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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만난 음식, 맛으로 살아나는 ‘진주냉면’이종상 진주교방음식문화연구소 대표

100년 전 숙수들이 만들어 오던
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발전시켜

4가지 곡류를 사용해 면을 뽑고
해물육수와 자소엽 식초를 개발

진주기생의 기개를 선보인 산홍
역사성과 인물을 냉면에 담아내

비수기인 겨울도 직원들과 함께
맛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더 귀해

이종상 진주교방음식문화연구소 대표. 그는 100년 역사를 지닌 진주냉면의 원형을 재현하고 새롭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인생을 걸었다. <사진: 진주교방음식문화연구소>

북한 평양과 함흥이 원조인 냉면에 남쪽 진주에서 도전장을 냈다. 진주시 금산면에 위치한 ‘산홍’은 진주냉면의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진주냉면을 향한 요리사의 집념에 역사적 가치가 더해지며 한겨울에도 냉면을 찾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지고 있다.

산홍이란 이름은 마치 김춘수 시 ‘꽃’을 연상케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그저 음식으로만 생각할 때는 단순한 먹거리에 불과했으나 역사와 만나는 순간 맛에 의미가 부여됐다. 맛은 만개한 꽃처럼 피어나 손님들의 입을 사로잡았다. 먹는 즐거움에 역사적인 의의까지 음식에 더해지며 금상첨화를 이룬 것이다.

산홍의 시 '의기사감음'

산홍(山紅). 1900년대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진주 기녀였다. 을사오적이었던 이지용이 경상관찰사를 지내며 산홍에 반해 천금을 내어 놓으며 첩이 되라고 하자 산홍은 “비록 하찮은 기생이나 사람 구실을 하며 사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자결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진주 기생의 기개를 선보인 산홍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진주냉면의 뿌리를 찾던 이종상 진주교방음식문화연구소 대표는 무릎을 쳤다. 산홍은 그 순간부터 화두가 됐다. 진주의 역사성과 산홍이라는 인물이 진주냉면에 섞이는 순간이었다.

진주냉면은 교방음식이었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 하여 술을 마신 후 먹는 음식으로 애용됐다. 다른 냉면들처럼 식사대용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구전으로만 전해졌지 아직까지 완벽한 조리법이 정립돼 있지 않다. 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산홍’은 구한말의 인물이었지만 진주냉면의 정신을 되새기는 그에게 하나의 이념이 됐다.

이종상 대표. 산홍이라는 이름으로 평양과 함흥이 장악한 냉면 무림(武林)에 진주냉면의 기치를 내걸고, 일대종사(一代宗師)를 꿈꾸고 있는 중이다. 진주냉면이란 문파에서 최고의 고수가 되길 바라는 꿈은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정진 중이다.

장법으로 우려낸 깊은 육수 맛이 일품인 진주냉면.
절개 높은 기생, 산홍의 이름을 딴 비빔냉면 산홍.

진주 토박이인 그는 진주냉면의 원형 보전에 관심이 높아 10년 가까이 면을 뽑으며 냉면을 연구했다. 전국의 냉면집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힌 것도 수련의 과정이었다. 밑바닥에서 기초를 다졌기에 음식만큼이나 사람의 가치도 중요시한다.

“전국의 냉면집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힐 때, 정말 거짓말 같이 8월15일이 되면 매출의 상승곡선이 꺾였습니다. 그 순간 짐을 싸서 나와 고기집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지요. 가끔 어떤 업주는 함께 가자고 붙잡기도 했지만 눈에 띄게 줄어드는 매출, 심지어 10분의 1도 안 되는 매출에 스스로 눈치가 보여 그만두고 나오는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그 업주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계속 일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 한편으로는 적자 매출의 현실에서 스스로 떠나주는 내게 고마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게 싫었다. 그래서 산홍을 열면서는 인원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데리고 가면서 겨울에도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중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의 노력 덕분에 ‘산홍’은 점심시간에 어느 정도의 대기는 각오해야 한다. 맛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귀히 여기는 자세가 산홍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냉면에 대한 그의 마음가짐은 “몹시 추운 겨울, 3일 동안 한 그릇도 팔리지 않아도 혹시나 찾아올 한 분의 손님을 위해 펄펄 끓은 냉면 가마솥의 물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다짐에서도 드러난다.

이종상 대표는 10대부터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산청과 함양을 쉴 새 없이 오간 서부경남 사람이다. 개혁을 위한 정치적 활동에 힘을 쏟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모든 열정을 냉면에 쏟아 부으며 나눔과 베품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젊었을 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위대한 정치인이 될 줄 알았다”면서 “늦었지만 이제 동네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겸손한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그가 새롭게 설정한 목표다.

행복을 주는 요리사라는 소박한 소망은 이미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일찍부터 아르바이트에게 최저 시급 1만원을 지급하며 생활임금을 보장하려 했다. 냉면의 비수기인 겨울에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끝까지 안고 가려는 각오 역시, 장사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먼저고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냉면의 대명사가 된 가운데 진주냉면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산홍은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종상 대표의 진주냉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는 진주냉면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진주는 영남 일대의 풍부한 물자가 모이는 곳으로서 남해안의 해물과 육류, 지리산의 임산물을 넣어 풍부한 맛을 냈고 면도 4가지 곡류인 메밀, 볶은 보리, 고구마 전분, 앉은뱅이 밀을 넣어 구수한 곡물향의 면을 뽑아냈습니다. 전국적인 도시로 명성이 높았던 부강한 진주의 식문화를 대변한 게 진주냉면입니다.”

산홍은 진주냉면의 특성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4가지 곡류를 사용해 면을 뽑고 있고, 육수는 해물로 냈다. 그래서 산홍의 냉면은 익숙한 평양과 함흥의 냉면과는 다르다. 면에 넣는 식초도 해물육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자소엽 식초를 개발했다.

자소엽은 방부 및 살균 효능이 탁월해 유해한 세균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으며 복부에 가스가 차거나 경련이 생기는 것을 멎게 해준다. 특히 해산물의 독을 중화시켜주고 생선이나 해산물 섭취 시 식중독 예방과 소화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산홍’은 비빔냉면을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뜻 그대로 화사하고 붉게 물든 산처럼 진한 색감이 가득한 비빔냉면은 산홍을 상징한다. 고명 하나를 얹는데도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도 의로운 기생 산홍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음식의 양도 적지 않아 여러 음식을 맛보려는 손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종상 대표는 ”이익을 남기려면 양을 적게 하면 되지만 맛을 위해 찾은 손님들에게 부족함보다는 넉넉함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주성이 그려진 식탁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음식을 할인해준다는 펼침막.

냉면에 모든 열정을 마치고 이종상 대표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새롭게 개발한 음식들이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그에게 다른 음식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해도 냉면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 우려가 커서 지금의 공간은 냉면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새로 개발한 음식들은 새롭게 넓혀가는 공간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홍에 들어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념해 2020년 4월30일까지 음식을 할인해 준다는 펼침막이다. 친일파들에게 기개를 보여줬던 역사 속 기생 산홍의 정신을 항일운동의 중심이었던 임시정부 수립 기념에 담은 것이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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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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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식당 2019-12-24 16:37:13

    오, 진주에도 하연옥 말고 맛있는 냉면집이 있었네요.
    문산 한번 가봐야겠어요. 기대해도 되죠.   삭제

    • 지리산 2019-12-24 11:47:02

      지리산에서 나가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맛!
      강렬한 산홍(비빔냉면)도 좋지만
      자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물냉면, 강추!!!   삭제

      • 진주방 2019-12-22 16:04:01

        여기 참 찬절하던데, 냉면 맛도 좋아요.
        불고기전골도 아주 괜찮지요.
        신문에서 보니 반갑네요.   삭제

        • 김주원 2019-12-22 10:03:59

          이집이 레알 숨은맛집이지..   삭제

          • 맛집투어 2019-12-21 23:05:12

            여기 정말 맛집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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