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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 작은 배려가 기쁨 넘치게 해
  • 이철우 본지 회장
  • 승인 2020.05.09 16:50
  • 호수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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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원 옹, 순례객 쉼터 제공
식수도 제공하고 커피도 마셔

선현들은 지리산일대 유람하며
문정마을 ‘살만한 곳’으로 칭해

손창원 옹.

계절의 여왕인 5월, 봄을 코로나에 빼앗긴 허전함에 둘레길을 찾아 나섰다. 산에는 철쭉이 한창이고 둘레길 주변에는 짙은 녹색을 배경으로 갖가지 꽃들이 무리를 이뤄 만발하고 있다. 둘레길을 걷는 일행은 힘들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가깝고 더욱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이야기라야 딱히 어떤 주제를 내걸고 그것만 말해야 할 것도 없고 그저 느끼는 대로 주고받을 뿐이다.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를 잇는 길을 용유담과 송전마을을 거치면서 법화산자락을 조망하며 엄천강을 따라 걷다보면 문정마을에 이르게 된다. 그 구간을 통해 대단하게 흥분할 일은 아니지만 가슴에 뜨거운 물이랑이 출렁임을 느끼게 된다. 둘레길을 걷는 것은 풍광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어 좋다. 목마름을 느낄 때쯤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횡재를 만나는 흐뭇함이 있다.

문정마을과 송전마을을 이어주는 송문교 옆에 꽃들로 장식된 그림 같은 집이 있다. 그 집주인 손창원 옹이 마당을 가로질러 쉼터를 만들어 놓고 길손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따뜻한 물과 커피를 준비해 두고 있다. 거창 가조출신인 손옹은 서울에서 건축업을 왕성하게 하던 20년 전 58세 때 처가동네인 유림면 화촌마을과 가까운 풍광이 뛰어난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함양군 휴천면 문정마을과 송전마을을 이어주는 송문교 옆에 손창원 옹의 쉼터가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둘레길 열풍이 불면서 줄지은 순례객이 목을 축이거나 쉬어갈 만한 곳이 없음을 알고 7년 전 수목이 우거진 이곳에서 식수도 보충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순례객이 많을 때는 믹스커피가 연간 3000개 이상씩 소비되었다. 둘레길 열풍이 식어지면서 지나는 길손이 하루 몇 백 명으로 줄었다. 쉼터도 코로나사태로 쉬었다가 최근에야 문을 열었다.

길손은 커피 한잔을 뽑아 의자에 걸터앉아 앞 교량 밑을 흐르는 계류와 푸른 하늘 위의 군데군데 떠 있는 흰 구름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어느 의미에선 작은 배려의 줄에 묶이어 있는 거다. 메말라서 재미가 없다는 세상이지만 때로는 우리를 감동케 하는 일들로 이 땅에 사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민박집 등 이정표가 관광명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우리 일행은 참 오래 만에 요순적 세상을 만나본다며 주인의 인심에 감사했다. 인심이 더해져 4구간 둘레길은 참 멋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주위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멋있어 보였다. 송문교아래 너럭바위가 있는데, 크고 잘 생겨서 소나무를 등에 업고 있는 폼이 너무도 점잖아 와룡대(臥龍臺)라고 부른다. 조선조 고종때 강신영이 지은 이름이다. 가만히 바라만보고 있어도 봄의 여유로움이 한껏 느껴지는 듯하다.

코로나가 끝나면 주말에는 등산객의 울긋불긋한 모자로 길을 메울 것이다. 문정마을은 김일손·정여창·임대동 세 사람이 일행이 되어 지리산일대의 경승지를 견문한 것을 기록한 <속두류록>에 “살만한 곳 즉 가거동”이라고 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행정당국에서는 이와 같은 유서 깊은 마을 이야기를 입간판으로 만들어 세우면 순례객에게는 유익한 둘레길이 될 것이다.

이철우 본지 회장  lc34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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