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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 이름표를 달고 날아라!
노청한 재경함양군향우회 향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이기고자 하루 1만보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오늘은 한강으로 가는 수변공원을 벗어나 산행이다. 동네 뒷산이지만 사찰이 두 곳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터라 사찰에서는 봉축연등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이곳은 작은 절이라 사다리지만 규모가 큰 절은 크레인 또는 사다리차를 동원한단다.

요즘 들어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드니 그동안 격리됐던 생활이 한결 가볍고 자유롭다. 나는 이를 자축하듯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질을 한다. 먼저 ‘이름표’로 더욱 돈독해진 양평 친구다. ‘우리 사이의 거리’가 무던함을 확인하며 한바탕 웃었다. 양평 친구는 ‘깨복쟁이’동네 친구지만 여간해서 먼저 문자, 카톡은 물론 전화도 하지 않는다. 산중 생활이 어언 15년이 넘었을 것이다.

오랜 발품을 팔아 찾은 산중은 천하와 다름없는 부인을 하루아침에 잃고, 슬하 남매를 어지간히 키운 다음에 마련한 친구의 새 보금자리다. 서울과 가깝지만 이웃 하나 없이 달랑 친구 집 한 채, 아니 창고 하나만 덩그러니 앉은 외진 곳이다. 우리는 집주인이 하도 야무지게 가꿔 점점 주인을 닮아가는 창고 겸 농막을 ‘집’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나지막한 산과 마르지 않는 냇물을 벗 삼아 숯덩이 같은 가슴을 달랜지 10여년이 지나자 친구는 장난감 같은 별채까지 갖춘 ‘그림 같은 집’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친구 집을 들락거렸다. 금방 깎은 듯한 잔디와 토실하게 자란 정원수, 뭇 산새들은 구면이 된지 오래다.

우리들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연달아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윤남숙)을 모시고 갔던 날이다. 그날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친구 집에 이름표(당호=堂號)를 달아주자!”고 했다. 곱고 단아한 선생님은 “친구가 세상을 등지고 살지 않도록 여러분이 자주 찾아와 살뜰한 이웃이 돼주면 좋겠다”며 즉석에서 “우린농원(友隣農園)은 어떨까?”며 제자들을 쭈욱 둘러봤다. 참 선생님다웠다. 이름표 뒤에는 “친구와 이웃이 놀러 오는 농장, 재경 지곡초등학교 제40회 동창”이라고 표식 했다.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친구의 집에 이름표 2호를 달았다.

“여운당(餘雲堂)”

“느릿느릿 퍼지는 구름과 거두어들이듯 모이는 구름을 보며 넉넉하고 여유롭게 사는 친구의 집입니다”라는 부록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고향 함양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지리산의 입구 동네에 자리한 독채 집이다. 일찍부터 사진기를 들고 서울 한복판에서 한 우물을 판 올곧은 주인을 닮은 친구의 사진 작업실이다.

칠순 문턱을 막 넘은 우리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오랫동안 방치했던 나를 찾고,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주고,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해 여생을 설계하고자 곳곳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노후 정리가 아닌 내 인생을 완성하는 ‘세컨드 라이프’다. 지금도 함양 개평은 물론 경기도 가평과 경북 문경 등지에서 이름표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줄을 섰다. “집 지은 지 10년 만에 첫 이름표가 나왔으니 다들 그만큼은 기다려야 한다”고 감질나게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친구를 위한답시고 우리들의 양평 방문이 뜸하던 쯤에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친구들아 어쩌지, 밤새 돌린 화목보일러가 과열되어 집이 홀라당 탔다.”

새벽인데 밖이 대낮같이 환해 잠에서 깨어보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뒤 처마 밑에 있는 소화기를 들었지만 오래된 소화기는 작동되지 않았다. 한겨울이라 마당의 수도와 냇물은 얼어붙었다. 좁고 험한 길을 달려온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집은 벽만 남았다. 친구는 부인의 유품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들의 “몸 성한 것이 어디냐”는 허공에만 맴돌았다. 2017년 1월이었다. 아직도 작은 별채가 흔적만 남은 본 터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식당에서 무심코 “여기요, 저기요, 아저씨, 아줌마, 이모, 고모, 삼촌, 어이, 아가씨…”가 튀어나온다. 직원들 가슴에 이름표가 앞앞이 붙어있어 ‘나만의 고유한 이름’을 센스 있게 부르며 주문한다면 손님들에게 더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까. 이름표를 받은 우리 집주인 친구들의 뿌듯함과 각오도 남다르지 싶다.

새 무대에서 인생 2막에 열중하는 친구들.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송무백열(松茂栢悅) 마음이 늘그막한 우리 친구들의 우정이 아닐까.

마침 양평 친구가 성당교우들과 함께 ‘우린농원(友隣農園)’현판을 받치고 찍은 사진을 보냈다. 집짓기 공사를 곧 시작할 것만 같다. 두 번째 집들이, 아니 집알이 때는 소화기 선물은 물론이고 ‘화재 감지기’를 집 안팎에 설치해 줘야겠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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