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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자 구덩이
강태갑 산청우체국 근무.

어릴 때 우리 집은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밭으로 데려갔다.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가져 온 고구마는 잘게 썰어서 빼때기를 만들고 이를 말려서 판매를 하였다. 그리고 일부는 내년 고구마 농사를 위하여 종자로 남겨 두었다. 이 종자는 구덩이를 파고 겨울을 지나고 파종하는 내년 봄까지 잘 보관해야 했다.

아버지는 구덩이를 팔 장소를 물색하며 말씀하셨다. “종자 구덩이는 보관하는 장소가 중요하다. 고구마가 원래 자란 환경과 비슷해야 하지.” 나는 그런 일에 별 흥미가 없었지만 장남으로서 모른 척 할 수 가 없어 건성으로 어떤 곳인지 물었다. “우선 햇빛이 잘 드는 양지이고, 통풍이 잘 되어야 하겠지?” 이런 가르침을 귓가로 흘리면서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속으로는 역시 ‘내가 농사지을 것도 아닌데 이걸 알아서 뭘 해’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어림짐작으로 팔 구덩이의 넓이를 정하고 곡괭이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도 돕기는 했지만 사실 땅을 파는 힘든 일은 주로 아버지가 하고 나는 파놓은 흙을 삼태기로 나르거나 괭이로 주변을 다듬는 정도였다.

그런데 탈이 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항상 내가 먼저였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것이다.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라 손바닥이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물집이 잡힌 손으로 몇 번의 괭이질을 더하면 그만 껍질이 벗겨지고 말았다. 자루에 닿을 때마다 손바닥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젊은 것이 이래 약해서야 원….” 말씀은 그렇게 해도 아버지는 헝겊으로 물집이 잡힌 부위를 꼭 감싸 쥐시곤 쉬고 있으라고 했다. 투박한 손에서 전해지는 따듯함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평소 무뚝뚝했던 아버지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시 삽질을 하던 아버지는 밭둑에 앉아 있는 나를 보다가 삽을 놓고 저만치 가셨다. 그리곤 쑥 한 움큼과 풀줄기를 잘라 오셔서는 찧어서 상처부위에 바르곤 풀줄기로 칭칭 감아 주셨다. 그러면 금방 지혈이 되었고 쓰라린 통증도 많이 가셨다. 어떻게 아버지는 그런 민간요법을 알고 있는지 신기했다.

나도 세월이 흘러 50대 후반의 장년이 되었다. 10대 후반일 때 아버지가 종자구덩이를 파면서 해주던 이야기며, 진물이 흐르던 손바닥을 치료해주던 따뜻한 손의 감촉, 그리고 그 시절의 토방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감정에 묻어나던 투박하지만 따듯했던 사랑이 향토 빛처럼 진하게 풍겨온다.

구덩이. 아버지의 구덩이. 아버지는 따뜻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의 구덩이에다 새로운 생명을 키우셨다.

나는, 나의 구덩이는?

아버지가 팠던 아버지가 팠던, 이제는 흔적도 없는 그 구덩이를 다시 파야겠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이웃들에게 나눠줄 넉넉한 사랑을 묻어야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내가 묻은 사랑에도, 아버지의 고구마가 그랬듯 연하고 보드라운 사랑줄기가 쑥쑥 자라날 거라 믿는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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