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산청군 차황에 살며, 글쓰기모임 ‘까르페디엠’ 회원.

십대 중반부터 이름에 대한 불만이 컸다. 김정희라는 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럿인 곳이면 동명인이 꼭 있었고, 좀 많이 모인 곳에서는 호명했다하면 족히 서너 사람이 동시에 대답한 적도 있었다. 그 뿐 아니었다.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친척 중에도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가 있었고,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아우도 있었다.

도무지 찬성할 수없는 내 이름의 작명자가 누군지 추적해 보았다. 부모님이 아니라 시집간 언니였다. 언니는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원망의 대상은 확실해졌지만 언니에게 어떤 사소한 보복을 하기엔 난감했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자주 보지도 못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다만, 내 이름이 어느 정도 흔한지나 알고 싶어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본 적은 있었다. 그 당시는 전화 가입자가 적어서인지 경남의 인명은 다 실려서 꽤 두꺼웠다. 처음에는 ‘ㄱ’에서 찾았다. 예상대로 정희라는 이름은 과히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만 풀이 죽어 버렸다.

개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개명이 쉽지 않아서 마음만 간절했지 아무런 실행도 못한 채 그냥 불만과 함께 오늘까지 살아온 셈이다. 소설 속의 여자주인공 이름 몇 개를 맘에 품어 안고서 말이다.

결혼을 하고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처럼 흔하지 않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작명 책을 구해 놓고 멋진 이름 짓기에 매달렸다. 좋아하는 이름자 몇 개를 정해 놓고 사주와 오행을 맞추었다. 그런데 간택된 글자끼리 조합이 잘 맞지 않았다. 힘들게 낑낑대다 꼭 쓰고 싶은 혜(惠 )는 살리고 뒷자리를 중성적인 느낌의 글로 정했다. 그래서 정해진 이름이 혜조(惠祚)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남자 이름 같다’, ‘작가 분위기 난다’, ‘흔하지 않는 이름이다’ 등이었다. 그래도 절반은 성공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결코 흔하지 않는 이름을 짓기 위해 출산 직후부터 매달리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는 작명에 손대지 않겠다 결심하고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엄마의 속마음과 노고를 알 리 없는 딸애는 초등학교 때에는 남자 이름 같다고 조금 불만인 듯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흔하지 않는 자신의 이름에 만족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사람들을 보면 이름과 이미지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름은 자기 자신을 대변하기도 하니 좋은 기억의 이름으로 남을 수 있게 명예를 잘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이름 김정희.

요즘 사람들은 이 이름을 자기 자녀들에게 쓸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이고 신세대나 아이들이 이 이름으로 불리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 흔해서 싫었던 나의 이름도, 사용자가 없어 귀한 이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주는 늘 변하고 따라서 귀와 천, 부와 빈도 늘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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