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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9.11.11 15:22
  • 호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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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소설가. 단편집 <고래의 맛>, 장편집 <유니폼>.

가을 날씨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끔씩 길게 또는 짧은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왜 그렇게 자주 여행을 가는지 누군가 이유를 물어왔다. 여행의 이유? 듣고 보니 참 근사한 말이다. 그 근사한 물음에 내 대답은 시시하다. 그냥이다. 그냥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면, 매달 모은 곗돈이 목돈이 되면, 또는 축하와 업무의 관계로 친구들과 가족들과 동료들과 떠나곤 했다. 그 이유가 관광에 가까운 것인지, 여행에 가까운 것인지 인식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들뜬 마음으로 쏘다녔다.

여행의 이유를 질문 받고나서 서점에서 나는 반가운 책 제목을 발견했다. 많고도 많은 여행서중에서 김영하의 산문 ‘여행의 이유’가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과연 그는 어떤 여행의 이유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역시나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그는 여행의 이유를 들려주었다. 어떤 문장에서는 시큰둥해지다가도 그의 예상치 못한 여행의 이유에서는 역시나, 멋진 작가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여행의 이유는 각각 다르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여행은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처럼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 그리고 우리의 인생인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고백하자면 나의 첫 해외여행은 패키지 관광이었다. 중학생인 딸아이와 딸아이 친구들과 어머니들끼리 간 중국 상하이였다. 그땐 아이들이 학생이라 학습과 연결되는 것만 찾아다녔다. 그것이 목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의 즐거움이 조금씩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휙, 둘러보고 기념품 사고 사진 찍고 오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짧게라도 머물고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호텔이 아닌 개인집 방 한 칸을 얻어서 그들의 일상과 냉장고 안에는 어떤 음식들이 채워져 있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인연이 되어 준 친구가 런던에 사는 멋진 신사 ‘윌’이었다. 물가가 비싸 호텔예약은 엄두도 못 내고 에어비엔비를 통해 그의 집 방 한 칸을 얻어 일주일을 머물면서 영국의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체험했다. 번역어플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며 그의 생활에 스며들었다. 마지막 날 삼겹살 파티 때 청바지회사 디자이너인 윌의 김치사랑을 통해 여행을 끝내고 왔을 때 나는 런던으로 김치 한 통을 직접 담아 보낼 만큼 가까워졌다. 여행은 이렇게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현재를 살기 위해, 오직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 던져졌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불안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돈 들여서 떠나는 것을 보면 그곳에는 여기에 없는 그 무엇인가가 날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답답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나를 풀어두면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에서 다시 생기와 활력을 찾곤 한다. 그러면 배터리 100%로 빵빵하게 충전된 스마트폰처럼 몸은 지쳐도 정신은 빠릿빠릿해져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과감하게 할부로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가을 나는 또 가방을 꾸린다. 관광 쪽에 가깝던 나의 스타일이 여행으로 변해갈 만큼 발전했다. 한 도시에서 머물려 이른 아침 동네빵집에서 빵을 사고 그 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 또는 뒷골목의 서점과 재래시장과 벼룩시장도 기웃거릴 것이다. 밤이면 집주인과 휴대폰 번역어플을 이용해서 더듬거리며 대화도 나눠 볼 것이다.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내 감춰둔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밑바닥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깊은 우물을 잠시만이라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탐구이고 내면의 여행이다. 어설프더라도 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된다. 다른 거창한 것 없이 그냥 나를 알아 가면 된다. 이것이 나의 소확행인 여행의 이유이지 싶다. 그러면 당신의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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