 세계적 연극도시 아비뇽에서 옛 교황청 궁전마당과 공원, 광장, 채석장 등을 배경으로 야외극장 100여 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500여개의 극단들이 공연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은 것이다.

이 집행위원장은 “아비뇽페스티벌을 보고 연극의 대중화 비결은 바로 야외공연이라는 직감을 받았다”며 “거창의 최대 명승지인 위천 수승대에 야외무대를 설치하고 피서객이 몰리는 여름철에 연극제를 개최하면 관객 동원에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승대를 야외연극제의 중심무대로 하기 전에 아예 이곳으로 와서 텐트를 치고 살았다. 이곳저곳을 줄자로 재기도 하면서 무대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그럼에도 자연무대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수승대 안 구연서원에 야외무대를 설치하려 하다 “엄숙해야 할 옛 서원에서 상스럽게 무슨 연극이냐”는 비난을 동네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작업과 노력 끝에 1998년 10회 대회 때부터 수승대 경내에 야외무대 2곳을 마련해 해마다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거창국제연극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금은 신씨 문중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실내에서 야외무대로 나온 연극제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유명피서지의 자연무대로 배우들이 관객들을 찾아 나섬에 따라 대중화에 크게 성공했다. 명실공히 거창이 ‘연극도시’가 된 것이다. 연극도시 거창은 바로 연극에 모든 삶을 바친 이종일 집행위원장이 일궈낸 신화인 것이다.

더 멋지고, 화려한 연극무대 준비

독일 ‘스타피큐렌’ 공연팀.

국내 최고의 야외연극축제로 명성을 날리던 거창국제연극제가 몰락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연극도시’라고 불리던 거창군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다.

거창국제연극제의 파행은 2014년 문화관광부 축제평가단에 의해 ‘F등급’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신·구 집행부의 극심한 갈등으로 15~20만명을 넘나들던 연극제 관객이 2015년 반 토막 나면서 퇴보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결국 올해는 ‘상표권’ 논란으로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지 않은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올해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지 않는 자리를 대신해 거창전국대학연극제가 열렸다. 당초 거창전국대학연극제는 위천면 모동에 위치한 거창연극학교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위천면 주민들과 상인들의 강력한 요구로 수승대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전혀 홍보도 없이 이루어진 대학극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공연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거창국제연극제가 무산되면서 관광객 유입정책이 줄어들고, 즐길 곳이 없다보니 관광객들로부터 점점 외면 받았다.

그의 꿈은 단 하나 “거창을 세계 속의 ‘아비뇽페스티벌’처럼 만들어 연극도시로 우뚝 서게 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한다. 연극을 향한 그의 시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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