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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와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성공을 정의할 것

이원우 대중문화평론가, 미래한국 전 편집장.

몇 해 전 한강 주변 어디쯤을 산책하다 있었던 일이다. 느린 속도로 횡단보도 앞에서 뱅글거리며 신호를 기다리는 자전거 한 대가 있어 무심코 눈길을 줬더니, 운전자가 아는 얼굴이었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봉준호였던 것이다.

나는 그의 2003년작 ‘살인의 추억’만 7번 정도 본 팬이다. 시기상 그때는 ‘기생충’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스타 영화감독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화면에서 본 것처럼 푸근한 곰돌이 아저씨 같은 인상 그대로였다.

그 곰돌이 아저씨가 지금 세계 영화판에서 벌이고 있는 일을 설명하려면 형용사 한두 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봉 감독은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기어이 미국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후보에까지 지명됐다. ‘기생충’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바뀌었음은 물론 우리나라 영화계의 물줄기마저 바뀔 기세다.

그런데 기적의 중심에 있는 봉준호는 내가 몇 해 전 길 위에서 봤던 그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야 들떠 있겠지만 특유의 무심한 듯 유머러스한 스타일은 여전하다. 결코 오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겸손하지도 않다. 그리고 바로 그런 태도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미국 아카데미상에 대해 “지역(local) 행사 아니냐”고 반문한 사건은 은연중에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국 영화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사건으로 봉준호는 미국에서 ‘유쾌한 독설가’의 이미지를 얻었다. 우리가 할리우드 스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봉준호에게 먼저 다가가 사인과 악수를 청하고 있다.

비슷한 예를 방탄소년단(BTS)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는 2014년 아직 신인이었던 그들의 공연을 직접 보고 머지않아 성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생각한 성공은 국내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고 일본에서 돔 투어를 하는 정도였다. 그때까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성공의 지평이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BTS는 지금 미국 빌보드차트의 최정상에서 현시점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가수들의 선망을 받으며 공연을 하고 있다. 그들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상장 준비에 돌입했는데, 기업공개 이후 시가총액은 최고 4조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빅3’라고 불렀던 연예 기획사들의 시총 전체를 합한 금액보다 많다.

봉준호와 BTS는 한국인이 할 수 있는 국제적 성공의 기준을 다시 쓰고 있다. 아울러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제진출을 하려면 반드시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봉준호와 BTS는 둘 다 한국어로 된 영화, 한국어로 부른 노래로 성공했다. 봉준호의 영어는 우리가 흔히 ‘콩글리시’라 놀릴 수 있는 수준이고, BTS에는 여전히 영어에 약한 멤버들이 있지만 그들은 당당하다. 그들의 당당함은 영어도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들의 통역사가 함께 유명해짐으로써 영향력을 재입증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누군가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이 지옥(hell)에서도 기적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영국인 외신기자 마이클 브린은 그의 저서 ‘한국, 한국인’에서 한국인들이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자책한다”고 썼다. 바로 그런 문제의식이 스스로의 기준을 높여 지금의 기적을 가능케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성공을 정의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옥에서 일어난 것치고는 매우 짜릿한 변화 아닌가.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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