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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이영철 기자
  • 승인 2019.10.29 15:40
  • 호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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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은
오색물감을 흩뿌린 듯 단풍이
산길을 예쁘게 수놓고 있습니다

좁은 산길을 아슬아슬 돌아오면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들려오는 물소리는
가을이 빚어 낸 향기에 취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함양 상림공원. <사진: 함양군>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 윤동주 <별헤는 밤> 중에서

거창 월성계곡 분설담. <사진: 거창군>

가을입니다. 눈이 부시듯 파란 가을 속으로 걸어갑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울창했던 나뭇잎들은 저마다 빨간색, 노란색으로 갈아입기 바쁩니다. 강가에 일렁이며 비치는 햇살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흘러갑니다.

오늘따라, 왠지 윤동주 시인이 떠오릅니다. 단풍잎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러합니다. 가을철의 별은 다른 계절보다 유독 별이 별로 적습니다. 1등성은 남쪽물고기자리의 포말하우트(Fomalhaut) 뿐이고, 이마저 지평선 근처에서 지고 있습니다. 몇몇 행성을 제외하고는 공허한 밤하늘입니다. 그럼에도 윤동주 시인은 가을의 별을 노래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이를 두고 “윤동주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청순하고 개결한 젊음과 함께,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하늘과 바람과 별을 지향하는 밝음과 맑음, 빛의 이미지에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어둠을 인식하고 노래하고 있었으면서도, 밝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의 그의 시입니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 별 하나에 어릴 적 같이 노닐던 친구들의 이름, 별 하나에 동경한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 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의 깨끗하고 치열했던 삶 때문일 겁니다. 윤동주 시인은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45년 2월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을 받아 목숨을 잃으니 그 나이 29세였습니다.

별을 노래한 이 시는 분명히 어둠이 그 배경입니다. 그럼에도 시가 어둡지 않은 것은 밝음을 지향하는 푸른 젊음 탓일 겁니다. 윤동주 시에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푸른 가을 하늘빛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풍이 산골짜기까지 내려온 지금 한 권의 시집을 펼쳐들고 걸어보는 것도, 차를 타고 드라이브에 나서는 것도 아름다운 광경에 취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좁은 산길을 아슬아슬 돌아오면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들려오는 물소리는 가을이 빚어 낸 향기에 취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은 오색물감을 흩뿌린 듯 단풍이 산길을 예쁘게 수놓고 있습니다. 산 전체에 내려앉은 단풍이 살그머니 고개를 내밉니다. 이달 말부터 다음 주까지 단풍이 절정입니다. 늦기 전에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들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눈을 들어보세요.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홍류동 계곡 ‘해인사 소리길’

해인사 소리길. <사진: 합천군>

합천 해인사 소리길은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입구까지 이르는 4km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홍류동 계곡 소리길에는 주요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 19명소가 있으며 특히 농산정 맞은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 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지리산 품속 ‘대원사 계곡길’

대원사 계곡길. <사진: 산청군>

산청 대원사 계곡길은 단풍색이 형형색색으로 펼쳐져 구간 구간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생태탐방로로 만들어진 대원사 계곡길은 계곡 입구 삼장면 평촌리 유평주차장 입구에서 대원사를 거쳐 유평마을까지 왕복하면 7㎞ 정도의 코스다. 살짝 오르는 길임을 감안하면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로 걷기에 딱 좋다. 대부분의 구간은 목재테크와 자연흙길로 조성됐다.

월성계곡 ‘자동차가 좋은 길’

월성계곡 전체. <사진: 거창군>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은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수승대 입구부터 시작되는 단풍은 남덕유산 분설담과 사선대를 지나면서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분설담은 쏟아지는 물이 마치 눈이 부서지며 흩날리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까지 길은 이어지고, 안의면 화림동 계곡 거연정·동호정·농월정으로 내려오면 40㎞가량 된다.

상림공원 ‘가장 아름다운 숲’

가을 상림. <사진: 함양군>

함양 상림공원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 숲으로 꼽힌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숲 전체가 붉고 노랗게 물들고 길에는 두툼한 낙엽이 깔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 떨어진 낙엽들이 카펫처럼 길을 덮고 있는 숲에 가을 햇살이 퍼지면 다갈색 낙엽이 진홍 단풍보다 훨씬 더 가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다음 달 초까지 이러한 광경이 이어진다.

은색 물결 날린다 ‘황매산 억새’

황매산 억새. <사진: 합천군>

가을은 단풍도 아름답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흰 솜털을 날리며 물결치는 억새군락의 감동이다. 합천과 산청을 사이에 둔 황매산의 억새밭이 특별한 것은 산 정상 턱밑까지 차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책하듯 능선을 걸으며 억새꽃을 감상할 수 있다. 햇살이 길게 비추는 아침이나, 노랗게 반짝이는 해 질 녘이 더없이 보기 좋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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