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소설가.

휴일오후, 텃밭에 돋아난 푸성귀를 뜯고 물도 뿌려줄 겸해서 집을 나섰다. 버터상추와 루꼴라, 치커리… 이런 쌈채소가 제법 자랐을 상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봄꽃이 져버린 산과 들에 싱그러움이 뭉실뭉실 번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찬란한 푸름의 시간이었다.

얼마쯤 가다가 길가에 서 있는 수상스런 1톤 트럭을 만났다. 트럭 뒤쪽 짐칸에 사각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저절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불안하던 내 예감대로 철망 안에는 커다란 개가 들어있었다. 좁아터진 철망에 구겨지듯 갇혀있는 개는 언뜻 봐도 누군가 키우던 품종 있는 개였다. 유기되었거나 팔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개의 운명은 안 봐도 훤했다. 녀석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 지 모든 걸 체념한 듯 어두운 눈빛이었다. 나는 그 개를 구해줄 수 없는 형편인지라 고개를 돌리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한참을 걸어가는데 자꾸만 녀석의 눈빛이 밟히면서 가슴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그러다가 와락 화가 치밀어서 얼굴도 모르는 개 주인과 트럭운전수와 내 주변의 보신탕 애호가들까지 싸잡아서 ‘나쁜 사람들’이라고 내뱉고 말았다. 새삼스레 해묵은 개고기 찬반논란을 끄집어내자는 게 아니다. 저마다 입장이라는 게 있기에 그 문제는 앞으로도 끝없는 논쟁으로 이어질 거라 본다.

어릴 적엔 우리집도 검둥개를 키웠다. 검둥개는 꼬리가 떨어져라 우릴 따랐고, 우리도 녀석과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너나 할 것 없이 배고픈 시절이었다. 춥고 긴 겨울을 나고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무렵이면 동네아이들 얼굴은 누렇게 뜨고 곰팡이 같은 버짐이 피어났다. 회충 때문인지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몰래 검둥개를 끌고 나갔고 저녁밥상에 고깃국이 올라왔다. 처음엔 쇠고깃국이라는 말에 속았다가 집안 어디에도 검둥개가 보이지 않자 우리는 대성통곡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채 검둥개를 불러대며 고깃국을 떠먹어야 했던 웃지 못 할 광경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버지는 우리 검둥개를 아랫마을 아무개네 개와 바꿔서 잡았다고 한다. 내 집에서 키우던 녀석을 차마 당신 손으로 잡지 못해서 위아래 마을끼리 서로 바꿔서 잡아왔던 것이다.

근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늘면서 주인에게 버려지는 개도 늘어간다. 갑자기 이사를 해야 해서, 아이가 어려서, 저마다 이유는 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 외딴산골이나 섬에다 키우던 개를 버리거나 심지어 달리는 차안에서 내던지고 달아나는 이도 있다. 그렇게 버려진 개는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은 채 고통 속에 죽어간다. 이 세상에 버려져도 되는 생명은 없다.

개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반려동물이다. 인간을 잘 따르고 순종적이며 교감한다. 오죽하면 개를 영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한다. 다시 말하지만 개고기가 개인적 취향일지라도 개에게 가해지는 비윤리적인 사육실태나 도축방법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까마득한 시절 검둥개와의 추억 한 조각을 꽉 쥐고 산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집안을 휘저을 때면 한밤중에 도망 나와서 외양간 짚더미에 웅크린 채 밤을 새우곤 했었다. 그때마다 내 옆에서 체온을 나눠주던 검둥개와의 따스했던 그 시간을…

얼마쯤 걷다가 뒤돌아보니 개장수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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