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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임윤교 현대수필 등단, 소나무5길 동인.

대지를 가로지르는 바람소리가 분주하다. 백양나무 이파리들이 파르르 떨더니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바람은 무량겁에서 불어와 산과 들을 지나 내가 사는 이곳까지 내려온다. 사물들의 떨림이 아니라면 바람을 쉬이 인식할 수 있을까. 내 살갗을 스쳐가지 않는다면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을까.

일상이 단조로워질 때 바람의 딸이 되고 싶어진다. ‘바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떨쳐버리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훌쩍 떠나고 싶다. 일상을 뒤로한 채 어디론가 떠남은 일종의 해방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물을 접하고 풍경에 취하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고여 있지 않는 물처럼 세상을 돌아보는 자유로움 뒤에 한 가닥 여운이 생겨 나온다. 그것은 규격화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삶의 생기를 수혈 받는 것이다. 좀 더 탄성 있는 삶의 질을 공급받는 것이다.

떠남이 여의치 않으면 상상 속으로 떠날 때도 있다. 그러고도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면 어느 바람 한 줄기를 불러내어본다. 마음은 그 바람에 실려 하염없이 떠나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문을 박차고 떠나고 싶지만 이런 생각의 무모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미지의 세계로 나가고 싶은 만큼 현실에 발목 잡혀 사는 게 우리기에 말이다.

내 안에 나 아닌 그 무엇이 자꾸 채근을 하고 있다. 평소엔 없는 듯 조용하다가 불시에 휘어잡으려 한다. 어느 적정선에서 돌출되면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이 은근히 부아를 내면 사실 불안하다. 그게 조짐을 보이면 안절부절 하지만 도리가 없다. 다독거리며 타이르고 주저앉기를 기다린다. 태풍의 눈으로 확산되지 않기만 바랄뿐이다. 그것이 지나가면 후유증이 심하다. 눈은 퀭해지고 살이 내리며 두통과 졸음이 연거푸 오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실속 없이 다녀 갈 때는 정말이지 두 번 다시 마주치기 싫어진다. 그것은 내 안의 바람이다.

삶의 행로마다 바람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굳이 우연과 필연을 거론하지 않아도 그렇게 귀결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에너지다. 일이 진척 안 되고 답보상태로 있을 때, 정리하고 판단해야 할 시점이 될 때는 그 에너지의 상승기류와 부합해야 하는 시기다. 일상의 밋밋함에서 부단히 걸어 나와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람의 역량이 아쉬울 때도 있다. 내 주위를 돌며 수년간 고통을 치르게 하는 백지와의 싸움이다. 써보고 싶다는 간절함은 있지만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어줍음이 문제다.

등불 심지를 돋우고 한량없이 앉아 있어보면 끝 가는데 모를 바람이 창문을 덜컹인다. 불빛이 흔들리고 내 마음속은 검게 그을림이 피어오른다. 구겨진 종이와 함께 허탈감과 서글픔으로 아침을 맞는 것이다. 내 꿈의 언저리는 정녕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바다 위를 훑고 지나는 바람의 너울을 본다. 시작점이 어딘지 모르지만 해안으로 연신 밀려들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보고 있다. 옛적 서해안 외딴섬을 넘나들며 풍장을 이끌던 바람은 어디로 갔을까. 육신을 말리고 넋은 하늘에 오르게 하던 바람. 언제 어디서 사멸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바람을 불러내 낡아지지 않는 굼뜬 상념들을 날려 보내고 싶다.

오늘은 높새바람 등을 타고 먼 길을 떠나본다. 깊고 아득한 사유의 세계로.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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