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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야생
최혜숙 까르페디엠 회원·돌꽃담펜션 운영.

시골에 살면 벌레와 함께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저녁이 되면 빛을 보고 모여든 온갖 벌레들이 현관 불빛 앞에서 춤을 춘다. 이때 천적은 거미다. 처마 아래 줄을 쳐놓고 춤추는 녀석들이 덫에 걸리길 기다린다. 때로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나방이나 잠자리가 걸리기도 한다. 저걸 어떻게 할 건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며칠 지나면 그들의 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거미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집을 귀곡 산장으로 만드는 녀석을 잡아 압사시켜야 할지 항상 고민된다. 그래도 집 밖에 있는 거미줄은 살짝 봐주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게으름의 흔적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자연인의 여유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에서 지네에 물렸다느니, 벌에 쏘였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긴장된다. 왠지 지네가 침대 아래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을 것 같은 상상으로 간이 오그라든다. 벌들은 왜 하필 사람 사는 집 앞에 집을 짓는지, 오늘도 현관문 바로 위에 자그마한 말벌집을 발견했다.

며칠 전부터 신발장 위에 새똥이 떨어져 있어 하필 여기 와서 똥을 누는 새가 참 별일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새끼말벌의 유충이었다. 새똥인줄 알고 닦았더니 꿈틀거리는 것이 벌의 줄무늬까지 보였다. 유충만 봤는데도 머릿속은 벌에 쏘인 느낌이었다.

지난해 야구공만 하던 말벌집을 발견하고 한 달 만에 보니까 축구공만큼이나 커졌다. 사람이 드나드는 장소라 불안할 텐데도 버젓이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매일 확장공사까지 한다. 벌집이 너무 커서 119에 신고하여 처리하려고 했는데 동네분이 말벌집도 약이 된다며 그대로 떼어가셨다.

정원을 다니다가 뱀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갈색무늬 작은 뱀을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굵은 초록색 뱀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내지르는 6옥타브의 비명이 뱀도 놀라게 하는지 스르륵 자리를 피한다. 그렇게 놀란 가슴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길쭉한 나뭇가지만 봐도 5옥타브 정도의 소리를 지르고 구불구불한 끈만 봐도 가슴이 먼저 놀란다.

시골 산 지 5년 만에 조금씩 내 간이 커지고 있다. 작은 벌레만 봐도 조수미도 울고 갈 소리를 질러대던 내가 이제는 작은 거미 정도는 손으로 때려 압사를 시킨다. 압사 시킨 뒤 내 손을 보고는 스스로 감탄한다. 이런, 내가 살충을 과감하게 저지르는 사람이 되었다니!

시골살이는 연약한 여자도 장군으로 만든다. 장군이 안 되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놀라기 전에 소리를 꽥 지르곤 한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먼저 고함을 질러서 기를 불어 넣는 것처럼.

빛을 향해 모여든 벌레들은 별로지만 야생의 밤은 또 다른 매력이다. 고개를 들어 북두칠성을 찾기도 하고 모닥불을 지펴 쑥을 올려서 연기를 피우기도 한다. 남편이 모깃불을 피워놓고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 ‘작은새(this little bird)’를 켰다. 과하지 않은 비트에 몸이 살랑살랑 움직이며 고개마저 흔든다. 한여름 밤에 밤이슬을 맞으며 누군가가 보내온 작은 새를 노래하며 몸을 흔드는 동안 고단한 야생은 낭만야생으로 바뀐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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