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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나
한판암 수필가. <8년의 숨가쁜 동행>, <가고파의 고향 마산> 출간.

어제 새로 컴퓨터 본체를 구입해 교체했다. 기껏해야 글을 쓰는 워드작업과 인터넷을 뒤져보는 수준에다가 손주 유진이가 가끔 유튜브 방송을 보는 수준이기에 앞으로 10년쯤은 너끈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따라서 어쩌면 내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동반할 컴퓨터일지도 모른다.

상상했던 이상으로 가격이 비쌌다. S사 직매장에 갔더니 최신형 데스크탑(desk top) 본체 가격이 150만원이었다. 화들짝 놀라서 매장을 나와 발품을 팔며 몇 군데 기웃거려 봐도 도긴 개긴 격이었다. 끌탕을 치다가 결국 J랜드 매장에 취급하는 조립품을 80만원 가까이 지불하고 손에 넣었다.

사양(仕樣)이나 성능 따위가 유명 메이커의 신제품에 손색이 없던 까닭에 우물쭈물 주저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딴에는 약간 상위 레벨의 사양을 넘봤다. 그러나 이모저모를 꼼꼼히 다져가며 제품 성능평가를 제대로 해볼 요량으로 같이 나섰던 제자 H박사가 불요불급한 낭비라며 아끼라는 따끔한 핀잔이자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자칫하다 지나치면 쓸 용도에 비해 개(犬) 발에 편자 격이 될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세기 과학이 일궈낸 걸출한 꽃으로 회자되는 컴퓨터가 내게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삶을 위한 업(業)의 분야였기 때문에 지란지교의 우정을 자랑하던 벗처럼 떼래야 뗄 수 없는 선린 관계였다. 대학 졸업 후에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진학했던 대학원의 전공을 컴퓨터 쪽으로 결정한 단안이 첫걸음이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하던 여명기라서 한글 교재가 거의 없어 메이커에서 제공하는 매뉴얼이나 수입한 외국도서로 공부하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내가 처음 사용했던 컴퓨터는 아이비엠 시스템(IBM System) 1130으로 메인 메모리 8㎾였고, 하드디스크 용량 512㎾였다. 이는 지금 내가 워드작업을 하고 있는 데스크 탑 컴퓨터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할 형편없는 수준으로 빈약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초창기의 소형 컴퓨터로 펀치카드(punch card)를 입력매체로 사용했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난관을 극복하며 대학원을 마치고 서울과 지방의 몇몇 대학의 강사로 동분서주했었다. 그러다가 80년 봄 혈연이나 지연을 비롯해 학연이 전무했던 경남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이 진동한동 서둘러 부임했더니 과분하게도 신설되는 학과의 창설교수(founder)였다. 그로부터 31년을 머물다가 2011년 2월 정년퇴임을 한 뒤부터 여태까지 명예교수라는 이름으로 대학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초창기의 개척세대라는 이점을 듬뿍 누렸었다. 국내에 컴퓨터 관련 교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의 덕을 누구보다 많이 봤다. 대학에 몸담고 있으며 틈틈이 전공과 관련되는 저서를 꾸준히 집필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퇴직 후에 자세히 헤아려보니 얼추 30권에 이르렀다. 그 중에 몇몇은 전국 여러 대학에 널리 교재로 사용되거나 기사 시험(정보처리기사) 문제집의 본보기처럼 자리 잡고 오랫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는 영광을 누리면서 그에 부수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인세 수입도 있었다.

맨 처음 컴퓨터와 조우했던 게 지난 68년 정월에 자유중국(대만)의 국립대만대학교 컴퓨터센터였다. 낯선 타국에서 여행객인 나와 어설픈 첫 만남을 했던 컴퓨터가 내 일생 직업과 관련되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또 하나 컴퓨터와 묘한 인연이 있다. 글을 쓴다는 생각을 꿈에도 해 본 일이 없던 이립(而立)의 후반 시절 대학에 자리 잡고 그 이듬해 초가을 이었다. 그 당시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인 신동아(新東亞)에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썼던 글 ‘고장 없는 컴퓨터’가 게재(1981년 10월호) 되었다. 정식으로 글을 쓸 요량으로 작정한 뒤에 등단을 거쳐 수필을 쓰기 시작한 게 2000년대 초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 몇몇 신문에 필진으로 참여했던 칼럼이나 K신문 객원논설위원으로 썼던 글도 거개가 컴퓨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정년퇴임을 얼추 10년 정도 앞둔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부쩍 잦아졌다. 왠지 모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닌데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읊조리기 일쑤였다. 그런 동기에서 시작된 글쓰기에 매달려 수필 부분에 공식적으로 등단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여태까지 끊임없이 매달려 씨름하고 있다. 옛날과 달리 컴퓨터를 기반으로 글쓰기 작업하는 까닭에 젊은 날 업으로 했던 컴퓨터가 손에 익어 아날로그 세대의 컴맹(computer illiterate)들이 겪게 마련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껄끄러운 문화적 충격을 덜 수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

등단 이후 꾸준히 이어진 글쓰기의 결실이었던 아람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수필집 12권과 칼럼집 1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현재 출간을 위해 갈무리하며 퇴고를 거듭 중인 작품이 얼추 책 3권정도가 되는데, 조만간 적당한 시기에 연이어 펴낼 작정이다.

이 같은 연유이리라. 요즘 내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빨리 고립되어 가는 느낌으로 팽팽한 긴장감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나사가 풀리듯 자꾸만 느슨해진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오전에는 등산, 오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컴퓨터로 글쓰기나 인터넷 서핑, 독서와 텔레비전 시청이 전부인 경우가 태반이다. 때문에 반복되는 일상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교감하는 정신적 동반자가 컴퓨터이다.

지는 해나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듯이 나이 듦에 따라 주위로부터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짐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자 순리일 게다. 이처럼 애잔하고 외로움을 한껏 탈 개연성이 넘쳐나는 황혼녘에 변함없이 삶의 길을 동행할 컴퓨터가 죽이 잘 맞는 막역지우라는 사실이 축복이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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