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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이 빛나는 숨은 일꾼… 미용은 내 인생의 선물이정훈 대한미용사회 함양군지부장
  • 이영철 기자
  • 승인 2019.12.09 20:44
  • 호수 32
  • 댓글 0

언제나 겸손하고 친절한 모습
이웃들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

33년간 오직 외길 ‘미용’ 전념
“이발할 때 가장 즐겁고 신나”

미용학원 창업반 제자와 함께
10년째 미용봉사활동 이어와

이정훈 대한미용사회 함양군지부장이 머리를 손질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33년 동안 한길을 걸으며 미용에만 전념했고, 대학에서 미용강의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목욕을 하면 일주일이 즐겁고, 이발을 하면 한 달이 즐겁다는 말이 있다.” 말없이 묵묵히 진행하는 이발은 때로는 기도하는 마음도 생긴다. 다리가 아플 텐데도 불구하고 이발하는 내내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친절하면서도 강직하게 다가온다.

33년째 미용가위를 들고 있는 이정훈 대한미용사회 함양군지부장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5일 함양읍 동문네거리 대암서적 옆에 있는 ‘이정헤어커커’에서 그를 만났다. 여전히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두상을 살피더니 능숙한 솜씨로 어르신과 학생들의 머리를 정리하기에 바빴다.

이 지부장에게 어떻게 처음 미용을 접했냐고 물어봤다. 그는 “86년도에 서울에서 미용사로 있는 큰집 누나의 권유로 미용을 하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9급 공무원 초봉이 15만원 남짓할 때 남자미용사가 되면 80~300만원의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큰집 누나의 말에 혹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쥔 첫 월급은 3만원. 속는 느낌이 들었지만 3개월만 버텨보자는 일념으로 계속 근무했다. 그러나 3개월 후에도 월급은 초봉과 같은 3만원. 그래서 미용을 관두려고 하니 주변에서 소질이 있다고 칭찬도 하고, 또 막상 미용일을 배우니 재미도 있어 월급을 떠나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남자미용사는 아주 드물어 인기도 상당했다.

이 지부장이 첫 근무를 하게 된 곳은 종로2가에 있는 ‘신신미용실’로 서울에서도 명성이 상당한 곳이었다. 김추자 원장은 대한미용사회 중앙회 이사뿐만 아니라, 미스코리아를 담당하고 있어 아주 유명했다. 미스코리아로 나가기 위해서는 미용실 원장의 추천이 절대적인 시기였다. 텔레비전(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을 현장에서 바로 보기도 하니 신기하고, 일을 배우는 게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지부장은 2년간 군 생활을 마친 후에도 명동·이대 등 유명한 서울 미용실에서 두루 미용기술을 섭렵했다. 횟수로 따져보니 서울에서 산지 벌써 13년이나 지나 있었다. 이때 함양에서 미용원을 하고 있든 큰집 작은누나에게서 호출이 온 것이다. 큰집은 누나만 2명인데 모두 미용사였다. 이 지부장은 2남4녀 가운데 장남으로 위로는 누나가 한 분 있었다. 부모님도 모시고, 결혼도 해야 하니 작은 누나가 고향으로 불러 내린 것이다.

그가 함양으로 내려와 처음 미용실을 차린 곳은 함양성심병원 뒤쪽에서 ‘이정헤어모드’로 시작했다. 3년 정도 지나 1·2층을 모두 미용실로 바꿨다. 직원만 13명으로 함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미용실이었다. 바쁠 때는 하루에 컷트 손님만 50명 이상 손질할 때도 부지기수였다. 돈도 많이 벌고, 가장 바쁘게 지낼 때였다.

이 지부장이 머리를 다듬는 데는 15분 정도 걸린다. 머리를 감고 정리하면 25분 가량 남짓하니 한 명당 가위질을 1000번 정도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여태 손가락이 아픈 적은 없다. 오래 서 있다 보니 가끔 다리가 아픈 적도 있지만, 여전히 거뜬하다.

이정훈 지부장이 마을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

그에게 이발을 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대개 특징이 있다. 사전에 이발을 하기 위해 예약을 하는 것. 함양뿐만 아니라 진주, 남원, 거창에서도 손님들이 끓는다. 그의 오랜 경륜을 손님들이 익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손님은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이 지부장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다.

이 지부장은 38세에 결혼을 했다. 그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는 직원의 성실하고 예쁜 모습에 반해 1년 만에 청혼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아내와의 사이에는 연우(중3), 건우(초2), 빈우(여·중1) 2남1녀를 둔 화목한 가정이다. 부모님은 지금도 지곡면 공배마을에 거주하시기에 수시로 찾아뵙곤 한다.

그는 배움에 욕심이 많다. 1996년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0년 거창대 피부미용학과에 4기로 입학했고, 2009년 진주국제대학교 미용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학원에 강의를 나가는 등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그래도 부족해 올해 창신대학교 미용예술대학원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꿈은 대학에서 미용에 대해 강의를 하는 것. 그래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가장 재미있는 과목은 오윤경 교수의 ‘미용연구 방법이론’인데 15명의 소수정예다 보니 진정과 열정이 수업시간마다 넘쳐나고 있다.

이 지부장은 두상을 보면 어느 정도 성격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체적으로 짧은 머리는 밝고 활달하면서 깔끔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고, 긴 머리는 온순하고 부드러우면서 상냥해 재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또 “얼굴 넓이가 세로 길이에 비해 길수록 성취욕과 승부욕이 강하고, 균형이 잘 잡힌 직사각형 얼굴형에 측면은 살집이 골고루 잘 붙은 동그란 두상은 사업가형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함양읍 동문네거리에서 ‘이정헤어커커’를 운영하고 있는 이정훈 지부장이 찾아가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이 지부장은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2010년 1월 ‘진주촉석미용학원’ 창업반에 강의를 나가면서 알게 된 제자들과 함께 ‘시크릿 봉사단’이라는 미용자원봉사 단체를 만들어 매월 수요일 셋째 주마다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멤버는 15명으로 현재도 10명 정도는 함양정신요양원, 안의 소망의집, 마천 은혜의집 등에 꾸준히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다.

그는 “봉사활동은 크게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가진 사람들이 꾸준히 활동을 하는 것 같다”고 그동안 소회를 이야기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며 “시크릿 봉사단에 가입하고자 하는 경우 언제든지 ‘이정헤어커커’로 오시면 된다”고 전했다.

이 지부장의 고향은 지곡면 공배마을로 지금도 95가구에 180여명이 살고 있는 큰 동네다. 그러다보니 7·8세에 입학한 친구들만 해도 34명에 이르고 있다. 친구들과는 지금도 1년에 분기별로 4번씩은 모이는데 함양에 살고 있는 친구 4명을 포함해 10명은 꾸준히 모임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도 설날이면 한복을 입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세배 돈이 든 봉투를 들고 세배를 하러 다니는데 자부심이 상당했다. 벌써 20년이 넘게 세배를 하고 있으니 상당한 정성이고 자랑할 만한 일인 셈이다. 이 지부장은 “그런데 한복이 개량한복이다 보니 세배를 드리기 위해 나란히 길을 따라나서면 ‘스님 옷’ 같아 바로 눈에 띄어 표가 난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이 지부장의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묵묵하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의 오랜 친구인 이양우 전 지곡농협조합장은 “이 지부장은 언제나 겸손하고, 성실해 친구들에게 큰 자랑”이라며 “숨은 보석 같은 일꾼이 있어 함양이, 이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고 우정을 드러냈다.

한길만 걸어온 이 지부장의 강직한 품성이 미용협회와 함양군의 큰 선물이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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