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가 운영하던 음식점
이름을 ‘책’ 제목으로 선정해
남과 북, 가족의 아픔 녹여내

군과 무능한 지역정치인들로
2년 동안 쉰 거창국제연극제
예산핑계로 볼모잡히면 안돼

김태호 의원 의지에 ‘기대감’
군청과도 원만히 해결할 것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이 14일 그간 연출했던 작품들은 모은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을 출간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거창국제연극제가 수년 째 정상적으로 개최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종일 집행위원장이 그간 연출했던 작품 등을 모아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을 펴냈다.

지난 14일 저녁 거창읍 가지리 이수미 팜베리에서 이종일 집행위원장의 첫 희곡집 발간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에는 여러 지인들이 참석해 첫 희곡집 출간을 축하했다.

30년 넘게 민간의 힘으로 성장시켜온 거창국제연극제가 여러 논란으로 인해 2년 연속 제대로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였지만 이종일 위원장은 비교적 담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출판기념회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종일 위원장은 “지난 2019년 거창연극제를 치르지 못했을 때는 힘들었지만 두 해째가 되니 면역이 됐다”면서도, 하지만 ”축제에 정치가 개입하면 안 된다“며 연극제 문제가 제대로 안 풀리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역에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작지 않았던 거창국제연극제는 지난 2014년 당시 군수의 간섭과 이후 연극을 제대로 모르는 인사가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문화체육관광부 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았고, 이후 위상이 추락했다.

지역 정치인들의 무능함도 한몫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지역 정치권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여전히 해결이 난망한 상태다.

하지만 이종일 집행위원장은 김태호 의원이 “도지사 할 때도 문화예술에 대한 깊이가 있었다”며 해결 의지가 있다는 것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군청과의 협의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지난해와 올해 2년을 쉬었으니 내년에 31회를 제대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또한 “거창국제연극제 오프(KIFT OFF) 시스템을 통해 배우와 극작가를 키워내고 세계초연희곡 공모 등을 통한 성과를 이룩했다”며 “더이상 군의회에서 예산을 볼모로 잡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간된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에는 안정된 교사의 길을 벗어나 연극인으로 45년을 살아온 연출가의 지난 시절 삶의 일부가 담겨 있다. 직접 희곡을 쓰고 연출한 작품만 20편이 넘는데,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출판 지원을 받게 되면서 하나하나 책으로 엮는 작업을 시작했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그 첫 번째다. 책에는 모두 5편의 희곡이 들어가 있다. 제목으로 선택한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가장 애착이 가는 희곡이다. 제목을 놓고 협의할 때 출판사 관계자들도 다른 희곡들 보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을 좋게 봤다고 한다. 일본에서 살았던 큰아버지가 운영하던 음식점 이름이 책 제목으로 결정되던 순간이었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의 가족사가 담겨 있다. 1930년대 여행 삼아 일본으로 갔다 눌러앉게 된 큰아버지는 자식을 북송선에 태워 보낼 만큼 북한 정권에 충성을 다하던 조총련의 실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큰아버지의 존재는 한국에 있는 동생과 조카에게는 큰 짐이었다. 큰아버지가 음식점을 운영하며 돈을 보내기도 했으나, 문제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종일 집행위원장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이종일 위원장은 부친과 함께 정보기관에 끌려갔고, 간첩단 조작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조작하려고 해도 마땅하게 엮을 게 없었다. 결국 큰아버지가 동생과 조카를 위해 일본에서 보내준 돈을 외환법 위반이라며 꼬투리를 잡은 게 다였다.

큰아버지와 상면하게 된 것은 1991년 김영삼 대통령 때였다. 조총련 관계자들의 입국이 허용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큰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종일 위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연극인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해 <조선료리집, 판문점>에서 일본으로 찾아간 동생이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던 형을 만나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군데군데 들어간 가족사에는 이종일 위원장의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산가족의 문제가 투영돼 있다.

지난 2018년 제36회 경상남도연극제에 희곡상을 수상한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작품으로 구성이 탄탄하고 스토리텔링이 창의적이며 주제가 시사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극단 입체에 의해 거창에서도 상연됐다.

출판기념회가 끝난 후 담당하게 가족사를 말하는 이종일 위원장의 표정에는 긴 시간의 역사가 스며있었다.

<행사 이모저모 사진>

출판기념회 행사에 앞서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거창성당 구성진 신부가 축하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희곡낭독을 하고 있는 지미리 연극배우. <사진: 서부경남신문>

이종일 희곡집 출간기념회를 마치고 지인들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인터뷰에 앞서 본지와 환담하는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사진: 서부경남신문>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