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현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반 아베 운동에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018년부터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이어오던 몇몇 산청 사람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산청군 평화비 건립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를 출범시켰다.

보수적 정서에 시민단체 활동이 열악한 산청지역 정서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모험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223명의 추진위원을 모집하여 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사업비 6000만원을 모금액으로 정하고 군민들의 자발적 행동으로 시작한 모금 활동을 되돌아보면 눈물겹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초등생들의 코 묻은 용돈에서부터 학교축제 때 배지와 스티커를 판 고등학생들, 그리고 장날마다 덕산장·단성장 등 5일장을 돌며 모금한 열혈 추진위원들까지 많은 군민들의 노력이 모여 목표액을 차곡차곡 쌓았고, 2019년 연말엔 목표액의 30%를 달성하며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당위성과 의미를 군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지난해 8월 평화영화제를 열어 박수남 감독의 다큐멘터리 <침묵>을 상영했고, 코로나19가 확산 되기직전인 올 1월엔 ‘나비의 꿈, 함께 평화’라는 제목으로 당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던 윤미향 의원의 강연회를 열기도 하면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열기를 이어갔다.

그리고는 지난 2월, 드디어 소녀상 제작을 위해 김서경 작가와의 만남을 갖기에 이르렀다. 6월에 계약을 맺기까지 모양과 위치, 명칭에 대해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서 모양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같은 좌상으로, 명칭은 ‘산청 평화의 소녀상’으로 결정했다. 설치 장소는 산청군의 협조를 얻어 산청군청소년수련관 앞 소나무 아래로 확정했다.

김서경 작가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종식을 상징하는 끊겨진 철조망과 지리산 배경석 등의 세부사항을 추가한 형태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드디어 8월14일 저녁 6시30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산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 과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점은 이 모든 일이 관 주도가 아닌 군민 스스로 민주적 방법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해서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산청 평화의 소녀상’은 산청군에 시민운동이 새로운 분기점이 되리라 믿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앞장을 서 주신 이성락, 임봉재 상임대표와 김현하 집행위원장 뿐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동분서주해 주신 추진위원님들. 특히 한 푼 두 푼 모금에 동참해 주신 산청 군민들이 계셨기에 이 기적 같은 일을 이룰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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