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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진숙 소설가. <카론의 배를 타고>, <700년 전 약속>.

나는 초등학교를 외딴 섬에서 다녔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운 좋게 급식시범학교로 지정되어 점심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먹는 게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에 점심 한 끼 그럴듯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급식으로 라면을 끓여주기도 했고 직접 빵을 구워 우유와 과일을 얹어주기도 했다. 매 끼니마다 삶은 달걀 한 개씩 꼭 주었는데, 삶은 달걀은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주머니에 삶은 달걀 한 개를 넣어 만지작거리며 집에 들어서는 길이었다. 마침 염전에 나가시려던 아버지와 맞닥뜨렸다. 일하시다가 마실 소주를 챙겨들고는 부엌에서 안주감을 찾고 계셨다. 마땅한 안주감이 없는지 툴툴거리시며 김치 몇 조각 담아들고 나서는 아버지께 내 주머니에 있던 달걀을 건네 드렸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가 달걀을 참 맛있게 먹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칭찬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삶은 달걀을 꼭 챙겨 와서 아버지 간식보자기에 넣어드렸다. 어떤 때는 사과를 급식으로 받았는데 그걸 달걀과 바꿔서 두 개를 넣어드린 적도 있었다.

내가 목포에서 여고를 다닐 때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자취하는 목포에 연락도 없이 올라오셨다. 겨울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데 자취방 골목에 아버지가 서성거리고 계셨다. 연탄아궁이 위에 얹힌 밥솥에는 닭 한 마리가 삶아지고 있었다. 시골에서 키운 닭은 잡아오신 것이었다. 그날 밤 백숙을 포식하고 다음날은 아버지가 직접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나섰다. 점심시간 도시락 반찬 칸에 쭉쭉 찢은 닭고기가 들어 있어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어린 게 달걀이 먹고 싶었을 텐데…’ 하시며 목이 메셨다. 마침내 아버진 초등학교 시절 내가 가져다 드린 삶은 달걀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술안주로 얻어먹었던 그때 달걀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으셨던 것이다. 내가 좋아 부득부득 갖다드린 건데, 그 팍팍한 삶은 달걀이 채 내려가지 못하고 아버지 가슴께 여태 걸려있었던 모양이다.

오직 큰아들밖에 모르는 아버지라고 원망도 많았다. 가난과 장애로 고단했을 당신 삶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봤지만 그래도 서운함은 쉬이 걷히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아버지 전화를 받고나선 삶은 달걀 하나를 통째 넘긴 것처럼 가슴이 턱턱 메어왔다.

맏딸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을 양으로 가장 살찐 닭 한 마리 잡아와서 삶아주신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뭉클해진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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